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의 후끈한 열기를 뒤로하고
우리는 국경을 넘는 야간열차에 몸을 실었다.
생애 처음 마주한 슬리핑 기차
객실은 생각보다 비좁았지만,
그 작은 공간은 낯선 설렘으로 채워져 있었다.
2층 침대에 몸을 뉘어 만끽하는 아늑한 고립감.
배낭 여행자라는 사실이 실감 나던 순간.
규칙적으로 덜컹이는 기차는 거대한 요람처럼
잔뜩 고조된 우리를 깊은 잠으로 다독였다.
창밖으로 점멸하며 스쳐 지나가는
이름 모를 간이역의 주황색 불빛.
천장에 부드러운 궤적을 그리며 지나가는
그 빛줄기를 따라,
우리는 지도가 아닌 시간의 경계 위를 달리고 있었다.
기차 안에서 맞이한 아침은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식사를 건네는 직원의 다정한 목소리에
눈을 비비며 창밖을 보았을 때, 나는 숨을 멈췄다.
초록빛 구릉 위로 점점이 박힌 예쁜 집들.
어릴 적 은행애서 받은 달력 속 풍경 위로
기차가 서서히 미끄러져 들어가고 있었다.
선명한 원색의 그림 속으로 걸어 들어온 듯한 착각.
우리가 짐을 푼 곳은 인터라켄의 백패커 하우스.
알프스 산자락이 거대한 병풍처럼 뒤를 감싸고,
옆으로는 게토레이에 우유 한 방울 떨어뜨린 듯한
에메랄드빛 계곡물이 세차게 흐르고 있었다.
소박한 산장 마당 한 켠에는 주인 할아버지가
손자들을 위해 지어두신 작은 오두막이 보였다.
누군가에게는 일생을 걸고 찾아와야 하는 압도적인 풍경도, 누군가에게는 그저 손주들의 놀이터가 되는 평범한 일상일 뿐이라는 사실이 주는 묘한 부러움.
하지만 스위스의 아름다움에는 혹독한 대가가 따랐다.
'후덜덜'하다는 말로도 부족한 살인적인 물가.
우리는 식당 대신 마트로 향했다.
붉은 빛깔이 선명한 먹음직스럽게 다듬어진 스테이크용 고기 팩을 반갑게 집어 들었는데, 이름표를 확인한 순간 눈이 커졌다.
소가 아닌 말고기!
그제야 정육 코너를 자세히 살펴보니 그곳은 흡사 작은 동물도감 같았다.
사슴, 노루, 토끼, 심지어 멧돼지까지.
마치 알프스의 야생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식재료들 앞에서 여행자적 호기심이 발동했다.
‘이곳에서만 접할 수 있는 고기를 경험해 보는 게 진정한 현지 체험 아닐까?’
하지만 막상 고기를 고르려니 묘한 미안함이 손끝을 망설이게 했다.
사슴고기 팩 위로는 밤비의 맑은 눈망울이 겹쳐졌고,
토끼고기 앞에서는 풀을 오물거리던 하얀 토끼의 얼굴이 떠올랐다.
문득 그동안 소와 돼지에게 미안함을 느끼지 않았다는 사실이 미안해졌다.
먹고 먹히는 것이 자연의 섭리라지만,
더 부드러운 육질을 위해 짧은 생을 고되게 살다 가는 생명들이 있다는 사실에 고개가 숙여졌다.
한참을 고뇌하다 결국 말고기를 집어 들었다.
“말은 좀 덜 미안할 것 같아. 나랑 그나마 덜 친하거든.”
나의 궤변에 동생은 기가 찬 듯 헛웃음을 터뜨렸다.
평소 토끼를 보며 쌓아온 내적 친밀감에 비해, 살면서 몇 번 마주친 적 없는 말은 미안함의 무게가 훨씬 가벼웠다. 덩치가 큰 만큼 죄책감도 넓게 분산되리라는 기적 같은 자기 합리화.
우리는 그 '덜 미안한' 스테이크를 들고 숙소로 향했다.
다음 날, 융프라우요후에 올랐을 때
우리를 맞이한 뜻밖의 위로는 신라면이었다.
티켓에 포함된 교환권으로 받은 그 익숙한 빨간 로고.
한국의 위상이 지금 같지 않았던 2005년,
전 세계 여행자들이 모여드는 공간에서
우리 글자가 박힌 라면을 만나는 자랑스러움.
우리는 교환권으로 맛본 한 그릇에 만족하지 못하고,
기꺼이 만 원이라는 거금을 들여 하나를 더 주문했다.
단순히 배를 채우기 위한 식사가 아닌,
낯선 땅의 정점에서 확인한 우리 존재의 증명이자
뿌듯함을 향한 낭만 섞인 애국심.
“이 높은 데까지 와서 우리 라면을 먹다니, 진짜 감격스럽다. 그치?”
나의 말에 국물을 들이켜던 동생이 환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그러게. 누나, 근데 여기 진짜 좋다. 라면 맛도 맛인데, 눈앞에 펼쳐진 저 풍경이 비현실적이야.”
동생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리자,
만년설이 햇빛에 반사되어 보석처럼 부서지고 있었다.
그 압도적인 황홀을 두고 떠나야 한다는 사실이 못내 아쉬웠다. 이미 예매해 둔 파리행 기차표가 손바닥 안에서 무겁게 느껴졌다.
지금 떠나지 않으면 티켓은 휴지 조각이 될 테고, 금쪽같은 예산은 깎여 나갈 터였다. 하지만 저 눈부신 설산을 뒤로하고 기차역으로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효율을 따지자면 떠나야 했지만, 마음은 이미 이 풍경 속에 닻을 내리고 있었다.
결국 우리는 파리행 티켓을 포기하기로 했다.
아까운 예약금보다, 지금 이 황홀함을 더 누리고 싶은 욕심이 이겼다. 즉흥적인 우리에게 사전 예약은 오히려 독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며, 우리는 숙소로 돌아왔다.
계획을 버리자 비로소 풍경이 온전히 우리의 것이 되었다.
평화롭다 못해 고요한 스위스의 주말은 당황스러웠다.
모든 상점이 약속이라도 한 듯 문을 닫아버려 갈 곳이 없어진 우리는 숙소 거실에 모여 앉았다.
24시간 불이 꺼지지 않는 서울에 익숙했던 우리에게, 이 완벽한 정지는 일종의 조난과도 같았다.
하지만 결핍은 뜻밖의 풍요를 불러왔다.
함께 지내던 여행자들과 종이에 그려 넣은 '수제 화투',
그리고 주인 할아버지가 선뜻 내어주신 맥주.
알프스 만년설 아래서 그 귀한 맥주를 아껴 마시며
화투판을 벌였던 그 엉뚱한 밤.
관광객의 의무를 박탈당한 순간에야
비로소 우리는 서로의 얼굴을 보고,
낯선 이와 술잔을 나누며
'진짜 여행'을 시작하고 있었다.
여정의 끝자락, 취리히에서 마주친 호숫가 산책로.
인터라켄의 밝은 물색과는 전혀 다른,
속을 알 수 없을 만큼 깊고 푸른빛을 머금은 물결.
그 짙푸른 호숫가를 동생과 나란히 걷던 시간,
나는 문득 서울의 그 수많은 길을 떠올렸다.
한강 변의 산책로와 집 근처의 작은 공원들.
분명 서울에도 내가 걸을 수 있는 길은 가까이 있었다. 하지만 나는 단 한 번도 그 길들을 '걷기 위해' 나선 적이 없었다. 늘 무언가를 사거나, 누군가를 만나거나, 목적지에 닿기 위해 그 길들을 '해치우듯' 지나쳤을 뿐.
나는 내가 얼마나 '효율'이라는 감옥에 갇혀 살았는지 비로소 실감했다.
그저 깊은 물결을 바라보며 나란히 걷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채울 수 있는 삶.
여유는 알프스의 만년설이나 취리히의 호수 같은 압도적인 풍경에만 깃들어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풍경이 주는 선물이 아니라,
목적지 없이도 기꺼이 길 위를 서성일 수 있는
'마음의 태도'였다.
서울에서도 가질 수 있었으나
한 번도 누리지 못했던 그 평범한 권리.
나는 국경을 몇 개나 넘어서야
이 짙푸른 물결 위에서
뒤늦게 발견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