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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쉐르 Dec 04. 2024

겨울밤 곰같은 선배의 따뜻함

덩치가 크고 목소리도 우렁찬, 마치 곰처럼 푸근해 보이지만 어디서도 쉽게 다가가기 어려운 1년 선배가 있었다. 그는 늘 여자친구와 함께 다녔고, 학교에서 2년을 같이 보냈지만, 나와는 특별한 교류가 없었다. 가끔 마주칠 때면 인사를 나누고 안부를 묻는 정도였을 뿐, 그 이상의 대화는 없었다. 그래서 그는 나에게 신비롭고 조금은 어려운 존재로 느껴졌다.     

4학년 2학기 1월, 학교는 방학에 들어갔고, 나는 이달 말에 있을 국가고시 준비를 위해 자취방에 홀로 있었다. 그날 오전부터 몸이 으슬으슬 춥더니 열이 점점 오르기 시작했다. 아플 때 혼자 있으면 몸의 고통은 물론이고, 마음속 외로움이 두 배가 된다. 세상에 나 혼자만 남겨진 것 같은 느낌, 그때의 쓸쓸함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깊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단순한 감기가 아니라 독감이었던 것 같다.     

약도 없고, 병원도 문을 닫은 늦은 저녁, 나는 혼자서 끙끙 앓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초인종이 울렸다. 문을 열자 검은 롱패딩을 입은 그 어렵던 선배가 서 있었다.     

"괜찮냐? 어서 누워 있어." 그게 선배가 한 전부였다. 그의 갑작스러운 방문에 당황스러웠지만, 몸이 너무 아파서 손님을 맞이할 힘조차 없었다. 나는 그저 누워 있을 수밖에 없었다. 선배는 묵묵히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내더니 체온계를 꺼내 내 열을 재고, 맥박을 확인하며 차분하게 종이에 기록했다. 이어서 내게 먹일 죽을 끓여주었다.     

시간이 흘러 저녁 8시가 넘었지만, 선배는 떠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왜 안 가지?’ 나는 얼핏 그렇게 생각했지만, 내내 지속되는 열에 마음속 불편함이 사라지며 점차 그의 존재가 고마워지기 시작했다. 선배는 화장실에서 물수건을 만들어 내 이마에 올려주었다. 그때마다 그의 손길에서 느껴지는 배려와 섬세함이, 차가운 겨울밤의 어둠을 따뜻하게 밝혀주는 것 같았다. 30분마다 열을 체크하고 물수건을 갈아주며 그는 밤새 나를 간호했다.     

한겨울의 추위 속에서도, 나를 위해 보일러도 끄고 자신은 검은 롱패딩을 입고 있던 선배. "형, 추운데 보일러 틀고 계세요." 내가 걱정스레 말했지만, 그는 "너 열나니까 걱정 말고 그냥 자."라며 짧게 대답했다. 그의 말투는 여전히 투박했지만, 그 안에 담긴 따뜻함이 가슴 깊이 전해졌다. 선배는 밤새 컴퓨터를 하며 내 곁을 묵묵히 지켰다.     

아침이 되자 열이 내렸고, 내 상태를 기록한 A4 용지가 책상위에 놓여있었다. 차갑고 무뚝뚝해 보였던 그 선배의 마음이 이 기록 하나하나에 담겨 있었다. 나를 향한 그 따뜻한 마음은 분명 차가운 겨울바람 속에서도 느껴질 정도였다.     

그날 이후로도 선배에게 살갑게 다가가지는 못했지만, 그날 밤 그의 마음은 내 평생 동안 잊을 수 없는 고마운 기억으로 남아 있다. 지금까지도 그 순간의 따뜻함은 내 안에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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