칙칙한 영국, 서늘한 프랑스

에펠탑 너머에서 나의 자리 찾기

by 나름



런던 히스로 공항에 발을 내디뎠을 때, 나는 비로소 내가 ‘진짜’ 시나리오 속에 들어왔음을 실감했다. 텔레비전 화면으로만 보던 붉은 2층 버스와 고풍스러운 건물들이 눈앞에 펼쳐지자 낯선 설렘이 차올랐다.


빅토리아 역 근처, 한국인 유학생 세 명이 운영하던 비좁은 게스트하우스는 그 설렘에 현실감을 더하는 공간이었다. 낯선 땅에서 악착같이 살아가는 청춘들의 치열함이 2층 침대 사이마다 빽빽하게 박혀 있었다. 낡은 매트리스에서는 삐걱이는 소리가 났고, 방 안엔 누군가 말려둔 덜 마른빨래 냄새가 섞여 있었다.


"야, 우리도 나중에 이런 거 하나 차려서 지내면 어떨까?"


낯선 땅에 발만 붙이면 일단 인생 2막 설계부터 시작하고 보는 20대 여행자의 종특. 사실 그것은 정해진 대로 살지 않아도 된다는 일종의 '옆길 탐색' 본능이었는지도 모른다. 거실은 매일 밤 '인생 상담소'가 됐다. 잘 되던 사업을 접고 무작정 떠나온 사장님부터 자유를 뼈에 새기겠다며 하이드 파크 노숙을 감행하는 영혼까지. 배낭여행은 결국 풍경이 아니라 사람을 만나러 오는 것임을, 그리고 세상에는 내가 알던 정답 말고도 수만 가지의 ‘옆길’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그 치열한 거실에서 배웠다.


런던의 압도적인 현장감을 느끼기 위해 거금을 태워 찾아간 헤이마켓 거리의 고풍스러운 극장. 묵직한 벨벳 향기와 세월의 냄새가 코끝을 스치는 그곳에서 나는 ‘오페라의 유령’을 만났다. 거대한 샹들리에가 천장으로 솟구치고 지하 호수 위로 배가 미끄러지듯 움직일 때, 나는 대사 한 줄 알아듣지 못하면서도 멍하니 입을 벌린 채 숨을 참았다.


‘아, 나 뮤지컬 환장하는 사람이었네.’


비싼 티켓값은 아깝지 않았다.

유럽은 그렇게 생각지도 못한 나의 잠재적 취향을 툭툭 건드려 깨우고 있었다.






기대를 안고 건너간 파리는 생각보다 차가웠다.

가을의 파리는 가이드북 속 낭만보다는 축축하고 습한 냉기에 가까웠다. 스산한 바람이 부는 튈르리 정원에서 바스락거리는 낙엽을 밟으며 걷는데, 문득 쇼윈도에 비친 내 꼴이 보였다. 화려한 트렌치코트와 세련된 향수 냄새를 풍기는 파리지앵들 사이에서, 땟구정물 흐르는 배낭을 메고 꼬질꼬질하게 서 있는 이방인.

어쩐지 자꾸만 주눅이 들었다.


에펠탑의 반짝임은 분명 예뻤지만, 그 밑에서 사진을 찍는 내 모습은 왠지 그 풍경에 어설프게 오려 붙인 스티커처럼 어색했다. 그들은 충분히 친절했으나, 그 화사한 풍경 속에 도무지 끼어들지 못하는 스스로의 초라함이 자꾸 발목을 잡았다. 묘한 불편함. 그 기세에 눌려 자꾸만 어깨가 말려 들어갔다.


그제야 깨달았다. 가이드북이 짙은 형광펜으로 밑줄을 쳐가며 점지해 준 ‘필수 코스’들이, 지금의 나에겐 내 발에 맞지 않는 불편한 구두일 뿐이라는 것을. 남들이 정석이라 말하는 그 번듯한 길 위에서 정작 내가 절뚝거리고 있다면, 이 여행이 다 무슨 소용일까 싶었다.


우리는 미련 없이 가이드북을 덮고 파리 외곽의 한적한 마을로 향했다. 대중교통으로 닿을 수 있는 거리였지만 도심의 소란함은 온데간데없었다. 우연히 마음이 맞은 다른 여행자들과 동행해 머물게 된 시골 주택은 파리의 냉기와는 전혀 다른 온기를 품고 있었다.


지은 지 50년은 족히 되어 보이는 소박한 주택들.

낮은 돌담 위로 넝쿨이 우거진 그 평범한 골목에 들어서서야 나는 비로소 말려 들어갔던 어깨를 펴고 숨을 골랐다.


삐걱거리는 나무 계단을 올라 마주한 아늑한 다락방.

그 창 너머로 먼지 섞인 따스한 햇살이 쏟아질 때,

나는 내가 정교하게 세공된 도심의 화려함보다

세월의 서사가 담긴 고요함 속에서

훨씬 행복해하는 사람임을 선명하게 알게 되었다.


취향을 찾는다는 것은 남들이 좋다는 자리에 나를 억지로 맞추는 것이 아니라, 가장 나다워질 수 있는 자리를 스스로 찾아내는 과정이었다.






하지만 여행 2주 차, 예상치 못한 고비가 찾아왔다.

동생이 심각한 ‘한식 금단 현상’으로 몸져누운 것이다. 유럽의 단단한 빵과 느끼한 치즈는 동생의 한국인 영혼을 만족시키기에 턱없이 부족했다.


“누나… 나 진짜 김치 안 먹으면 죽을 것 같아.

이대로는 오스트리아고 뭐고 못 가.”


동생의 안색은 정말 노랗게 떠 있었다.


우리는 물어물어 파리 외곽의 작은 한식당을 찾아갔다.

빨간 김치찌개 한 그릇이 탁자 위에 놓이자마자 동생은 말도 없이 코를 박고 흡입하기 시작했다. 뜨거운 국물과 고향의 에너지가 혈관을 타고 흐르는 게 눈에 보일 정도였다. 땀을 뻘뻘 흘리며 식사를 마친 동생이 비장한 표정으로 수저를 놓으며 말했다.


“됐다. 이제 오스트리아로 출발하자.”


고향의 맛으로 무장한 우리는 다시 씩씩하게, 다음 여정인 오스트리아행 기차에 몸을 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