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팬데믹이 선물한 뜻밖의 궤도

by 나름


나의 40대는

아이의 초등학교 입학과 함께 시작되었다.

마흔이라는 나이가 주는 묵직함과 '학부모'라는 낯선 명함이 교차하던 그 시기, 내 생애 가장 치밀한 계획표가 작동해야 할 시점이었다.


당시 우리가 살던 동네는 교육 인프라가 턱없이 부족했다. 영어 수업 하나를 듣게 하려 해도 엄마들끼리 알음알음 모여 과외 팀을 꾸려야 하는 번거움이 일상이었다. 아이가 책 속에 파묻혀 마음껏 뒹굴며 놀기를 바라는 내 간절한 마음과 달리, 집 근처에는 제대로 된 도서관 하나 없었다.


아이가 좋아하는 수영이나 축구를 하려 해도 학원 버스를 타고 긴 시간 먼 거리를 이동해야 했다. 하필 아이의 하원 시간과 겹치는 서울 시내 도로는 퇴근 행렬로 늘 꽉 막혀 있었고, 아이는 멀미와 피로에 찌든 채 녹초가 되어 집에 돌아왔다. 그럼에도 "축구는 꼭 가야 한다"며 다시 가방을 메고 나서는 아이의 작은 뒷모습을 볼 때면, 안쓰러움에 가슴이 저릿했다.


내 아이의 시간을 더 이상 길 위에 버리게 하고 싶지 않았다. 제대로 된 교육 인프라와 도서관이 있는 환경을 선물해주고 싶다는, 엄마로서의 가장 간절한 목표가 담긴 이사를 감행했다. 방학 중에 옮겨야 아이가 새 동네에 적응하기 수월하리라는 완벽한 계산기까지 두드린 결과였다.


하지만 세상은 내 정교한 계획을 비웃기라도 하듯

거대한 변수를 던졌다.


이사한 지 단 두 달 만에, 개학과 동시에 터진 코로나19 팬데믹. 최고의 교육 환경을 찾아온 이곳에서, 아이가 마주한 것은 교육이 아닌 완전히 멈춰버린 도시의 적막이었다.


낯선 동네, 낯선 집. 아이는 친구 한 명 사귀지 못한 채 모니터 속에 갇혀 온라인 수업을 들어야 했다. 할머니의 따뜻한 보살핌도 아이의 텅 빈 마음까지 채우기엔 역부족이었다. 어느 날, 베란다에 멍하니 앉아 텅 빈 놀이터를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는 아이의 뒷모습을 본 순간, 머릿속에서 경고음이 울렸다.


‘이건 아니야.’


그 길로 사표를 던졌다.

나는 다시 한번 계획에서 이탈하기로 했다.


퇴사 후 아이와 함께 겨우 문을 연 도서관을 찾아다니고, 뒷산을 오르며 아이의 메마른 정서에 온기를 채워 넣었다. 적극적으로 놀이터를 공략해 친구를 만들어주는 '놀이터 외교'도 마다하지 않았다.


아이의 얼굴엔 화색이 돌았지만, 정작 내 마음 한구석엔 서늘한 조급함이 밀려왔다. 마흔이 넘은 나이에 대책 없는 퇴사라니. 이제 난 뭘 해야 하지?


그때 나를 버티게 한 건 모성이라는 책임감이었다.

내가 잠시 멈춰 서야 한다면, 차라리 내 온 힘을 다해 아이를 앞으로 나아가도록 밀어주자는 마음. 아이가 발을 딛고 선 지면이 흔들린다면, 기꺼이 내 몸을 낮춰 아이가 딛고 일어설 단단한 디딤돌이 되어주겠다는 결심이었다.


그래서 ‘멈춰버린 학교와 학원 대신, 내가 직접 아이의 환경이 되어주자’는 생각으로 공부를 시작했다. 아이가 온라인 수업을 들을 때, 나도 그 옆에서 나란히 노트북을 켜고 수험생이 되었다.


학습 코칭, 독서 지도, 아동 심리까지, 아이에게 필요하다 싶은 강의는 일단 모두 신청했다. 특히 이전 동네에서 그토록 갈구했던 '독서'의 깊이를 더해주고 싶어 시작한 과정이 나를 다시 뜨겁게 만들었다. 아이를 앞으로 밀어주기 위해 시작한 공부였지만, 책장을 넘길수록 깨달았다. 아이를 밀어주던 내 손바닥 끝에 전해진 건 아이의 성장이기 이전에, 나라는 존재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생동감이라는 것을.


오랜만에 팽팽한 긴장감 속에서 시험을 치르고 마침내 자격증을 손에 쥐었을 때, 단순한 성취감을 넘어선 해방감이 찾아왔다.


'내 아이만이라도 잘 가르쳐보자' 했던 소박한 마음은 어느새 더 많은 아이와 소통하고 싶다는 직업적 열망으로 몸집을 불렸다. 한 번 불이 댕겨지니 멈추지 않는 나의 추진력은 나 자신조차 당황하게 만들었다. 어영부영 생각만 하다가는 흐지부지될 것 같아, 마음이 식기 전 세무서로 달려가 개인사업자 등록을 해버렸다.


그렇게 아이의 3학년 시작과 함께,

나는 '독서논술 선생님'이라는 새로운 명함을 얻었다.

내 아이를 잘 가르치겠다는 일념으로 시작한

‘계획 밖의 방황'이, 나에게 전혀 예상치 못한

새로운 직업을 선물해 준 것이다.


이제 나는 안다.

40대의 삶은 내 의지만으로 채워지는 일정표가 아니라는 것을. 때로는 타인의 필요에 의해 내 궤도가 수정되고, 예상치 못한 재난에 공들여 쌓은 탑이 무너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 무너진 틈 사이에도 새로운 길이 있다는 것 또한 알게 되었다. 아이를 위해 멈춰 섰던 그 자리는 내 삶의 새로운 출발선이었다.


오히려 그 어긋난 길목에서

나는 이전보다 훨씬 단단하고 선명한 나를 만났다.


계획대로 살지 않아도 정말 괜찮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