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인 2년 차, 스물다섯.
나는 모은 돈을 몽땅 들고 유럽 배낭여행을 계획했다.
너무 충동적이라 스스로도 놀랐지만,
그 시절의 패기는 두려움보다 앞섰다.
부모님은 걱정스러워하셨다.
“너 혼자? 영어도 잘 못하면서?”
결국 남동생과 함께 떠나라는 결론이 났다.
남동생이란 ‘남 같은 동생’의 줄임말 아니겠는가.
우리도 여느 남매와 다르지 않았다.
애틋하지만 대면대면한,
가깝지만 친하다고 말할 수 없는 사이.
동생은 더없이 자상한 사람이지만
그것은 집 밖에서 얘기.
그런 남(같은)동생과 무려 45일을 둘이 보내라고?
조금 막막하면서도 묘하게 기대됐다.
우리의 주머니는 가벼웠지만 시간은 넉넉했다.
그래서 직항 대신 경유 항공권을 고르며
호기롭게 외쳤다.
“경유가 더 싸네? 좋아, 시간보다 돈이지!”
우리는 경유지인 태국에서 열흘간 머물기로 했다.
생애 첫 해외여행지가 그렇게, 아주 우연하게
방콕이 되었다.
공항에서 항공권을 받아 들고 나니 비로소 실감이 났다.
그 패기는 다 어디로 갔는지 갑자기 불안이 몰려왔다.
“우리… 영어 진짜 못하는데 괜찮을까? 국제미아 되는 거 아니야?”
동생은 평온한 얼굴로 짧게 대답했다.
“말 못 하는 사람도, 듣지 못하는 사람도 다 세상 살아.”
그 말이 이상하게 나를 안도하게 했다.
어리게만 느꼈던 동생이 갑자기 든든해 보였다.
아무런 준비도 없이 가이드 북 한 권만 달랑 들고 비행기에 올랐다.
자리에 앉자마자 우리는 책을 펼쳤다.
첫 페이지부터 밑줄을 치며 서로 말했다.
“여긴 꼭 가보자. 배낭여행자들의 성지래”
"카오산로드? 이름도 근사하네."
예상보다 설렘이 빨리 차오르던 순간이었다.
공항 문이 열리자 뜨겁고 습한 공기가
폐 끝까지 밀려왔다.
처음 맡아보는 냄새와 낯선 언어가
우리 생의 장면이 전환되었음을 알렸다.
돈무앙 공항 문 밖을 내딛는 순간,
우리는 여행자가 되었다.
가이드북의 안내대로
카오산로드행 공항버스에 올랐다.
공항버스 창밖으로 펼쳐진 방콕은
내가 알던 질서와는 전혀 다른 세상이었다.
차선도 없이 엉겨 붙어 질주하는
알록달록한 택시들,
그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비집고 들어오는
툭툭의 엔진음이 소란스러웠다.
낡은 건물 외벽을 뒤덮은 원색의 광고판들은
어지러울 정도로 강렬했다.
습한 공기 속에 매연과 향신료, 달콤한 과일향이
한데 섞여 코끝을 스쳤다.
서울의 회색빛 사무실에 갇혀있던 내 감각들이
이 낯선 과부하 앞에 일제히 깨어나는 기분이었다.
조금 무섭기도 했지만,
동시에 기분 좋은 해방감이 전신으로 퍼졌다.
‘아, 드디어 내가 아는 세계의 경계를 넘어왔구나.’
온몸에 돋은 소름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었다.
어지러운 방콕의 풍경에 압도되어
창밖만 멍하니 바라보았다.
알아들을 수 없는 낯선 언어들이
소음처럼 백그라운드에 깔리고,
우리는 놀이공원에 처음 온 어린아이마냥
혼이 쏙 빠져 있었다.
그때였다.
익숙하고 또렷한 한국어가 귀를 파고든 것은.
“한국인이세요?”
그 한마디에 정신이 번쩍 들어 고개를 돌렸다.
그곳엔 인자한 미소를 띤 나이 지긋한 부부가
우리를 보고 계셨다.
그땐 무척 어르신처럼 느껴졌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아마 지금의 내 나이보다
조금 많았던 분들이었던 것 같다.
낯선 이국땅에서 만난 모국어는
생각보다 훨씬 큰 위안이 되었다.
긴장으로 빳빳하게 굳어있던 어깨가
그제야 조금 내려앉았다.
그렇게 우리는 여행에서의 소중한 첫 인연을 만났다.
두 분은 이번 여행이 n번째 배낭여행이라고 하셨다.
배낭여행이라는 것은 젊음의 상징이자 전유물이라 생각했던 나에겐 신선한 충격이었다.
배낭하나 달랑 메고 언제든 떠날 수 있는 용기와 여유를 가진 이 분들이 너무 멋지게 느껴졌다.
그때 그 만남이 지금까지 내 인생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도 모르겠다.
“젊을 때 많이 다녀야 해.
인생에 이런 시간 흔치 않아.”
경험이 많은 두 분은 우리에게 여행 꿀팁도
인생 꿀팁도 전해주셨다.
눈을 반짝이며 듣는 젊은 영혼이 기특하셨는지,
고급 호텔 식당으로 우리를 데려가 밥까지 사주셨다.
낯선 도시 한복판에서 받은 한 끼의 따뜻함이
우리 마음을 오래도록 데웠다.
카오산로드에 도착한 우리는
가이드북에 나온 숙소를 몇 곳 돌아보았다.
그중 비교적(?) 깨끗한 곳에 짐을 풀었다.
비록 며칠이지만 거처가 생기니 마음이 든든했다.
짐을 풀고 밖에 나오니 길바닥엔 개들이 천하태평하게 드러누워 있었다.
부모님께 맡기고 온 내 강아지 '하치'가 생각났다.
'하치의 삶은 행복할까?'
어쩐지 길바닥에 누워 자유를 즐기는 저 개가
우리 하치보다 행복해 보여 조금 씁쓸해졌다.
밤이 깊어질수록 카오산로드는 본연의 색을 드러냈다.
젖은 길바닥 위로 번지는 네온사인이
몽환적인 분위기를 만들고,
노점상의 노란 전구들은 낮게 깔린 매연 사이로
별처럼 일렁였다.
국적도 나이도 알 수 없는 이들이
각자의 자유를 하나씩 걸치고
흔들리는 조명 아래로 모여들었다.
조악한 장신구들과 길게 늘어선 맥주병들이
비현실적인 빛을 내뿜는
이곳은 마치 거대한 만화경 같았다.
우리는 칵테일을 파는 트럭을 발견했다.
트럭 앞에는 알록달록한 비치 체어가
무질서하게 널려 있었고,
다양한 국적의 여행객들이 비스듬히 누워
비닐봉지에 든 칵테일을 즐기고 있었다.
“여기 분위기 너무 좋다. 한잔하고 갈까?”
플라스틱 컵 대신 비닐봉지에 담겨 찰랑거리는
이름 모를 칵테일.
맛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얼음이 아삭 부딪히며 목을 타고 내려가던
그 서늘한 감각은 잊히지 않는다.
딱 그때, 알았다.
'이게 바로 자유구나.'
카오산로드를 걷는 것만으로 마음이 꽉 채워졌다.
왜인지 설명할 수 없지만… 그냥 그랬다.
어쩌면 스물다섯의 심장은 뭔가 새로운 것만 만나도 가득 찼는지도 모른다.
그 화려하고 무질서한 색채들 속에서,
정답만을 강요받던 서울의 무채색 기억들은
아주 멀게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