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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틈새 Apr 25. 2024

5. 구덩이에 빠졌을 때

빠져나오는 법.

사진: Unsplash의 Gary Meulemans

쿵!

한참 뒤 정신을 차리고 눈을 떠보니 캄캄하다. 위에서 빛이 내려오고 있지만 올라가기엔 사방이 미끄럽고, 축축하다. 손으로 더듬어보니 그것은 황당, 분노, 절망, 후회, 자괴감 따위의 감정이다. 학생과 구덩이에 떨어진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차라리 혼자라면 그 안에서 잠시 머무르는 것도 괜찮겠지만, 함께 떨어졌다면 빨리 결단을 내리고 싶어 진다. 


결단 1. 구덩이에서 탈출하기 위하여 바닥을 열심히 판다. (학생도 따라서 판다.)

- 구덩이에 빠졌다면 바닥을 파며, 누가 날 그 안으로 밀었는지 곰곰이 생각해 본다. 파다 보면 더 깊이 빠진 자기 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 (아니 아마 발견하지 못할 것이다.) 


결단 2. '여기는 구덩이가 아니다'라고 되뇌며 정신 승리를 한다. 

-하지만 여전히 구덩이 안에 있다. 


결단 3. 함께 빠진 이를 먼저 밀어 올린 후, 자신도 올라온다.

-그를 밀어 올리느라 힘이 다 빠져버려 결국 올라오지 못할 수도 있다. 


결단 4. 재빨리 구덩이를 벗어난 후, 다른 이에게 손 내밀기

-부정적 감정이 내 온몸을 감싸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면, 그 감정이 어떻게 생겼는지 생각해 본다. 

'왜 나는 그런 말이나, 상황에서 그토록 예민해질까?', '나를 화나게 하는 심리적 방아쇠가 무엇일까?'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조금은 들끓던 감정이 차분해진다. 그러고 나서 함께 빠진 이에게 손을 내민다. 화해나 사과의 손이 아니다. 빠진 구덩이에 흙을 던져 깊이를 얕게 하는 행위다. 틱낫한은 집에 불이 났다면 방화범을 잡으러 가는 것이 아니라, 집의 불부터 꺼야 한다고 말한다. 방화범을 먼저 잡으러 간다면 그사이 집은 다 타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구덩이의 깊이가 얕다면 우리는 좀 더 쉽게 나올 수 있을 것이다. 


언제라도 같은 구덩이에 빠질 수 있다. 함께 빠진 이가 같은 사람일 수도 있고 다른 존재일 수도 있다. 심지어 처음 봤던 구덩이에 빠질 수도 있다. 나만 구덩이에서 빠져나오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면 구덩이는 점점 커지고 깊어질 수밖에 없다. 


최근에 들은 가슴 아픈 말이 있다. ‘걔는 분노 조절에 어려움이 있는 학생 같아요’ 물론 아이와 함께 구덩이에 빠진 교사를 위로하기 위하여 한 말일 것이다. 하지만 그 말이 당사자를 구덩이에서 건져낼 수 있을까, 학생이 구덩이에서 빠져나오는 계기가 될 수 있을까. 오히려 둘을 더 깊숙한 구덩이에 밀어 넣는 말 같다. 화는 참아야 하고, 타인에게 화를 내는 것은 무례한 일이라고 배우고 가르쳐서 그런지 그런 모습을 한 단어로 단정 짓는 말이야말로 지나치게 폭력적이다. 

     

이해와 오해는 무척 가깝다. 이해는 오해를 덮는 데서 시작된다. 주위의 구덩이는 어쩌면 내가 가진 타인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 것인지 모른다. 그 구덩이를 이해라는 흙으로 덮는다면, 빠진다고 해도 금방 나올 수 있을 정도로 얕아지지 않을까.  


문득 궁금해진다.  ‘학생을 판단하고 선별하는 일'은 이해와 오해 중 어디에 가까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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