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벼운 마음으로 공부방을 시작했다.
거창한 교육 사업가로서의 포부나 대단한 부를 축적하겠다는 욕심은 없었다. 그저 내가 가진 읽고 쓰는 재능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면 좋겠다는 소박한 출발이었다.
그러나 ‘가벼움’과 ‘준비 없음’은 전혀 다른 문제였다. 마음은 편했지만, 준비 과정에서는 결코 소홀할 수 없었다. 먼저 아들과 남편을 불러 모아놓고 모의 수업을 진행했다.
"엄마, 그 부분은 설명이 너무 길어."
"이 질문은 좀 어려운데?"
냉정한 피드백이 화살처럼 날아왔다.
그때마다 나는 노트와 강의안을 수정하고, 다시 시뮬레이션을 반복했다. 한 장 한 장 손으로 꾹꾹 눌러 쓴 강의 노트를 여러 번 복습하며, 수업이 시작될 때까지 빈틈이 없도록 마음을 다잡았다.
자료 준비도 만만치 않았다.
학부모 상담용 자료를 만들고, 수업에서 활용할 교재와 참고 자료를 정리했다. 내가 준비한 내용이 실제로 아이들에게 얼마나 효과적으로 전달될지 늘 걱정되었다. 그러나 완벽하게 준비하고자 하는 마음은, 동시에 나를 안정시키는 힘이 되었다. 수업 자료 하나하나에 내 정성과 경험을 담고, 아이들과 함께할 시간을 상상하며 마음을 설렘으로 채워갔다.
문제는 홍보였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막했다. 네이버 플레이스에 위치를 등록하고, 정성껏 꾸민 인스타그램과 블로그에 글을 올렸다. 아파트 엘리베이터 옆 게시판에도 전단지를 붙였다. 하지만 나조차 바쁜 걸음에 스치듯 지나치는 저 종이 한 장을 누가 유심히 봐줄까 싶어 기대감은 사실상 '제로'에 가까웠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얼마 지나지 않아 전화 문의가 오기 시작했다. 첫 상담 약속을 잡고, 떨리는 마음에 난생처음 청심환까지 먹어보았다. 15년 차 디자이너로 대기업 대회의실에서 경쟁 PT를 할 때도 이렇게 떨지 않았는데, 새로운 도전 앞에서 느끼는 떨림은 전혀 달랐다. 설렘인지 긴장인지 모를 감정으로 상담을 마치고, 첫 학생이 등록되었을 때 내 마음은 기쁨이라기보다 얼떨떨함으로 가득했다.
첫 수업 날, 귀여운 초등학교 1학년 꼬마 친구들을 맞이했다. 나는 수업 시작 전, 책과 활동지를 다시 점검하고, 칠판 글씨를 연습하며 마음을 다잡았다. 작은 의자에 앉은 아이들을 바라보며, ‘내가 과연 잘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지만, 곧 아이들의 호기심 어린 눈빛이 나를 안심시켰다. 수업이 시작되자 아이들은 예상보다 훨씬 적극적이었고, 나도 덩달아 즐거워졌다. 질문에 눈을 반짝이며 대답하고,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은 준비한 모든 시간을 보상해주는 순간이었다.
그날의 기억이 선명한 이유는, 그 아이들이 이후 내 마지막 수업까지 함께해주었기 때문이다. 나에게 잊지 못할 보람을 선물해준 고마운 친구들이다.
대부분 아이들은 학교가 끝나면 바로 공부방으로 왔다. 한창 성장기인 아이들에게서는 늘 허기가 느껴졌다. 나도 아이를 키우는 엄마이기에 그 마음을 잘 안다. 처음에는 내 아이를 위해 비축해둔 간식을 조금씩 나누어주었지만, 곧 아이들을 위한 간식을 따로 준비하기 시작했다. 과자, 초콜릿, 젤리 등 작은 것들이었지만, 아이들이 즐겁게 먹으면서 글쓰기나 독서 활동에 집중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특히 글쓰기 시간, 아이들의 재잘거림을 멈추게 하는 막대 사탕이 최고였다. 조용히 하자는 말 한마디 없이도 아이들은 사탕을 오물거리며 말없이 글을 써 내려갔다. 아이들에게 글쓰기가 고된 숙제가 아닌, 기분 좋은 달콤함으로 기억되기를 바라는 나의 작은 욕심이기도 했다.
거창한 사업을 꿈꾼 것은 아니었다. 수업은 하루 한 번, 많아봐야 두 번이었다. 내 첫 번째 목표는 내 아이를 잘 키우는 것이었기에, 수업 시간은 철저히 아들의 학원 스케줄에 맞췄다. 아들이 영어 학원과 도장에 가 있는 그 틈새 시간이 나의 업무 시간이었다. 게다가 아들과 충분한 시간을 보내기 위해 금요일 수업은 피했다. 일주일에 고작 너댓 번의 수업, 당연히 큰 돈이 될 리 없었다.
하지만 애초에 목표가 돈벌이가 아니었기에 상관없었다. 아이들과 함께 책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은 나에게 큰 즐거움이었고, 그렇게 독서 수업은 나의 소중한 취미가 되어주었다.
동네 어디서든 나를 발견한 아이들이
“선생님~!” 하며 달려와 안길 때,
비 오는 날, 엄마를 기다리는 아이와 손을 잡고
화단의 달팽이를 구경할 때,
다른 학원에서 창문 밖으로 손을 흔들며
“선생님, 이따 만나요~” 하는 아이들의 목소리에
걸음을 멈출 때,
스승의 날, 삐뚤빼뚤한 글씨로
'선생님이 너무 좋아요'라고 적은 편지를 받을 때,
초등학생이던 까불이가 어느새 중학생이 되어
듬직한 악수를 나누며 교실을 떠날 때,
셀 수 없이 많은 순간들을 아이들이 보람으로 채워주었다. 가벼운 마음으로 손에 쥔 명함이, 내 인생에서 가장 따뜻하고 소중한 이름이 되어 있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내가 할 수 있다는 것, 꽤 잘할 수 있다는 것을 스스로 확인하게 해준 시간이었다.
준비와 고민, 긴장과 설렘 속에서 나는 성장했고,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 속에서
나의 존재 가치와 행복을 발견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