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도착한 꿈

배경화면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법

by 나름

카오산로드의 낮과 밤은

지칠 줄 모르는 열기로 가득했다.

전 세계에서 모여든 배낭여행자들의 함성,

코끝을 찌르는 고수 향기,

그리고 길거리마다 울려 퍼지는 이름 모를 음악들.


그 소란함 속에 며칠을 머물다 보니

이곳저곳을 속속들이 즐겼다는 포만감과 함께

묘한 심심함이 찾아왔다.


화려한 네온사인 뒤편,

미로처럼 얽힌 골목 안쪽으로 발걸음을 옮기자

수많은 현지 여행사가 옹기종기 자리 잡고 있었다.

세련된 간판 하나 없이,

그저 여행사마다 비슷한 바다 사진들이

덕지덕지 내걸려 있을 뿐이었다.


강렬한 태양빛에 바래 노란색이 되어버린,

한때는 눈이 시리도록 아름다웠을

사진 속 바다들을 보고 있자니,

문득 이 소란스러운 도시를 탈출하고 싶다는 욕구가 차올랐다.


“바다 갈까? 태국은 바다잖아.”


동생과 나는 약속이라도 한 듯 서로의 눈을 맞췄다.

사실 조금 무섭기도 했다.

"여기서 예약했다가 사기당하는 거 아냐?”

"내일 아침에 진짜 차가 오긴 올까?"

그런 의구심이 우리를 머뭇거리게 했다.

하지만 그 허름함마저

배낭여행의 낭만이라 믿고 싶었다.


우리는 그나마 유리창이 깨끗하고

관리가 잘 되어 보이는 여행사 하나를 골라,

다음 날 아침에 출발하는 상품을 예약했다.

이름도 생소한 섬으로 향하는 티켓을 손에 쥐자,

비로소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이튿날 아침,

설레는 마음으로 서둘러 여행사로 향했다.

그러나 돌아온 대답은 허망했다.


"모집 인원 미달로 취소됐어."


청천벽력 같은 소리였다.

나는 화가 치밀어 짧은 영어 단어들을 전투적으로 내뱉으며 따져 물었지만, 주인장은 그저 무심하게 어깨를 으쓱할 뿐이었다.

동생은 황당하지만 여행이란 게 그런 거 아니겠냐며

나를 다독였다.


이대로 숙소에 들어가긴 시간이 너무 아깝다.

이미 마음을 바다에 두었기에 가야만 했다.

그래서 다른 여행사를 찾아갔고,

당장 출발할 수 있는 상품을 결제했다.


그렇게 우리는 낡고 허름한 봉고에 몸을 실었다.
출발 직전, 우리는 소리를 낮춰 말했다.

“우리 지금 팔려가는 건 아니겠지?”

진담 반, 농담 반.
하지만 차창 밖 풍경이 바뀔수록

우리의 걱정도 조금씩 웃음으로 바뀌었다.


비릿한 바다향이 가까워질 즘 버스가 멈췄다.
기사 아저씨는 우리를 항구에 내려주고

순박한 얼굴로 웃으며 손을 흔들고 돌아갔다.
아까 했던 ‘팔려간다’는 농담이 괜히 미안해졌다.


한 시간쯤 배를 타고나서야 겨우 도착한 섬, 코사멧.

배에서 내리자마자 마주한 풍경은

어딘지 익숙한 아름다움이었다.
에메랄드빛 바다와 새하얀 모래사장, 야자수 한 그루.

망망대해 한가운데 미지의 섬.


드디어 나는 내 모니터 배경화면 속,

비현실적인 파란 세상 안으로 걸어 들어온 것이다.


아침이면 발가락 사이를 부드럽게 메우는

고운 모래사장을 걷고,

한낮엔 알록달록한 튜브에 매달려

넘실대는 파도의 리듬을 탔다.

출출해질 때쯤엔 길가에서 산 망고스틴을
열 손가락이 빨갛게 물들도록 까먹으며 웃었다.


해 질 녘이 되면 숯불에 구운 게 요리에

맥주를 마시며 수다를 떨고,

어둠만큼 깊어지는 파도 소리를 들으며

손에 잡힐 듯 가까이에서 빛나는 별을 보았다.

바다와 모래, 그리고 소금기 머금은 바람뿐인

이 순간이 더없이 완벽하고 행복했다.

아무 계획도 없던 여행이 이렇게 흘러갔다.


태국은 그렇게, 내 인생의 첫 여행지가 되었다.
그 열대의 밤, 천정의 팬을 올려다보며 나는 생각했다.

‘언젠가 다시 와야지.’


그때는 알지 못했다.
그 ‘언젠가’가 20년 후, 아이와 함께가 될 줄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