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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틈새 Jun 04. 2024

8. 초대받지 않고도 당신 삶으로 들어오는 것에 관하여

사진: Unsplash의 Clay Banks



  환대의 사전적 의미는 '반갑게 맞아 정성껏 후하게 대접함'입니다. 여기서 대상이 '누구나'라면 특별한 조건 없이 맞이하는 것이 환대의 의미일 것입니다.


  지금은 6월입니다. 학급은 학기 초에 비해 어느 정도 안정되었고, 학생들의 성향도 파악하였습니다. 이렇게 무사히 올 한 해를 넘기면 더할 나위 없다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의 업무량과 생활지도의 강도를 종합하여 올 한 해 업무 총량을 예측해 봅니다. 몇 년만 해보면 예측의 정확도는 아마 일기예보보다 정확할 거예요.

하지만 변수가 있습니다. 바로 전학생이지요. 전학생은 미지의 존재입니다. 전혀 예측할 수 없습니다. 그러한 이유로 인해, 만남의 설렘 대신 낯선 아이에 대한 걱정과 불안이 그 자리를 차지합니다.


환대받을 권리

교사에게는 존재의 낯섦뿐이지만 전학 오는 아이에게는 존재와 더불어 장소의 낯섦도 존재합니다. 더 힘든 이는 아마 아이일 거예요. 저는 고통을 느끼는 모든 존재는 존중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해요. 피터 싱어의 말처럼 존중받을 근거가 고통인 거죠. 그런 측면에서 보면 아이의 고통이 가지는 무게가 교사의 고통보다 훨씬 무거울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아이에게는 환대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환대할 용기

낯섦이 불안과 공포가 아니라 설렘이 될 수는 없을까요. 오는 아이가 나에게 적대적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착한 친구 같은 아이일 수도 있잖아요. 늘어난 업무와 생활지도 앞에서 더 이상 쪼그라들지 않는 교사가 될 순 없을까요. 저는 쪼그라들고 싶지 않을 때마다 정원에서 식물 돌보는 방법에 대해 생각합니다. 정원에서 시들해진 식물에 해줄 수 있는 것은 특별한 일이 아니라 벌레를 조금 더 세심히 잡아주고 다른 건강한 식물들보다 물을 조금 더 오랫동안 주는 것뿐입니다. 시든 마음에 물을 주듯 아이의 마음을 돌보는 일은 정말 어려운 일인가요.


  레비나스는 환대란 '타자를 자아의 일부로 수용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무조건적인 받아들임이란 어쩌면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나와의 관계나 상황 등 여러 가지를 고려해 보아야 합니다. 그래서 데리다는 '환대와 배제는 짝을 이룬다'라고 말합니다. 누군가를 환대한다는 것은 또 다른 이를 배제하는 일이기도 하니까요. 힘든 아이를 무조건 환대하기는 힘들겠지요. 그런데도 '조건 없이 맞이하는 일'에 대한 사유를 멈추지 말아야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원하지 않아도 무수히 많은 삶과 존재들이 나의 삶 속으로 들어오기 때문입니다.


무조건적 환대를 위한 길

  ‘불행하게도 역학적 에너지를 전기 에너지로 전환하는 일은 우울할 정도로 비효율적인데, 이는 불가피한 일이기도 하다. 과학박물관에서 전구 달린 자전거를 타본 사람이라면 이런 사실을 눈치챌 수 있다. 범인을 쫓는 경찰처럼 미친 듯이 페달을 밟아도 전구의 불이 희미하게 깜빡일 정도의 에너지만 생산되며, 속도를 조금이라도 늦추면 불이 나가고 만다.’ -호프 자런, <나는 풍요로웠고 지구는 달라졌다.>


  학급에서 학생을 교육하는 일은 ‘전구 달린 자전거’ 페달을 밟아 주위를 밝히는 일처럼 비효율적인 날도 있습니다. 마치 밑 빠진 항아리에 물을 붓는 것처럼 말입니다.

 

  가르친 내용을 학생이 얼마나 이해했는지 평가하는 시스템 속에서, 가르쳤지만 답이 나오지 않는 상황은 의외로 많습니다. 그러다 보면 내가 제대로 가르치고 있는지 회의가 들기도 하고, 그 일이 터무니없이 어렵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무조건적인 환대는 어쩌면 비효율적인 삶으로 내몰리는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헐떡거리며 페달을 밟고, 밑 빠진 항아리에 물을 붓다 보면, 어느 순간 내 주위가 환해지기도 하고, 때론 마음이 서로를 적시기도 하겠지요. 물론 그런 순간은 말 그대로 찰나입니다. 하지만 그 찰나가 모여 시간이 되고, 삶이 되겠지요. 너무 긍정적이기만 한 게 아니냐고요. 최소한의 긍정과 대책 없는 부정 사이에서 전자를 선택했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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