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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틈새 Jul 26. 2024

건너거나, 머무르거나. <피아니스트의 전설>

- 그때 본 영화를 지금 다시 보기.

https://tv.kakao.com/v/404995622



무한하게 자리 잡은 육지와 위태롭게 흔들리는 버지니안 호 사이에 다리 하나가 놓여있습니다.

1900년대 버지니안 호 안에서 태어난 나인틴헌드레드는 그 다리를 끝내 건너지 못합니다. 아니 건너지 않습니다. 자신이 쓰고 있던 중절모를 힘껏 바다로 던져버리고 뒤돌아 버지니안 호로 돌아갑니다.

육지에 대한 미련을 중절모와 함께 떠나보냈지만 쉽게 마음이 정리되지는 않았을 겁니다.

 

나인틴헌드레드의 친구 맥스는 육지에 가기만 한다면 피아노 연주를 통해 엄청난 성공과 부를 누릴 수 있고, 사랑하는 퍼든을 다시 만날 수 있을 거라고 말합니다.

 

육지와 연결된 작은 계단 위에 서서 나인틴헌드레드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나인틴헌트레드는 맥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피아노를 봐.

건반은 시작과 끝이 있지.

어느 피아노나 건반은 88개야.

그건 무섭지 않아.

무서운 건 세상이야.

건반들로 만드는 음악은 무한하지

그건 견딜만해, 좋아한다고.

하지만 막 배에서 내리려고 했을 때

수백만 개의 건반이 보였어.

너무 많아서 절대로 어떻게 해볼 수 없을 것 같은

수백만 개의 건반, 그거론 연주를 할 수가 없어.”

 

끝내 작은 계단을 내려오지 않은 나인틴헌드레드는 버지니안 호와 함께 바닷속으로 사라집니다.

 

건넌다는 건은 소년에서 어른이 되는 과업일 수 있고, 발전이며, 극복 또는 치유일 수도 있습니다.

저는 나인틴헌드레드가 그 작은 다리를 아무렇지 않게 건너길 바랐지만 또한 머무르기를 원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버지니안 호와 피아노 연주가 나인틴헌드레드에게 삶의 의미이자 전부처럼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깊고 넓어서 건너지 못하는 게 아니라,

의미를 찾기 위해서,

우리는 때로 머무르기를 자처합니다.

건너거나 혹은 머무르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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