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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골 Feb 13. 2024

스타트업 업계에서 대표 본인의 align의 중요성


 align을 논하기 전에 스타트업의 정의를 간단하게 정하지 않을 수 없다. 현 시점 스타트업의 대척점에 있는 창업 모델이 '언섹시 비즈니스'로, 1인 창업이나 소규모 팀을 꾸려서 회사규모를 키우지 않고 초기단계에 흑자를 내는 걸 목표로 하는 사업이다. 반면 스타트업은 남의 돈을 투자받아 대규모 적자를 감수하여 조 단위 이상의 기업가치에 잠재 경쟁사들보다 빠르게 도달하는 것이 목표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세상 만인에게 새로운 가치를 전파하는 것이 더 본질적인 목적이지만, 그걸 실현하려면 적자를 내고 점유율과 기업가치를 끌어올리는 게 필연에 가깝다.


1. 대표의 얼라인


 시리즈A 근처도 못가봐놓고 하는 건방진 말이긴 하지만, 22년 인플레 이후부터 시리즈A 시리즈B 투자단계에 있는 대표들 중에 진퇴양난의 심경인 분들이 많으실 거라 짐작한다.


 혹자가 말했다, 흥하지도 망하지도 않는 채 시간만 흘러가는 게 제일 리스키한 상태라고. 그런데 시리즈 초기 단계에서는 예전과 다르게 빅테크기업에 회사를 매각하는 사례가 씨가 말랐고, 유니콘 수준으로 스케일업을 한 후 상장을 하거나 흑자를 내는 난이도 또한 저금리 때보다 훨씬 어려워졌다. 요컨대 대표 입장에서 자신의 장기적 비전이나 현재 하는 일과 삶 자체에 긍지를 잃는 순간, 현금화도 못하는 그림의 떡을 눈앞에 놓고 기약 없이 고생하는 셈이다.


 구주를 매각하거나 런웨이가 다하기 전에 페업하는 방법도 있다. 그러나 전자는 그간 함께해온 팀원들을 배신하는 행위가 되기 십상이고, 후자는 투자자들에게 평판이 나빠질 개연성이 크다. 상도덕이 훼손되기 때문에 나중에 창업을 재도전하는 데 지장이 생긴다.


 21년도까지는 이런 부정적인 단면이 주목되지 않은 이유가, IT와 스타트업 씬에서 활약하는 사람은 그 자체로 사회를 선도한다는 명예를 한몸에 받았기 때문이다. 그 시대에는 지금 당장 눈에 띄는 진전이 안 보여도 괜찮았다, 왜냐하면 전례 없는 슈퍼사이클을 등에 업었으니 한 우물을 파면서 버티다 보면 내게도 어떤 형태로든 기회가 올 거라는 낭만과 희망이 넘쳤기 때문이다. 그 슈퍼사이클이 인플레와 금리인상이 오면서 꺾임에 따라, 앞서 말한 현실적인 수지타산 앞에 마음이 흔들리게 된다.

머스크

 일론 머스크 자서전에서 자기 첫번째 아내에게 이런 말을 하는 대목이 나온다. "나같은 사람은 세계 최고의 갑부가 되거나 알거지가 되거나 둘 중 하나다. 중간은 없다." 머스크는 그 말을 지키기라도 하듯, 자기가 가진 현금성 자산과 비교도 안될 정도로 거대한 기업을 운영하며 지금도 수십년 후를 내다보고 있다. 머스크가반쯤 사기꾼같은 기행도 많이 했지만 투자자 입장에서 대체불가능한 기업가인 이유가 단기적인 현금화에 연연하지 않고 자신의 비전을 진심으로 믿기 때문이다. 수십년 전부터 머스크는 스타트업 창업가에게 암묵적으로 요구되는 성정과 숙명을 잘 알고 있었다.


 반면에 2010년대 중후반 한국 창업가와 명문대생들은 어떤 계기로 스타트업을 염두에 두었을지를 살펴볼 가치가 있다. 미국 월스트리트나 실리콘밸리의 job과 비교하여 한국의 직장생활은 다소 routine하고 현재 다니는 회사에 종속되는 경향이 있다. 일로써 긍지를 얻고 싶은 사람들이 마음껏 활약하고 고부가가치를 창출하기 충분치 못한 무대이다.


 그러나 2016년 초 알파고가 등장했고 안철수가 국민의당 총선 유세에서 '피터 틸'을 언급했으며 세상은 실리콘밸리 주도로 이렇게 빠르게 바뀌는 소식이 전해지는데, 한국의 혁신가들은 단순히 온실에서 1인분을 하며 돈만 버는 걸로 만족하지 못하는 것이다.


 요컨대 그들은 개성 있는 일을 하거나 사회를 선도하는 주인공에 가까워지고 싶어서 창업을 했지만, 스타트업의 특성을 깊게 고민하고 머스크처럼 인생을 걸 담대한 각오를 하기엔 당시 경기가 지나치게 호황이었다.

 만약 언섹시 비즈니스가 그때부터 한국에 널리 알려졌어도, 창업가들이 개발자 뽑고 디자이너 뽑고 마케터 뽑아서 기업 규모를 팽창시킨 후에 유니콘과 패망 사이의 줄타기를 기꺼이 했을까?


2. VC는 빚을 지우지 않는다. 스타트업 대표의 카르마가 담보이기 때문이다.

 오르비 사장 이광복이 대충 이런 취지의 글을 쓴 적 있다. 사기를 쳐서 수십업을 해먹으면 수백억 부자로 도약하는 사다리가 막히고, 수천억을 해먹으면 그 위로 도약할 길이 막힌다고. 부자가 되려면 거래를 해야 하고 거래를 하려면 신용이 있어야 한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스타트업 대표가 구주를 매각하여 현금을 챙기거나 섣불리 폐업을 하면 업계에서 재도전을 하기 조금 어려워진다. 그래서 스타트업 대표들은 빚이 없어도 주어진 수단으로 최선을 다할 유인이 있다. 그리고 VC들은 그런 스타트업을 여러 곳 거느린 집단이다. 억 단위 돈을 투자함으로써 총명한 젊은이들의 삶을 빌려올 수 있다.


 자신이 담대한 꿈을 품고 있다면 VC의 투자를 받는 게 이토록 무게감 있는 일임을 곱씹을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20대 초반 학부생 창업의 장점이 이런 무게를 피해가면서도 창업 경험을 해볼 수 있다는 것이다. 소꿉놀이 할 나이에 소꿉놀이 해서 잘 안됐을지언정 재창업 시 다른 투자자가 문제 삼지는 않을테니까.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에서 퀴렐은 금과 영생만을 탐했기 때문에 소망의 거울에서 끝끝내 돌을 꺼내지 못한 반면 해리는 돌을 지키려는 순수한 열망만이 가득했기 때문에 꺼낼 수 있었다. 스타트업 대표직이야말로 해리포터의 정신이 가장 잔인할 정도로 요구되는 위치인 것 같다.


[본 글은 경험이 일천한 작성자가 자신의 상상과 추론에 기반하여 썼으며, 현실에 정합적이지 않는 면이 있을 수 있는 점 양해를 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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