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획 밖의 여행, 궤도 위의 삶으로

by 나름



시간이 흐르고 여행의 기억이 여과기를 거치듯 걸러지고 나면, 결국 마지막까지 마음 한구석을 채우는 건 풍경도 유적지도 아니었다.


물론 콜로세움의 장엄함이나 베네치아의 몽환적인 수로는 그 자리에 그대로 서서 나를 압도했다. 하지만 지나고 보니 내 마음을 더 거세게 흔들었던 건 그 풍경 속에서 나와 마주치며 살아 움직이던 것들이었다. 풍경과 유적은 변함없이 그 자리를 지키고 서 있지만, 내 여행에 생명력을 불어넣은 건 예기치 못한 순간에 서로의 온기가 맞닿았던 찰나였기 때문이다.


기어이 삼계탕을 끓여 내던 게스트하우스 주인의 분주한 손길, 정해진 배차 간격을 어기면서까지 버스를 멈추고 내려 길을 알려주던 기사 아저씨의 다정함, 그리고 우리에게 짝퉁 인형극 표를 팔며 능청스럽게 웃던 극장주의 뻔뻔함 같은 것들.


계획표에는 절대 적어넣을 수 없는 이 생동감 넘치는 우연들이야말로 내 여행의 진짜 주인들이었다. 해변 모래사장에 주저앉아 마시던 미지근한 맥주의 목 넘김, 귓가를 때리던 파도 소리, 그리고 길가에서 꼬리를 흔들던 이름 모를 강아지의 온기까지.


완벽한 일정표는 나를 똑똑한 여행자로 만들었을지 모르지만, 그 빈틈을 비집고 들어온 이 ‘움직이는 우연’들은 나를 조금 더 유연한 사람으로 만들어 주었다. 이제 나는 안다. 계획대로 살지 않아도 세상은 무너지지 않으며, 오히려 그 어긋난 길목에서 생각지도 못한 온기와 마주칠 수 있다는 것을.




하지만 그때의 나는 몰랐다.
그 ‘움직이는 우연’이, 언젠가는 설렘이 아닌 고민의 얼굴로 다가오게 될 줄은.


여행은 끝났고, 나는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정해진 출근 시간과 반복되는 업무, 그리고 익숙한 사람들 사이에서 모든 것이 계획표 위에 정확히 놓여 있는 삶이 시작되었다. 한때는 그 틈을 비집고 들어오던 우연들이 나를 설레게 했지만, 이제는 그 틈 자체가 좀처럼 허락되지 않는 시간 속으로 서서히 밀려 들어가고 있었다.


결혼과 출산, 그리고 책임이라는 이름의 무게는 그렇게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나를 또 다른 궤도 위에 올려놓았다. 이전보다 훨씬 빠르고, 훨씬 단단하게 고정된 그 궤도 위에서 나는 더 이상 온전히 나 하나로 존재하지 않았다.


온전히 나를 위해 쓰이던 시간은 어느새 잘게 나뉘어 엄마로, 아내로, 그리고 누군가의 구성원으로 흩어졌고, 그 각각의 이름들은 내가 감당해야 할 역할과 책임으로 나를 조금씩 다른 방향으로 끌어당기고 있었다.


그래서일까. 계획은 점점 더 촘촘해졌지만, 삶은 오히려 그 계획에서 더 자주 어긋나기 시작했다. 예상하지 못한 변수들은 일상 곳곳에서 불쑥 모습을 드러냈고, 내 의지와는 무관하게 흐름을 바꾸어 놓았다. 그럴 때마다 나는 한 박자 늦게 멈춰 서서, 어디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지를 가늠해야 했다.


그럼에도 이상하게도, 완전히 무너지지는 않았다.
어느 순간 문득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이미 한 번,

계획이 어긋나는 순간을 견디는 법을 배웠다는 것을.

그때의 나는 그것을 여행이라 불렀고, 그 속에서 나는 우연을 밀어내지 않고 받아들이는 법을 익혔다.

어쩌면 30대의 나는, 그때 만들어진 근육으로 이 낯선 삶의 균형을 가까스로 붙잡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제,

30대의 이야기가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