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내가 어렸을 적부터 꾸미는 데에 일가견이 있는 사람이었다. 엄마는 집안에서도 늘 가장 예쁜 잠옷을 입고 다녔고, 반찬은 반찬통에 있는 것을 바로 꺼내먹는 걸 본 적이 없으며, 또 집 가구배치는 어찌나 자주 바뀌던지 내가 학교에 다녀오기만 하면 완전히 새로운 거실이 되어있었다.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은 '번거로움'이었다. 가족밖에 없는데 굳이 예쁜 잠옷을 사야 하는 이유와 설거지거리만 쌓이는 일을 왜 도맡아야 하는지. 힘들여가며 그 큰 가구를 왜 이렇게 이리저리 옮겨대는지. 엄마는 그게 자기 삶이 소중해서라고 했다. 내가 어디에 있든 잘 갖춰진 사람이고 싶다고. 고상하게 사는 게 자기 목표라고 늘 그랬다.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답답해지는 건 나였다. 엄마는 늘 예쁜 잠옷을 입곤 불편하다고 투덜댔고, 설거지할 건 왜 이렇게 많냐며 불만이었고, 가구 대이동의 날이 끝나면 어김없이 몸 이곳저곳이 아프다며 앓는 소리를 했으니까. 그렇게 귀찮고 불편하면 안 하면 되는 거 아닌가. 어린 시절, 내게 엄마의 일상은 늘 큰 물음표였다.
그런데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점점 '엄마화'가 되어가는 나를 보면 그렇게 신기하고 웃기다.
동네라도 굳이 굳이 예쁘게 차려입고 가고 싶은 마음과 때마다 각종 그릇과 받침 천을 모아 잔뜩 늘어놓고 밥을 먹는 것. 두 평이나 될까 하는 방을 요리조리 머리 굴려가며 침대 옮기고 책상의자 옮기는 한 달 남짓의 간격. 이제는 동생이 내게 같은 질문을 한다.
- 안 피곤해?
그럼 나에게도 할 수 있는 대답은 단 하나다.
- 매일 잘 가꿔줘야지, 나를.
그러니까, 번거롭고 피곤하고 유난스러워도 더 멋들어지게 살고 싶어서 노력하는 마음이었던 것이다. 엄마도, 나도. 나는 매 순간 나를 보니까, 남이 보든 보지 않든 내가 어떤 모습으로 사는지가 중요한 가치였음을 이제는 잘 안다.
요즘엔 엄마가 밥을 하면 내가 예쁜 그릇을 꺼내고, 내가 카톡으로 맘에 드는 소품 링크를 보내면 엄마가 내 방에 어울릴지를 조언해 준다. 꾸미는 삶도 나쁘지 않다고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