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살 내 여행 친구
한 학기가 끝났다.
첫 해외살이, 첫 국제학교, 첫 중학교, 처음으로 우핸들 운전대를 잡고, 처음으로 낯선 곳에 집을 꾸려낸 시간.
모든 ‘처음’을 지나온 우리에게도 방학이 찾아왔다.
서툴렀지만 포기하지 않았고, 어색했지만 결국 웃음으로 마무리된 나날들이었다.
이 여정을 함께 걸어낸 나와 아들을 위해 조용히 보상을 준비했다.
물론 아들이 바라는 건 ‘무제한 게임 타임’이었겠지만, 나는 그보다 오래 기억될 무언가를 주고 싶었다.
그렇게 시작된 여행.
첫 구간은 치앙마이에서 방콕까지 슬리핑기차.
아들이 먼저 말했다. “기차 타고 가면 안 돼? 우리, 사파에서 탔던 거 기억나?”
그 말에 나는 선뜻 고개를 끄덕였다.
기차는, 여행을 여행답게 만들어주는 수단이니까.
소박한 치앙마이 기차역은 시골역 특유의 여유와 정겨움이 가득했고, 대합실에는 세계 곳곳에서 모여든 배낭여행자들이 삼삼오오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역 앞의 세븐일레븐에서 간단한 저녁거리와 간식을 사고 돌아서는 길, 나는 그제야 로띠 노점을 발견했다.
“아, 저거… 다음엔 꼭 먹자.”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아들의 얼굴에도 작은 아쉬움이 스쳤다.
기차는 생각보다 일찍 도착해 있었고, 우리는 출발 전부터 객차 안에 들어가 시원한 공기 속에서 여유롭게 저녁을 먹을 수 있었다.
세븐일레븐에서 사온 간편식을 나눠 먹으며 아들과 마주 앉아 있으니, 이상하게도 집에서보단 덜 부딪히는 느낌이 들었다.
기차는 밤을 향해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창밖으로는 구름 걸린 산자락과 간간히 펼쳐지는 논이 스쳐 지나갔다.
강릉행 경춘선을 떠올리게 하는 풍경 속에, 야자수와 바나나 나무만 없었더라면 착각할 법했다.
한 시간쯤 지나자 승무원이 침대를 세팅하러 왔다.
기존의 좌석이 순식간에 침대로 변해갔고, 다림질까지 되어 있는 새하얀 침구가 깔리는 모습은 작은 감탄을 자아냈다.
우리는 잠들기 전까지 비좁은 1층 침대에 나란히 누웠다. 그날만큼은 서로의 핸드폰 사용 시간에 잔소리도, 대꾸도 없었다. 그저 나란히 누워 게임을 하다, 창밖을 보며 조용히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엄마와 아들 사이에 흐르던 긴장 대신, 여행 친구 사이의 느슨한 공기가 고요히 흘렀다.
기차는 흔들렸고, 잠은 깊지 않았다.
하지만 그날의 밤은 아주 오래 기억될 것 같았다.
침대 맡 조그만 창을 통해 들어오는 불빛 속에서,
나는 생각했다.
다음 여행지가 어디든, 거기에 슬리핑기차가 있다면, 나는 또다시 그 기차를 탈 것이다.
그 기차에서, 다시 한 번 지금 같은 밤을 맞이하고 싶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