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치민 현지의 삶에 스며드는 출발점

by 몽쉐르


현지의 삶에 스며드는 출발점

관광객의 소음이 소거된, 현지인들의 삶이 오롯이 보존된 골목에 숙소를 잡았다. 대문을 열어둔 채 TV를 시청하는 거실, 문 앞에 나와 앉아 저녁 공기를 쐬며 휴식을 취하는 이들, 그리고 소박한 저녁거리를 파는 노점까지. 골목은 베트남의 민낯을 그대로 투영하고 있어 정겨움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우리가 머물 곳은 베트남 특유의 건축 양식인 ‘튜브 하우스(Tube House)’ 형태의 5층 건물이었다. 좁고 높게 솟은 그 이국적인 외관이 자못 흥미로웠다. 처음 접하는 대문의 도어락 비밀번호가 익숙지 않아 잠시 길 위에서 씨름해야 했지만, 어렵사리 들어선 내부는 밖에서의 고생을 보상해 주기에 충분했다. 정갈하게 꾸며진 공간과 은은한 조명, 방마다 걸린 그림들은 차가운 숙소가 아닌 누군가의 정성 어린 ‘집’에 초대받은 듯한 온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다만, 수직으로 가파르게 이어진 계단은 예상치 못한 복병이었다. 짐을 옮기고 에어컨을 켜기 위해 두어 번 위아래를 오르내렸을 뿐인데, 이마엔 어느새 여정의 고단함을 증명하듯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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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산책과 저녁 식사

짐을 풀고 나니 기내식으로 달래지 못한 허기가 강하게 밀려왔다. 호스트가 추천한 맛집 중 마트와 인접한 ‘남방 쌀국수(Nam vang rice noodle)’ 분야에서 한 집을 목적지로 정했다. 숙소에서 약 1.8km 떨어진 거리였으나, 우리는 서두르지 않고 이 도시의 결을 느끼며 천천히 걷기로 했다.

길을 걷는 동안 내 마음속엔 맛의 지도가 그려졌다. 교복 입은 학생들이 줄지어 선 길거리 반미(Banh Mi) 집, 고소한 향을 풍기며 사람들의 발길을 붙잡는 바나나 튀김. 이곳에 머무는 4일 동안 반드시 정복해야 할 리스트들이 하나둘 늘어갔다.

드디어 도착한 쌀국수 집은 오직 현지인들로만 가득 차 활기가 넘쳤다. 번듯한 메뉴판 하나 없었지만, 옆 테이블에서 시킨 음식을 가리키며 어떤 걸 줄까? 묻는 듯했다. 음식을 가리키며 주문을 마쳤다. 이곳의 메뉴는 흡사 우리나라의 물냉면과 비빔냉면처럼 국물형과 비빔형 두 가지로 나뉘어 있었다. 쌀국수 면 위로 고기, 새우, 메추리알, 채소, 그리고 심장 부위의 내장이 정갈하게 올라간 요리였다. 우리는 고민 없이 각각 세 그릇씩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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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고 진한 국물 맛은 일품이었으나, 특유의 향이 밴 고기는 나의 입맛에 조금 생소했다.

나는 비빔면에 양상추를 곁들여 먹는 현지 방식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면과 고기를 채소에 싸서 쌈처럼 크게 한입 베어 물었다. 그 광경이 생소했는지 주변의 현지인들이 나를 보며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비록 언어는 통하지 않았지만, 소박하고 따뜻한 교감의 순간이었다.

음식의 간이 다소 강했던 탓일까, 식사를 마칠 때쯤엔 갈증이 밀려왔다. 탄산음료를 벌컥벌컥 들이켜고 싶다는 욕구가 간절해졌다. 왜 이곳 사람들이 식사 때마다 탄산음료를 많이 마시는지 비로소 온몸으로 이해하게 된 베트남에서의 첫 만찬이었다.


베트남 저녁의 거리

내일 아침 식탁을 채울 식재료를 마련하기 위해 인근의 중규모 마트로 향했다. 엄마는 작년 베트남 여행에서 맛보았던 돼지고기의 잡내 없는 고소한 풍미를 잊지 못하신 듯, 가장 먼저 육류 코너를 찾으셨다. 선홍빛의 신선한 고기를 마주하는 순간, 나 역시 과거의 미각이 살아나며 마치 ‘파블로프의 개’처럼 입안에 군침이 고였다. 미리 준비해 온 트렁크 가득 든든한 식재료를 채워 넣고 다시 숙소로 발걸음을 옮겼다.

돌아오는 길, 아까 보아두었던 반미 노점에 멈춰 섰다. 학생들이 길게 줄을 서 있던 그곳에서 반미 하나를 포장했다. 바삭한 바게트 속에 숯불 향을 가득 머금은 떡갈비 두 점과 신선한 채소, 비법 소스가 어우러진 반미였다. 고기 표면에 흐르는 윤기와 은은한 불향은 보는 것만으로도 식욕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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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우연히 눈길을 사로잡은 곳은 다름 아닌 ‘바게트 공장’이었다. 내 키를 훌쩍 넘는 거대한 오븐에서 김이 모락모락 나는 바게트가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한 번에 200개가 넘는 빵이 구워져 나오는 장관과 코끝을 찌르는 갓 구운 빵의 구수한 향기. 그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홀린 듯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처음에는 맛만 볼 요량으로 세 개만 구매했다. 하지만 빵을 건네받자마자 엄마와 아이들은 “앗, 뜨거!”라고 외치면서도 손에서 빵을 놓지 못했다. 호호 불어가며 입안 가득 빵을 베어 문 엄마께서 다급하게 말씀하셨다. “야야, 이거 정말 맛있다! 더 사라잉~” “내일 또 사요!” 말했지만 엄마의 다급함에 “아니여, 이거 오늘 다 먹어버릴 것 같응께 얼른 더 사자잉!” 엄마의 성화에 못 이겨 두 개를 추가로 더 구매했다. 갓 구운 뜨거운 빵을 종이에 대충 감싸 비닐봉지에 담아주는 모습에 잠시 ‘환경호르몬’에 대한 걱정이 머릿속을 스쳤지만, 그 찰나의 고민은 따끈하고 폭신한 빵의 압도적인 풍미 앞에 눈 녹듯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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