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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틈새 Apr 19. 2024

3. 항상 늦게 도착하는 마음

"선생님, 제가 암 말기예요."    


순간, 교실 맨 뒷자리에서 힘든 기색을 내비치던 아이의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언제부터인지 알 수 없지만, 태연한 척하는 모습이 그리 대견해 보이지 않던 아이, 이유를 물으면 빙긋 웃기만 하는 아이, 그러고 보니 어머니와 닮았다. 


"요즘 안 하던 조퇴를 해서, 이유를 물어보니 좀 힘들어서 그렇다고 하더라고요."    


"어디가 아프신지"라는 질문을 해서 아픔 속으로 더 끌어들이는 것이 옳은 일인지 잠시 생각했다. 담담히 자신의 상황과 그 탓에 아이가 힘들어하는 것 같다는 말을 하는 어머니를 보며 잔잔히 흐르는 강물이 떠올랐다. 그 잔잔함 밑에는 얼마나 많은 감정이 쌓여있을까.


“알아서 잘하는 아이라서, 그냥 믿고 지켜봐도 훌륭하게 성장할 거예요.”     


하고 싶은 말은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었다. 후에 남겨질 딸을 걱정하는 어머니의 마음이 느껴져 아이의 진로상담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안심해도 된다고, 자신을 너무 탓하지 말라는 말을 해주고 싶었지만, 그런 다정한 말을 처음 만난 학부모에게 담임교사가 하기란 상담의 범주에 속하지 않는 일 같았고, 상담의 주제와 상관없는 단어를 열거해야 하는 부담감이 컸다. 하지만 마음은 항상 말보다 빠른지도 모른다. 학부모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더 신경 쓰고 지켜보겠다는 두리뭉실한 말을 끝으로 상담은 종료되었다. 사실 내가 해줄 수 있는 일도 그것뿐이다.


자신의 아픔보다 아이에 대한 미안함이 온몸을 잠식하고 있던 모습. 안타깝게도 아버지의 임종을 지키지 못했지만, 아마 나의 아버지도 그런 모습이었지 않았을까. 장례식에서 울음이 나지 않는 바람에 난감했다. 주위의 사람들이 울지 않는 나를 보며, ‘저 녀석은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슬프지도 않나?’라고 생각할까 봐. 울음을 터트리고 싶었지만, 도저히 장례식 내내 울음은 나오지 않았다. 아마 발인할 때 잠깐 울었던 것 같다. 고모는 그 모습을 보며 ‘남자라서 그렇게 울음을 참았구나.’라고 하셨다. 울면서도 울음이 나서 다행이다고 생각했다.     


돌아가신 아버지를 생각하면 온갖 후회와 죄책감이 일렁이는 물결 같아서, 잠시만 바라만 봐도 어지러웠다. 상담이 끝나고 나서야 아버지의 마음이 보였다. 이제까지 나의 마음은 어린 시절 아버지의 아들로 있을 때의 마음이었지만, 이제 아들을 둔 아버지의 마음이 보였다.


“아들, 걱정하거나 자책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너와 함께한 시간 내내 아빠는 너무 행복했단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해.”     


아버지에 대한 죄책감이 옅어지자, 나의 마음이 조금 더 깊이 숨을 쉬는 것 같았다. 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하는 일은 아들로서는 요원한 일이다.     


아이도 오늘의 어머니 마음을 언젠가는 이해할 것이다. 그 이해의 날이 늦게 오면 좋겠다. 그리고 아이의 마음이 조금 더 빨랐으면 좋겠다. 스스로를 후회와 죄책감의 웅덩이에 던지고도 쉬이 빠져나올 수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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