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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윤서 Sep 20. 2023

일기라는 쓸모

휴학생이 되고, 프리랜서와 비슷한 일상을 살게 되었다. 기상시간 무(無), 마감시간 무(無). 언뜻 널널하고 편해 보이는 이 직업의 가장 큰 고충은 '자유'다. 너무 자유로워서 괴로운 상태. 그래서 어떻게든 바깥으로 나다니며 '나 여기서 작업 중임'하고 남의 눈을 사야 한다는 점. 그런 면에서 프리랜서가 적성이라는 사람을 우러러보고 있다. 2주 만에 내 적성은 아니라는 걸 깨닫는 중이니까.


함께 휴학하는 동생 H에게 동업을 제안했다. 우리끼리라도 서로 감시하고 당근으로 달래가면서 어떻게든, 뭐라도, 해보자고. 사실은 그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한 이기적인 마음이었다. 난 늘 지금보다 잘나고 싶거든. 그러려면 비슷한 앞을 보고 있는 사람의 '저렇게 게을러서 앞으로 어쩌려고...' 하는 걱정 어린 시선이 필요했기 때문에. 


삽시간에 업무팀을 체결하고 노션에 공동 스페이스를 만들기 시작했다. 매일 한 일들을 정리해 올려두고 일주일에 한 번, 줌에 모여 피드백을 하기로 했다. 매일 상대방을 감시할 순 없으니 주 1회라도 매몰찬 채찍 시간을 갖는 게 우리 목표(?)였다. 


개인 업무 2주 차에 시작한 첫 피드백날. 각자 20분 정도 지난 일주일을 점검하고 어떤 일에 어느 정도의 시간을 들이고 있는지, 밥·잠·운동 같은 기본적이지만 가장 중요한 것들은 어떻게 하고 있는지를 들여다봤다.

과정은 충격의 도가니. 산뜻한 마음으로 '이번주는 어떻게 보냈나~'하고 확인했는데. 애초에 휴학하고 하려던 일은 뭐였는지 다시 찾아봐야 했을 만큼 생활은 잔뜩 엉겨 붙어 있었다. 기상과 취침은 뉴욕 시간으로 설정돼 있었고 운동 0, 책상에 붙어있는 시간마저 번잡한 글만 끄작이다 지쳐 급 마무리하는 식이었다. 더 이상은 부끄러워서 둘만 아는 비밀로 한다. 


게 중 특별히 일기에 쓰고 있는 시간을 무척 비효율적이라고 느꼈다. 남들처럼 멋들어지게 꾸며 인스타에 올려볼 요량도 아니고, 지극히 사적인 이야기에 온갖 멋진 척과 비굴한 모습을 한데 섞어놓은 걸 어디에 활용하나. 도움도 안 되고, 욕심은 있어서 돈만 들고, 정작 진짜 솔직한 말은 못 써서 나중에 재미로도 보지 않을 일기를. 차라리 그 시간에 뼈대 굵은 글이나 좀 쓰지. H가 아닌 스스로가 쏘아 올린 굵은 채찍. 


그렇지만 하루 중 그 많은 시간을 자잘 자잘한 일기장에 쓴다는 건 분명 이걸 좋아하고 있다는 뜻이다. 실제로 그런 무용한 일에 투자하는 시간은 실로 재미지다. 효율이나 미래 따윈 어디 멀리 던져버리고 어깨를 잔뜩 웅크려 메모지 위치를 정한다던지, 갤러리를 뒤져 오늘 한 일을 기록하는 건 말마따나 효율이 없기 때문에 재밌는 것일 뿐이다. 일기 쓰는 게 업이 되어 내 유일한 밥벌이 수단이 된다면 과연 그래도 지금만큼 재밌다고 말할 수 있을까. 분명 일기라는 이름을 가장한 소설이 된다거나 자기 전 회개기도를 드려야 할 정도의 거짓들로 가득해질 것이다. 내밀하게 쓰는 일이 재미있는 이유는 (들키지 않는 한) 오직 나만 보기 때문이고, 괜히 번지르르한 표현을 고민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고, 그 천진난만을 아직 사랑하기 때문이다. 



누가 쓰라고 요구하지도 않는 일기를 왜 그리 열심히 쓸까 생각하면, 헐거운 기억회로 때문도 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 인사치레처럼 서로 안부를 물을 때, 난 늘 대답을 못 하고 얼버무리는 사람이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어?” 

“나? …… 어떻게 지냈더라?”


그러면서 급하게 갤러리를 뒤적인다. 대답하라고 준 질문에 역질문을 해대는 이상한 일은 거즘 매번 생긴다. 그만큼 지나간 것에는 회로가 얼마 없고 오직 마주할 미래만 진득하게 쫒는다. 바꿀 수 없어서 과거일뿐더러 떠올려봤자 늘 이불킥이나 오늘을 후회하는 반추 정도밖에 더하나. 뇌는 자연스럽게 나를 위해 늘 까먹어주는 친절을 베푼다. 다만 그것이 아끼던 사람의 이름도, 바랜 사소한 추억도, 심지어 일주일 전 일이 되기도 해서 괜히 미안해지는 경우도 생긴다. 오랜만에 만난 지인 이름을 까먹어 뒤에서 몰래 머리를 굴려본 적도 있고 기억력 좋은 친구에게 너무 무심하다는 타박도 받는다. 그치만 어째, 기억이 안 나는데…. 아마 그때부터 일기를 다시 쓰기 시작한 것 같다. 어떤 기억을 더 오래 사랑하고 어떤 이를 오래 가슴에 품기 위해 머리 대신 손을 움직인다. 


일기가 정말 반추 외엔 어떤 효용도 없을까 반문할 때쯤, 이 무용한 행위에 한 줄기 빛이 되는 문장을 발견했다.


'일기는 앨범과 같이 과거를 기념하는 데만 의미가 다하지 않는다. 과거보다는 오히려 장래를 위한 의의가 더욱 크다. 문장 공부가 된다. '오늘은 여러 날 만에 날이 들어 내 기분이 다 상쾌해졌다'라는 한마디를 쓰더라도, 이것은 우선 생각을 정리해 문자로 표현한 것이다. 생각이 되는대로 얼른얼른 문장화하는 습관이 생기면 '글을 쓴다'는 데 새삼스럽거나 겁이 나거나 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나만 보는 일기도 쓰는 근육을 키우는 습관의 일종이며, 이 근육이 어느 글에서 어떻게 발현될지는 아무도 모른다는 것. 어쩌면 지금 이만한 글을 쓰고 있는 이유도 그 많은 노트 속 구차한 이야기 덕분일지 모른다. 내가 글이라고 한정하는 깊어야 '하고' 길어야 '하는' 워드 파일 외에도 끝맺음 있는 모든 창작문(文)은 앞선 미래에 도움이 될 거라 믿는 일. 지금은 효율이 아니라 믿음이 필요한 때다. 


그러니 아직은 매일 지치지 않고 뭐든 쓰는 자신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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