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과 떠난 느린 시간들(19화)
베트남 밤 숙소의 조명
저녁이 되어 숙소의 조명들을 하나둘 켜니, 낮과는 또 다른 아름다움이 피어났다. 어둠 속에서 집은 더욱 따뜻하고 아늑하게 보였다. 카메라를 들고 사진을 찍어보니, 건물은 선명하게 담겼지만 사람들은 조금만 움직여도 흐릿하게 나왔다. 멋진 순간을 사진으로 남기고 싶었지만, 야간 촬영은 쉽지 않았다.
저녁 식사를 준비했다. 숙소에는 바비큐를 할 수 있는 그릴이 있었기에, 미리 숯을 준비해 왔다. 그러나 토치 없이 불을 붙이는 일은 생각보다 어려웠다. 종이를 찢어 불을 붙이고 그 위에 숯을 올려보았지만, 숯은 좀처럼 불이 붙지 않았다. 주변에서 마른 대나무와 코코넛 나뭇가지를 가져와 시도해봤지만, 바람이 강해 종이만 타버릴 뿐이었다.
혹시 오늘 고기를 못 구워 먹는 건 아닐까? 결국 후라이팬을 꺼내야 하는 건 아닐까? 걱정이 밀려왔다. 바비큐의 참맛은 숯불에 구워야만 느낄 수 있는 법인데, 이대로 포기할 수 없었다.
마침 그때, 아빠가 오셨다. 아빠는 비닐봉투 두 개를 꺼내 불 속에 던졌다. 순간적으로 타오르는 불길이 나무에 옮겨 붙었다. 비닐의 끈적임 덕분에 불이 오래 지속되었고, 결국 불씨가 장작으로 옮겨 붙으며 서서히 불길이 살아났다. 어릴 적 불을 자주 붙여보셨던 아빠의 경험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아빠는 베트남 전통의상인 아오자이를 입고 능숙하게 불을 조절하셨다. 그 모습이 마치 현지인처럼 자연스러웠다. 그렇게 만들어진 숯은 우리가 마트에서 산 압축 숯보다 훨씬 강한 화력을 뿜어냈다. 괜히 2kg이나 되는 비싼 숯을 샀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미 지난 일이었다. 후회가 가족들에게 전해질까 봐 얼른 마음을 정리했다.
숯불이 완벽하게 달아오르자 본격적으로 고기를 굽기 시작했다. 삼겹살과 등갈비를 올리니, 고소한 냄새가 연기와 함께 퍼졌다. 삼겹살은 기름기가 적어 담백했고, 잡내도 없었다. 엄마는 "작은 돼지를 잡았기 때문에 맛있다"고 하셨다. 한국에서는 돼지를 크게 키우기 때문에 맛이 덜하다는 설명도 덧붙이셨다.
옛말에 "60kg 정도 되는 돼지고기가 가장 맛있다"는 말이 있다던데, 정말 그런 걸까?
그 옆에서 엄마가 준비한 김치찌개가 보글보글 끓고 있었다. 베트남에서 김치찌개를 끓여 먹을 줄은 몰랐다. 그러나 한입 떠먹어 보니, 익숙한 한국의 맛이 그대로 느껴졌다. 외국에서 바비큐를 해 먹는다는 게 신기하면서도 새로운 경험이었다. 조용한 밤공기 속에서 아직 여행 일정이 많이 남아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한결 평온해졌다.
맥주를 한 모금 들이켜니 속까지 시원해지는 기분이었다. 맥주는 물처럼 술술 넘어갔다. 몸이 따뜻해지자, 바닷바람도 기분 좋게 느껴졌다. 이런 순간이 매일같이 이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잔불을 바라보다가 문득, 후식으로 고구마를 구워 먹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일 시장에 가서 고구마를 꼭 사 와야겠다.
저녁을 먹고 예온이와 함께 자전거를 타고 동네를 돌아보았다. 베트남 사람들은 바깥에 나와 저녁을 먹거나, TV에 노래방을 연결해 크게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옆집에 피해가 갈 것 같았지만, 아무렇지 않게 노래를 부르는 모습이 신기했다. 이웃들도 서로 이해하고 배려하며 살아가는 것 같았다.
대부분의 집에서는 가족들이 거실에서 TV를 보고 있었다. 문을 활짝 열어둔 채 쇼파나 탁자를 중심으로 모여 있는 모습이 익숙했다. 어떤 집은 TV 앞에 널따란 원목 의자가 있었고, 어떤 집은 바닥에 둘러앉아 있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미묘한 빈부격차가 느껴졌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이곳 사람들은 그런 차이를 크게 의식하지 않는 듯 보였다.
문득 한국에서의 내 모습을 떠올려 보았다. 한국에서는 주변 사람들과 끊임없이 비교하며 살아간다. 작은 것 하나하나, 옷 브랜드부터 외식하는 모습까지도 신경 쓰며 스스로를 힘들게 한다. 하지만 이곳 사람들은 그저 하루를 살아가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지내는 것처럼 보였다.
물론, 나 역시 착각하고 있을 수도 있다. 내가 이들보다 더 나은 환경에서 자랐기에, 그들의 작은 차이가 대수롭지 않게 느껴지는 것일지도 모른다. 실제로 여행자들이 많이 다니는 마켓과 거리에서는 상인들이 아침부터 늦은 저녁까지 장사를 한다. 하지만 로컬 시장에서는 점심이 지나면 가게 문을 닫는다.
또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차량과 기사를 렌트할 때 목적지에서 세 시간 정도 머물겠다고 하면, 기사들은 묵묵히 기다린다는 것이다. 한국 같았으면 그 시간 동안 다른 영업을 하려 했을 텐데, 이들은 그저 기다리는 것이 자연스러운 듯했다. 이런 모습을 보고 있자니, 베트남 사람들은 더 벌고자 하는 욕심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호치민 같은 대도시에서는 빈부격차가 심하고, SNS의 발달로 인해 나처럼 비교하며 힘들어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무엇이 문제일까? 문명이 발전하고 네트워크가 가까워질수록, 우리는 더 힘들어지는 걸까? 비교하지 않고 살아가는 것이 가능할까?
그 답을 찾지 못한 채 숙소로 돌아왔다. 머릿속이 복잡했지만, 파도 소리를 들으며 잠을 청했다. 여행이 끝나기 전에 이 질문의 답을 찾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