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기차역에 발이 닿자마자 누군가의 시선이 강하게 느껴진다. 남루한 옷차림으로 손을 내밀고 빤히 쳐다보는 그들과 눈이 마주치자 잠시 사고가 정지했다. 나는 먹고 있던 감자칩 몇 알을 그들의 손 위에 살포시 올렸다. 그러자 알아들을 수는 없지만 느낌으로 짐작되는 욕을 한 사발 얻어먹었다. 돈을 달라는 것인 줄 모르고 과자를 건넨 나의 순진함이라니… 로마의 첫인상은 그렇게 짭짤하고도 무안했다.
프랑스의 서늘한 가을에서 로마의 푹푹 찌는 여름으로 순간 이동한 탓에 체력은 이미 바닥이었다. 우리를 살린 건 센스 넘치고 정 많은 게스트하우스 주인이 끓여준 삼계탕이었다.
“더운 날 기력 회복에는 삼계탕이 최고예요.”
뜨끈한 음식과 푸근한 인심이 가득한 게스트하우스에서 하루 푹 쉬기로 했다. 집처럼 편안한 이곳에서 하루쯤은 빈둥거리고 싶은 마음이 컸다. 하루하루가 돈으로 매겨지는 값비싼 유럽 여행 일정에 지쳐 있었다는 것을, 편안한 곳에 오니 비로소 느꼈던 모양이다.
“이게 진정한 ‘로마의 휴일’ 아니겠어?!”
여행에서 얻는 것은 숨 막히는 절경과 의미 깊은 유적뿐만이 아니다. 이곳을 거쳐 간 수많은 여행자가 남긴 흔적을 뒤적거리고, 경험 많은 주인과 소소한 이야기를 나눈 게스트하우스 거실이 우리만의 로마였다. 그렇게 충분히 에너지를 충전한 후에야 우리는 본격적으로 이탈리아 여행을 시작했다.
로마에서는 숙소 동료들과 몰려 나가 트레비 분수에 동전을 던지고, '진실의 입'에 손을 넣으며 뻔한 영화 속 장면들을 재현했다. 손목이 잘릴까 봐 내심 쫄았던 건 비밀이다.
하지만 낭만적인 영화 속 장소들과 달리, 콜로세움은 들어설 때부터 그 압도적인 규모에 입이 벌어졌다.
그러나 이내 가슴 한구석이 서늘하게 가라앉는다. 이 넓은 광장에 홀로 서서 맹수와 마주한 검투사는 얼마나 두려웠을까. 얼마나 살고 싶었을까. 수천 년 전, 이곳에서 피 흘리는 광대로 죽어갔을 그들의 비명이 돌덩이 사이사이에 박혀 있는 기분이었다. 누군가에게는 구경거리였을 장소가 누군가에게는 도살장이었다는 사실이 웅장함보다 먼저 살갗을 스쳤다.
로마를 떠나 마주한 베네치아(Venezia)는 그야말로 생경한 물의 도시였다. 로마에서 만난 멤버들과 '한국인'이라는 이유 하나로 뭉쳐 도미토리를 찾아 미로 같은 골목을 헤매다녔다. 여럿이 모인 덕에 적은 비용으로 곤돌라를 타는 호사도 누렸다. 좁은 수로를 빠져나가는 사공의 노련한 실력도 놀라웠지만, 나를 더 사로잡은 건 물길을 따라 공명하는 그의 깊은 성량이었다. 그 울림이 어찌나 웅장한지 배삯의 절반은 노래 값이라 해도 기꺼이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러나 곤돌라를 타고 다가간 도시는 멀리서 보던 환상과는 또 다른 얼굴을 하고 있었다. 물에 잠겨 부식되고 이끼 낀 건물 하단을 보니, 여긴 여행지로선 최고일지 몰라도 삶의 터전으로선 고단하겠다 싶었다. 낭만은 역시 적당히 거리를 두고, 한 발짝 떨어져서 볼 때만 유효한 법이다.
베네치아의 낭만을 뒤로하고 찾아간 남부의 관문 나폴리(Naples), 원조 피자에 대한 기대가 최고조였다. 하지만 그곳의 피자는 감동 대신 혀 마비를 선사했다. 얼마나 짠지, 한 입 먹자마자 콜라를 들이켜야 했다. 동생은 나폴리 사람들이 바닷물로 반죽하는 게 분명하다며, 피자에서 파도 소리가 들린다고 투덜댔다.
다행히 그 소금기를 씻어준 건 카프리(Capri)의 절경이었다. 깎아지른 절벽과 코발트블루의 바다를 보니 유럽 부자들이 왜 여기 별장을 박아두는지 단번에 납득이 갔다. 길을 묻는 어린 여행자에게 버스를 멈추고 내려와 길을 알려주던 기사 아저씨의 친절은 그 풍경만큼이나 비현실적이었다.
“이런 데 살면 마음도 저절로 태평해지나?”
코발트블루의 바다를 멍하니 바라보며 내가 묻자, 동생이 기다렸다는 듯 냉소적으로 대꾸했다.
“누나, 배려도 결국 통장 잔고랑 마음의 여유에서 나오는 거야.”
동생의 뼈 때리는 말에 나는 씁쓸한 입맛을 다셨다. 생각해보면 서울의 버스 기사님들의 퉁명스러움은 그분들이 본래 삭막한 사람이라서가 아니었을 거다. 정시 운행이라는 빽빽한 계획표를 지키기 위해, 느린 할머니에게 호통을 치고 길을 묻는 이에게 건성으로 대답하며 서둘러 가속 페달을 밟아야만 했던 절박함이었을지 모른다.
배려하고 싶어도 배려할 '시간의 잔고'가 없는 삶. 경적 소리 가득한 서울이었으면 카프리의 저 아저씨도 그냥 쌩하고 지나쳤을지도... 다정함은 성품만으로 지키기 어렵다. 어쩌면 카프리의 이 눈부신 풍경이 기사 아저씨의 마음을 한 뼘 더 넓혀준 선물은 아니었을까. 그런 생각이 스치자 잊고 있던 서울의 팍팍함이 떠올랐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 깨달음은 위로가 되었다. 우리가 가끔 날카로웠던 건 나쁜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단지 너무 빡빡한 계획의 속도에 치여 여유가 말라버렸기 때문이라는 핑계를 찾았으니까.
이탈리아는 한 나라라고 하기엔 도시마다 공기도, 맛도, 성격도 너무 달랐다. 거대한 유적지 로마부터 몽환적인 베네치아, 거칠고 여유로운 남부까지. 마치 여러 나라를 이어 붙인 듯한 이 풍성한 다채로움이 내가 이 나라를 다시 찾고 싶은 이유다. 이탈리아 하나만 제대로 털어도 여행은 충분히 완성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