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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틈새 May 10. 2024

6. 투명한 혐오

사진: Unsplash의 Alexander Grey


혐오에도 색이 있다면 어떤 색일지 생각한다. 진지한 감정이나 태도가 결여된,
그래서 말하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 투명에 가깝지 않을까.


'공정한 경쟁'과 관련된 영상을 시청하다 사회적 약자 중 'non-binary'라는 처음 들어보는 단어가 나왔다. 웅성거리는 아이들에게 편견이 아닌 입장을 갖게 하기 위해서, 그리고 자신의 입장은 타인의 생각과 다를 수 있음을 알려주기 위해서 어느 정도 설명을 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검색한 창을 띄우고 읽어 내려갔다. 


'논 바이너리(non-binary)는 성별 젠더를 남성과 여성 둘로만 분류하는 기존의 이분법적인 성별 구분(gender binary)을 벗어난 종류의 성 정체성이나 성별을 지칭하는 용어로, 그러한 성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가리킬 때도 사용된다. 논 바이너리는 대체로 자신의 성을 특별히 정의하지 않으며 기존의 개념 중 하나로 규정되는 것도 거부하고, 자신의 외양이나 행동 양식이 기존의 성 역할 혹은 젠더나 전통의 산물이 아닌 단순히 개인의 호불호로 이루어졌을 뿐 성별과 관계없이 하나의 사람으로 여겨지기를 바란다.'  -위키백과


'로이터통신은 아르헨티나 정부가 21일(현지 시각)부터 주민등록증과 여권에 남성(M), 여성(F) 외 ‘X’ 성별 옵션을 추가한다고 발표했다고 보도했다. 이분법적 성별 구분에 해당하지 않는 논 바이너리(non-binary)나 자신의 성별을 규정하지 않는 이들이 X 성별을 택할 수 있다. 공식 신분증에 제3의 성 표기를 허용한 것은 중남미 국가 중 아르헨티나가 처음이다. 앞서 뉴질랜드, 독일, 호주, 네팔 등에서 제3의 성 표기를 인정한 바 있다. 미국도 최근 여권 성별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도록 바꿨다. 곧 제3의 성별을 선택하는 안도 추가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조선일보, 2021.7.22.


내 마음속에서 무언가가 '와르르' 무너졌다. 지금까지 가지고 있던 생각을 쉽게 바꿔주는 것 중 하나는 위와 같은 아름다운 문장이었다. '~해야만 한다'라는 말이 '~할 수 있다(반대로 하지 않을 수 있다)'는 말로 대체되는 문장들에는 묘한 쾌감이 있다. 


칠판에 그림을 그리고, 무수한 점들이 non-binary인 것 같다고 말했다.
점의 위치와 크기는 달라질 수 있다고도 설명했다. 선생님이 이해한 내용을 그렸을 뿐이라고 했다. 정확한 설명이 아닐 수도 있으니 스스로 고민해 보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러자 몇몇 학생이 질문을 했다. 


"그 사람은 남자 화장실을 가나요, 여자 화장실을 가나요?"


"남탕을 들어가나요, 여탕으로 가나요?"


투명한 유리 조각 같은 말은 상처를 낸다. 그 상처는 타인을 향하기도 하지만 나오는 길에 있는 자신을 엉망으로 만들기도 한다. 성별, 장애, 인종에 대한 차별, 혐오의 발언들이 지뢰처럼 교실 한구석에서 터져 나올 때면 나는 주위를 살펴본다. 아픈 표정을 짓는 학생은 없는지, 설령 아팠더라도 그는 내색하지 않을 테지만.


마음을 진정시키고, 대답하기 어려운 경우 가장 좋은 대처 방법은 질문으로 돌려주는 것이다. 


"화장실이 급하더라도 참다가 집에 돌아와서 해결하려고 하지 않을까, 아마 그럴 것 같은데, 목욕탕은 가지 않을 것 같아 선생님이 그라면, 아마 집에서 목욕도 하지 않을까."


"그런데 선생님도 한번 물어보고 싶어. 그 사람은 왜 집에 와서 그러한 일들을 해결해야만 할까?"


잠시 침묵이 흐른다. 한동안 기다려준다. 누군가 아무런 답이라도 해주면 좋겠지만, 여전히 고요하다.


"그러한 사람에 대한 배려가 없어서가 아닐까, 배려가 없다는 건 차별과 배제로 기울어지기 쉬운 일이 아닐까?"


몇몇 아이의 눈빛이 심상치 않다. 더 이상 이야기하면 자칫 '페미'라는 프레임을 씌울지 몰라, 다시 '공정한 경쟁'이라는 수업의 주제로 돌아왔다. 사회적 약자에는 성소수자뿐만 아니라 가난과 장애, 어린이와 노약자, 여성, 저학력, 농어촌 출신, 정상 가족이라고 칭하는 이외의 가족 형태 등 무수히 많음을 이야기해 줬다. 점점 눈빛이 험악해진다. 그의 완고함은 어디에서 왔을까. 그도 지금 나의 완고함에 치를 떨지 모른다. 


보편적 인권이란 말 그대로 모든 사람의 인권이다. 당연히 모든 사람의 범주 안에는 사회적 약자 또한 포함되어야 한다. 보편적 가치는 어쩌면 특수한 상황에 대한 깊은 이해에서 나오는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홍은전은 그의 책 『그냥, 사람』에서 차별받은 존재가 저항하는 사람이 되는 것은 자연스럽지 않으며, 오히려 복종하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했다. 지속적인 차별은 존재 자체를 주눅 들게 만들고 숨죽이게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나는 아이들이 차별받거나 차별하는 존재가 아니라 '저항하는 존재되기'를 바란다. 그래서 쓴다. 다시 같은 질문을 받을 때 완고함이 아니라 조금 더 다정하게 말해주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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