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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틈새 May 18. 2024

7. 선생님은 책을 좋아하세요?

사진: Unsplash의 Bobbi Wu

"선생님, 책 읽는 걸 좋아하세요?"


"응"


"책 읽으면 유식해져요?"


수업에 들어갈 때면 항상 2~3권의 책을 교과서와 함께 가지고 들어간다. 수업과 관련된 내용일 때도 있고, 못 견디게 읽어주고 싶은 문장이 있어 함께 읽기 위해서다. 그러한 모습을 보고 질문을 했던 것 같다.


아이의 질문에 잠시 생각했다. '책을 읽으면 유식해질까?', '유식이라는 건 뭘 의미할까?'


유식(有識)은 학문이나 지식이 있음. 또는 그러한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책을 읽으면 지식인이 되는 걸까. 무슨 심술인지 모르겠지만 단호하게 말했다. 


"아니, 깊어지지."


"우리 엄마는 책 많이 읽으면 유식해진다고 했는데.(이건 대답이니, 혼잣말이니?)"


항상 책을 곁에 두고 있지만, 작년에 비해 내가 유식해졌다고 느껴지지 않았다. 어느 날엔 집에 돌아와 이불킥을 할 정도로 타인에게 무식한 말을 내뱉고, 어리숙한 행동을 보인 적도 여러 번이다. 하지만 책을 읽고 있으면 마치 깊은 물속에 들어간 것처럼 고요해짐을 느낀다. 평소 볼 수 없던 풍경과 나를 대면하게 된다. 깊이 들어가기 위해서는 산소통이 필요하고, 책은 나에게 그런 존재다. 


내향적이고 나서는 것을 싫어하는데, 학교 행사를 주관하다 보니 파김치가 되었다. 허탈하게 자리에 앉아 독서 노트를 펼쳤다. 


"나의 본성을 거스르는 것을 나타내는 하나의 징후는 소위 탈진이라는 상태이다. 대개는 너무 많은 것을 주려다가 생기는 결과라고 생각하지만, 내 경험상 탈진은 내가 갖지 않은 것을 주려다가 생기는 결과이다. 탈진은 분명 공허함이지만 내가 가진 것을 주어서 생기는 결과가 아니다. 내가 주려고 해도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이 드러나는 것일 뿐이다." -파커 J. 파머 <삶이 내게 말을 걸어올 때>


글을 읽자 조금 숨이 돌아왔다. 해야 하는 일인데 '힘들다'라고 하면 엄살이나 나잇값도 못하는 칭얼거림으로 들릴까 봐 말도 못 하고 있는 나에게 책은 섣부른 위안을 주지 않고 잠시 숨, 쉴 장소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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