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을 넘는 일은 싱거웠다. 기차 창밖 풍경이 갑자기 너무 깨끗해졌다 싶으면 오스트리아다. 왠지 옷깃에 묻은 케첩 자국을 가려야 할 것 같은 기분. 도시 전체가 "나 교양 있지?"라고 묻는 것 같다. 빈 소년 합창단의 고음이 배경음악으로 깔릴 것만 같은 엄숙함 속에서 나는 내 안의 소란스러움을 잠시 가라앉혔다.
빈(Wien)은 도시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궁전이었다.
길을 걷는 것만으로도 품격을 유지해야 할 것 같고, 어쩐지 행동 하나하나에 격식을 차려야 할 것 같은 묘한 압박감이 공기 중에 흐르고 있었다.
영국, 프랑스에서 연을 맺은 동행자들은 영화 <비포 선라이즈>의 낭만을 좇아 대관람차를 타야 한다고 입을 모았지만, 내 눈엔 그 거대한 철제 구조물이 궁전 같은 이 도시에서 혼자 겉도는 이질적인 존재처럼 보였다.
우리는 그들과 화이팅 넘치는 인사를 나눈 뒤 잘츠부르크로 향했다.
빈이 거대한 궁전 그 자체였다면,
잘츠부르크는 ‘궁전 모양의 아기자기한 오르골’이었다.
도시 입구에서부터 나를 반긴 것은 모차르트의 얼굴이 붙은 초콜릿들. 이 도시는 딱 그 모차르트 초콜릿 하나로 모든 것이 설명되는 곳이었다. 젊은 천재 음악가가 남긴 달콤하고도 경쾌한 유산이 도시 구석구석을 채우고 있었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피아노 소리에 이끌려 닿은 광장.
그곳엔 이름 모를 음악가가 낡은 피아노 앞에 앉아 연주를 하고 있었다. 그가 건반을 누를 때마다 공기는 투명한 음표로 꽉 찼고, 선율의 박자에 맞춰 비둘기 떼가 일제히 날아올랐다.
갑자기 영화 속 한 장면으로 툭 떨어진 것 같은 황홀함.
나는 한참을 그 자리에 서서 생각했다. 그 어떤 값비싼 공연장에서 듣는 음악보다, 광장의 바람을 맞으며 마주한 이 우연한 선율이 훨씬 더 아름답고 나답다고.
오스트리아의 훈훈한 기억을 배낭에 쑤셔 넣고 도착한 체코 프라하역은 전혀 다른 공기를 내뿜었다.
풍경은 예술인데, 내 눈앞은 기차에서 쏟아진 여행자들로 어수선하다. 다들 무거운 배낭 메고 눈을 굴리는 게 딱 봐도 여행 동지들이다.
그렇게 적당한 사람을 물색하던 서로의 눈이 마주치면,
"혹시 한국인이세요? 택시 합승하실래요?"
를 건넨다.
그렇게 즉석에서 '프라하 절약 원정대' 결성.
교통비 아끼려고 뭉쳤다가 숙소까지 같이 잡게 되었다.
아파트인지 빌라인지 모를 낡은 게스트하우스의 문을 여니 먼저 온 여행자들의 빨래 냄새가 훅 끼친다. 이미 두 방을 서양인 커플이 차지하고 있었다.
우리는 일행이 된 지 한 시간도 채 안 됐지만, 희한하게도 그 게스트하우스 안에서만큼은 몇십 년 우정처럼 끈끈했다. 낯선 타인과 얇은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잠드는 밤. 20대 여행자의 염치는 주머니보다 더 가벼워야 살아남는다.
그냥 잠들긴 아쉽다는 사람들 몇이 오면서 봐둔 옆 건물 바로 향했다. 체코의 밤을 접수하겠다며 호기롭게 나갔던 녀석들이 30분도 안 돼서 문이 부서져라 뛰어 들어왔다. 얼굴은 하나같이 밀가루 뒤집어쓴 듯 하얗게 질려 있다.
"야, 무슨 일이야? 강도라도 만났어?"
"아니, 거기... 게이바였어! 잡아먹힐 뻔했다고!"
맥주 한 잔 마시러 들어갔다가 낯선 형님들의 뜨거운 시선 세례에 제대로 낚일 뻔했단다. 누군가 윙크를 보냈을 때, 녀석들은 본능적으로 느꼈다고 한다.
'아, 여기서 잘못하면 납치가 아니라 수확당하겠구나.'
가슴을 쓸어내리는 녀석들 덕분에 숙소는 웃음바다가 됐지만, 문득 묘한 생각이 든다.
그들이 느낀 것은 실재였을까, 아니면 낯선 취향에 대한 본능적인 방어기제였을까. ‘잡아먹힐 뻔했다’는 비명 섞인 농담 뒤에는, 우리가 얼마나 좁은 세상의 틀에 갇혀 살아왔는지를 보여주는 씁쓸한 벽이 서 있었다. 여행이란 결국 내가 쌓아온 편견의 벽을 하나씩 허물어가는 과정임을, 그날의 소란 속에서 깨달았다.
체코 물가는 ‘혜자’ 그 자체였다. 스테이크를 썰고 맥주로 목을 축이니 슬슬 '교양' 좀 챙겨볼까 하는 허세가 올라왔다. 영국 뮤지컬 뺨치는 퀄리티를 상상하며 예약한 마리오네트 인형극 ‘돈 조반니’.
하지만 막이 오르는 순간, 나의 낭만은 박살 났다. 무대 위에서 흔들리는 건 예술이 아니라, 관절염 걸린 듯 삐걱대는 조악한 나무토막들이었다. 알고 보니 우리가 예약한 인형극은 오리지널 공연이 아닌 호구를 위한 짝퉁 공연이었다. 체코의 기억은 그렇게 ‘교활함’으로 덧칠됐다.
그럼에도 프라하의 밤거리는 여전히 사기적으로 예쁘다. 주황색 가로등이 비추는 카렐교는 금방이라도 마법이 일어날 것 같다. 하지만 그 화려한 풍경 이면에는 바가지 씌우는 택시 기사와 짝퉁 인형극, 그리고 우리 같은 이방인을 지켜보는 서늘한 시선들이 섞여 있다.
오스트리아가 정교하게 닦인 은식기라면, 체코는 화려한 종이로 감싼 낡은 상자 같다. 열었을 때 육즙 터지는 고기가 나올지, 삐걱대는 나무 인형이 나올지는 순전히 복불복이다.
이 도시는 묻는다.
“내 낭만을 가지려면 교활함도 감수해야 하는데, 괜찮겠어?”
나는 대답 대신 남은 맥주를 털어 넣었다. 씁쓸한 뒷맛. 이게 프라하의 진짜 맛일지도 모르겠다. 가로등 아래 구걸하는 노숙자의 그림자가 카렐교 성인상보다 더 길게 늘어지는 밤이다.
완벽한 오르골 소리뿐만 아니라 삐걱거리는 나무 인형의 소음까지도 내 삶의 풍경으로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는 것이 여행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