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과 떠난 느린 시간들(20화)
토요일 아침이 밝았다. 창문 사이로 들어오는 따스한 햇살이 집 안을 비췄다. “아빠, 우리 자전거 타러 나가자!” 예온이가 상기된 얼굴로 다가와 말했다. “좋아.” 나는 흔쾌히 대답했다. 예준이에게도 물었다. “예준아, 우리 자전거 타러 나가자.” 하지만 예준이는 고개를 저으며 단호하게 말했다. “난 집에 있을래.” 집에서 딱히 할 일이 있는 것도 아닌데, 밖으로 나가는 게 싫은 듯했다. “엄마도 같이 갈 거야. 예준이도 가면 우리 가족이 다 같이 자전거를 타고 바람도 쐬고 너무 좋을 것 같은데?” 설득 끝에 마침내 예준이도 따라나섰다. 나는 아이들이 시간이 지나 이 순간을 기억하지 못할지라도, 가족과 함께했던 따뜻한 감각만큼은 남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자전거를 타려고 하자 청소해주시는 분께서 바람이 빠진 것을 발견하고는 바람을 넣어주시겠다고 했다. 베트남에서는 오토바이가 주된 이동수단이라 그런지, 휴대용 바람 충전기를 들고 다니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내가 보기엔 오토바이 용이라 자전거에는 맞지 않을 것 같았다.
“괜찮아요.” 웃으며 사양했다. 옆에 서서서 그저 멋쩍은 웃음만 짓고 있었다. 그분은 포기하지 않고 몇 번이나 시도했다. 몇 차례 실패 끝에 결국 바람을 넣는 데 성공했다.
자전거를 끌고 대문을 나섰다. 나는 예준이를, 아내는 예온이를 태웠다. 자전거를 타고 동네를 한 바퀴 도는 동안 아이들은 신이 났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아내의 자전거 바퀴에서 공기가 빠지기 시작했다. 바람이 다 빠진 채로는 핸들 조작도 힘들어 제대로 탈 수 없었다.
“내가 아이들 둘 다 태울게.” 나는 예온이를 자전거 앞쪽에, 예준이를 뒤쪽에 태웠다. 조금 힘들었지만 두 아이를 태운다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았다.
“아빠랑 이렇게 타니까 좋지?” 아이들은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 “응! 좋아!” 마치 슈퍼맨 아빠가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내가 굳이 아이들의 반응을 확인하려고 했던 건, 이 순간을 함께하는 기쁨을 아이들도 느꼈는지 알고 싶어서였을 것이다.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다 익숙한 노래가 들려왔다. ‘로제의 아파트’. 학교도, 유치원도 아닌 것 같은 작은 공간에서 아이들이 음악에 맞춰 춤을 추고 있었다. 우리 가족은 춤 연습하는 곳 앞에서 그들의 모습을 구경했다. 신기하면서도 흐뭇했다.
집에 돌아와 잠시 쉬었다. 하지만 5분도 채 지나지 않아 예온이가 다시 다가왔다. “아빠, 자전거 타러 또 나가자! 이번엔 먼 곳으로 가자!” 나는 고민 끝에 호이안 구시가지 쪽으로 가보기로 했다. 다행히 대부분 평지라 이동하기에는 수월했다.
나가면서 문득 생각났다. ‘저녁에 고구마를 사와야지.’ 화로에 구워 먹으려면 호일도 필요했다. “우리 호일이 있는지 먼저 마트에 가서 확인해보자.” 예온이는 “아빠, 고구마를 먼저 사자!”라며 말을 했다. 나는 “왠지 고구마는 있을 것 같은데, 호일은 잘 없을 것 같아. 호일이 없으면 말짱 꽝 아니겠어?” 이야기를 듣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작은 마트에 들어가 보니 다행히 호일이 있었다. 한국만큼 다양한 종류는 아니었지만, 5미터와 10미터짜리 두 가지가 있었다. 5미터만 사도 충분할 것 같았다. 가격은 한국보다 저렴하지 않았다.
호일이 있는 것만 확인하고 사지 않았다. “이제 고구마 파는 곳을 찾아보자.” 예온이와 다시 자전거를 타고 이동했다.
가던 길에 작은 로컬 시장을 발견했다. 관광객의 모습은 거의 보이지 않았고, 현지인들만 북적였다. 고기와 생선을 파는 곳을 지나니 한 할머니가 고구마를 팔고 계셨다. 밤고구마와 호박고구마가 섞여 있었다.
“이거 주세요.” 사려고 하자 할머니가 비닐봉지를 내밀었다. 알아서 담으라는 뜻이었다. 적당히 골라 봉지에 담아 무게를 재자 금액을 적어 주셨다.
고구마를 사고 돌아오는 길에 호일과 망고 1kg을 더 사서 집으로 돌아왔다. 두 시간 가까이 자전거를 탔더니 다리에 근육통이 왔다.
가족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쉬고 있었다. 엄마는 서늘한 날씨에도 수영을 하고 있었다. ‘날씨가 더 따뜻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예온이는 어제 마트에서 산 수박 반통을 혼자서 먹고 있었다.
점심을 먹고 난 후 고민했다. ‘낮에는 뭘 할까?’
“애들아, 우리 바닷가 가서 놀까?” “좋아~!” 아이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자전거에 아이들을 태우고 바닷가로 향했다. 바람이 세고, 파도도 높았다. 숙소 앞 비치보다 유명한 안방 비치로 가면 더 나을까 싶어 이동했지만, 별반 다르지 않았다. 결국 숙소 앞 비치에서 놀기로 했다.
아이들은 모래로 방파제를 쌓으며 신나했다. 파도가 덮칠 때마다 무너졌지만, 다시 쌓기를 반복했다. 나는 아이들과 함께 모래성을 쌓으며 놀았다. 아빠도 우리를 보며 흐뭇하게 미소 지었다.
처음에는 발목까지만 물에 담그던 아이들이 점점 깊이 들어갔다. 엉덩이까지 빠져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나는 아이들에게 말했다.
“파도가 빠질 때가 더 위험해. 모래와 함께 바닷속으로 강하게 빨려 들어갈 수 있어.” 하지만 아이들은 즐거운 나머지 내 말을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나는 점점 피곤해졌지만, 아이들은 끝없이 놀고 싶어 했다.
해가 기울 무렵, 아이들을 불러 집으로 돌아왔다. 아이들은 모래가 묻은 삽을 깨끗이 씻었다. 다시 자전거를 타고 숙소로 돌아왔다. 씻고 나서 침대에 누웠다. 잠이 들지는 않았지만, 온몸이 나른해졌다.
아침부터 자전거를 타고, 바닷가에서 놀고, 하루 종일 아이들과 함께한 날. 몸은 피곤했지만, 마음은 꽉 찬 기분이었다.
조금 쉬었다 저녁 준비를 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