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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틈새 Apr 22. 2024

4. 위로하는 아이

자기보다 큰 가방을 메고 걸어오는 아이가 있다. 가방에 짓눌려 한없이 쪼그라들 것만 같은 아이다. 교실에서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을 힘들어하며 종일 말을 하지 않는다. 반 아이들이 그녀를 무시하는지 아니면 주위의 모든 것에 무관심한 탓인지, 마치 투명한 벽이 그 아이를 둘러싸고 있는 것 같았다. 심지어 물어보는 말에도 고개만 살짝 끄덕이며 의사표시를 한다.


'얘가 날 무시하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묻는 모든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하루는 화가 나서 책망하듯 쏘아붙였다. 

    

"고등학교 면접하러 가서도 고개만 끄덕일래? 난 네가 울더라도 적확하게 표현하면 좋겠어."     


그 아이는 내 말을 집중해서 듣더니, 역시나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졌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아이의 목소리를 듣고 싶었지만, 일 년 내내 대답을 들을 수 없었다. 외로움은 그림자처럼 너무 자연스럽게 아이와 함께했다. 내가 그녀였다면 이미 학교에 다니지 않겠다고 부모님에게 떼를 썼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도 꼬박꼬박 등교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나는 해내지 못할 일을 담담하게 버티는 모습이 오히려 나를 가르치고 있는 것 같았다.    

 

‘너는 이렇게도 잘 버티는구나, 나도 좀 더 힘을 내볼게’    

 

아이의 어머니는 외국인이다. 아버지와 이혼하고 혼자서 아이를 양육하고 있었다. 어머니의 말로는 초등학교 때는 친구와 이야기를 잘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입을 닫았다고 했다. 아마 다문화가정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며 친구와 멀어진 것 같다고 했다. 학교에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던 아이가 집에 와서는 화를 낸다고 한다. 어머니는 딸보다 한국말을 못 하므로 자신의 마음을 딸에게 제대로 전달할 수 없어 답답하다고 했다. 그런 자신을 딸이 무시하듯이 바라볼 때면 가슴이 아프다고 했다.


정신분석가 마이클 아이건은 무기력한 아이들의 반응에는 정신적 죽음이 있다고 했다. 나는 아이도 그와 비슷한 상태가 아닌가 생각했다. 하지만 학교에서 침묵하던 아이가 집에서는 화도 내며, 말을 한다고 했을 때 그것은 어쩌면 건강한 반응이라고 생각했다. 아마 집에서 자신의 마음을 표현할 수 있었던 이유는 어머니를 무시해서가 아니라, 어머니가 딸의 이야기를 들을 준비가 돼 있었기 때문은 아닐까.  

 

'나는 아이의 말을 들을 준비가 돼 있었을까?'     

아이의 어린 시절 수치심을 이해하려고 했을까, 지금의 외로움을 함께 느껴보려고 했었나. 아이는 무기력한 게 아니라 어쩌면 내가 준비돼 있지 않음을 눈치채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결국 그녀는 고등학교 면접을 무사히 마치고, 자신이 원하는 학교에 진학했다. 1월의 졸업식장에는 어머니가 꽃다발을 품에 안고 내빈석에 앉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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