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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토바이를 타고 호이안 마실

가족과 떠난 느린 시간들(22화)

by 몽쉐르 Mar 14.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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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식탁 위의 낯선 카레

브런치 글 이미지 1

아침엔 노란빛 카레가 따뜻하게 준비되어 있었다. 오뚜기 카레였지만, 익숙한 맛이 아니었다. 코코넛 풍미의 이국적인 맛. '코코넛 카레' 한국 회사제품이였지만 한국에서는 팔지 않는 제품이라 궁금해서 한 봉지 사보았던 것인데, 맛있다면 선물용으로 몇 개 더 사갈 생각이었다.

엄마는 당근과 호박을 작게 썰어 넣었고, 평소보다 물을 조금 넉넉히 잡아 부드럽게 끓이셨다. 평소 아침엔 과일과 요거트로 가볍게 식사하던 터라, 따끈한 밥이 조금 부담스러웠다. 싱거워 보이는 카레가 마음을 끌지 않았던 건, 아마도 속이 무거웠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막상 한 숟갈 떠보니 예상보다 훨씬 부드럽고 고소했다. 코코넛보다는 마치 우유를 넣은 듯한 은은한 풍미가 느껴졌다.

쌀도 한국산 쌀을 구입해서 밥맛도 익숙했다. 마트에는 한국산 김치도 종류별로 가득해, 쌀, 카레, 김치 — 모두가 한국의 맛이었다. 이곳이 베트남인지, 한국인지 헷갈릴 정도였다. 물론 우리나라 새 쌀처럼 찰기가 있는 밥은 아니었지만, 질감 없는 베트남 쌀보다는 훨씬 입에 착 감겼다.


예온이와 자전거 마실

브런치 글 이미지 2

아침을 먹고 나자마자 예온이가 말했다.
 “아빠, 자전거 타러 나가요!”

그 말에 나도 웃으며 대답했다.
 “좋아~ 가자!”

자전거를 타고 어디로 갈까 고민하며 말했지만, 사실 예온이의 대답을 듣기도 전에 나는 이미 마을 쪽으로 핸들을 꺾고 있었다. 일요일이라 그런지 마을은 고요했다. 여러 번 왔던 길이라 그런지 길이 짧게 느껴졌다. 예온이도 같은 생각이었는지, “아빠, 너무 금방 온 것 같아. 또 나가자!” 하며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자전거는 이제 그만 오토바이를 타고 싶다

더 멀리 가자는 아이의 말에 나도 동의했다. 하지만 자전거로 먼 곳을 다니기엔 다리가 너무 아팠다. 그래서 마음을 바꿔 오토바이를 빌리기로 했다.

문제는 언어도 문화도 다른 나라에서 오토바이를 빌리는 일이 그리 간단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여권을 맡기기도 해야 하고, 시세도 모르고, 반납할 때 문제가 생기면 어쩌나 걱정이 앞섰다.

그래도 시도해보기로 하고 자전거를 타고 여러 렌트샵을 찾아 다녔다. 하지만 렌탈샵마다 가격표는 없고 ‘렌트’라는 글자만 덩그러니 붙어 있었다. 오토바이 상태도 낡고 불안했다. 믿음이 가지 않았다.

그때, 문득 숙소 호스트가 생각났다. 가장 믿을 수 있는 사람. 메시지를 보내 물어보니, 125cc에 17만 동이라고 알려주었다. 망설임 없이 “좋아요!”라고 대답했다. “직접 가져다 주겠다”는 말에 마음이 한결 놓였다.

예온이에게 말했다.
 “아빠가 처음부터 호스트한테 물어봤으면 좋았을 텐데, 괜히 자전거만 탔네. 아쉽다, 그치?”
 예온이는 말없이 웃었지만, 그 웃음 속에 자전거 마실조차 즐거웠다는 마음이 느껴졌다.


기다림과 설렘 사이

오토바이를 기다리는 아이들오토바이를 기다리는 아이들

숙소로 돌아가는 길, 예온이는 들뜬 얼굴이었다. 작년에 오토바이를 탔던 기억이 남아 있었는지, 다시 타게 된다는 사실만으로도 흥분된 듯했다.

약속한 30분이 지나도록 오토바이는 오지 않았다. 집 앞에서 나와 예온이는 계속 기다렸다.
 “아빠, 도대체 언제 와?”
 예온이는 내 옆에서 왔다갔다 하며 초조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지나가는 오토바이를 볼 때마다 “저거 아닐까?” 물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나도 기대가 커졌다. 드디어 두 대의 오토바이가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왔다!” 싶었지만, 운전자는 인사만 하고 대문 쪽에 주차를 했다. ‘아… 렌트가 아니라 집 관리인이구나’라고 생각했지만, 그가 나를 부르는 순간 다시 마음이 설렜다.

간단한 조작 설명 후, 함께 온 오토바이를 타고 그는 돌아갔다. 이제 진짜 우리 오토바이였다.


아이스크림 탐험기

브런치 글 이미지 4

예준이는 예온이를 태우고 동네 한 바퀴를 돌았다. 자전거와는 비교할 수 없이 빠르게, 훨씬 넓은 곳을 다녀올 수 있었다.
 “우리 아이스크림 사러 갈까?” 예온이는 “좋아~!” 하고 외쳤다.

하지만 아이스크림 가게마다 가격은 상상 이상이었다. 대부분 수입품이었고, 한국보다 비쌌다. 아이스크림 하나 사는 게 이렇게 비쌀 줄이야!

좀 더 싼 곳을 찾아 몇 군데를 돌았지만, 결국엔 제일 비싼 곳에서 여섯 개를 샀다. 24만 동. 마음 한켠이 찌릿했다. ‘시간과 기름값만 낭비했네…’라는 생각이 스쳤지만, 뒷좌석에서 웃음꽃을 피우던 예온이를 보니 그 생각도 금세 잊혔다.

엄마는 아이스크림에 커피를 부어 아포가토로 만들어 드셨다. “달콤하고 너무 맛있다”며 웃으셨다. 모두가 맛있게 먹고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니, 비싼 가격도 그리 아깝지 않았다.


가족이 함께 오토바이 타고 시장으로

브런치 글 이미지 5

편리한 이동수단이 생기자 나도 더 자주 밖으로 나가고 싶어졌다.
 “우리 오토바이 타고 시장 갈까?”
 아내에게 말했다. 저녁엔 해산물과 고구마를 구워 먹자고 제안했다.

싱싱한 해산물을 잘 고를 자신이 없어서, 함께 가자고 했다. 우리는 네 가족이 한 오토바이에 올랐다. 작년에는 예준이가 앞에, 예온이가 가운데에 앉았었는데 이번엔 반대로 예온이가 앞에서 바람을 맞으며 타고 싶다고 했다.

가을이라지만 오토바이 바람은 꽤 차가웠다. 경량 패딩을 챙겨 입고, 아이들에게도 입혀주었다. 네 식구가 한 오토바이에 앉아 이동하는 모습은 현지인처럼 보였을 것이다. 외국인은 보통 이렇게 타지 않기 때문이다.

엄마의 배웅을 받으며 우리는 웃으며 출발했다.
 바람을 가르며 달리는 이 순간, 가족과 함께여서 더 행복한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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