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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골 Feb 28. 2024

만만한 리더상을 최고로 꼽은 학교 동기

루피와 검은수염이 담대할 수 있는 이유

 2017년 초에 투자로 돈을 쏠쏠하게 번 사람이 주변에 2명 있었다. 그중 1명은 학부 동기인데 16년 미국 대통령선거 당일 트럼프 당선을 예측하고 이유까지 읽어내기도 했다. 지금 생각하면 친분을 잘 쌓았어야 했는데 나는 도대체 학부 때 뭐했는가 모르겠다. 아무튼 그는 투자로 얻은 돈을 사업 도전에 재투자하면서 경험과 인사이트를 얻은 걸로 보였는데, 수 년 후 "만만한 리더가 되는 게 최상책이다"라는 요지의 글을 쓴 적이 있다.


 여기에 숨겨진 함의가, 팀원들에게 한껏 흐트러진 모습을 보임에도 존중을 잃지 않는 리더들은 대부분 대체불가능한 비범함을 가졌다는 사실이다. 일단 저 글을 쓴 동기 본인도 머리가 굉장히 좋고 그 식견을 말로 풀어내는 스킬도 뛰어났다. 그래서 소탈한 모습을 보여도 충분히 함께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계속 묶어둘 역량이 되어 보였다.

사황 루피

 반면에 많은 지도자들이 수평적 리더십을 실현하려고 하다가 마음 고생을 토로하는 걸 꽤 봤다. 모든 사람은 '주변인에게 먹히는*' 것을 본능적으로 두려워하며, 리더들 역시 호모 사피엔스 100명이서 움막 짓고 살던 시절 동료들 사이에서의 서열에 전전긍긍하던 본성을 이기는 게 어려운 일이다. 소규모 업체 대표들의 단골 소재가 직원들이 자기 지시사항을 제대로 따르지 않고 만만하게 여기며 한껏 해이해진 기강이다.


 그래서 이런 우려사항을 '소통을 덜함' '임원과 직원 간 정보 비대칭성을 교묘하게 이용'함으로써 미연에 방지하는 리더들을 겪어봤는데, 어쩌면 이것이 현실적으로 불가피한 타협책일지도 모른다. 조직을 번창시키면서 리더십도 서서히 성장하게 마련인데, 아직 인품이 궤도에 오르기 전에 지도자의 권력을 적당히 유지해야 조직을 이어나갈 수 있다. 이데아가 어디에 있는지를 인지하되 자기가 처한 현실과 이데아 사이에서 적당히 타협해야 하는 순간도 존재하는 것 같다. 물론 동료에게 일부러 거리를 두고 위계를 유지하는 저 상태를 계속 유지한다면 과연 좋은 미래가 있을지는 별개의 일이다.


 사업체를 M&A해본 경험자에게 이 얘기를 하면서 <원피스>에서 동료들과 진정으로 격의 없이 지내는 해적선장은 루피와 루피의 아치 에너미밖에 없었다고 유비를 하니까, 이분도 격하게 공감하길래 뜻밖이었다. 아마 지도자 역할을 하면서 받은 여러 스트레스와 생각 때문에 공감하셨던 것 같다. 루피와 검은수염은 해적왕이라는 명확한 비전을 스스로 한 치의 의심 없이 믿고 있으며 동료들에게 비전을 제시하여 이끌어나가고, 애초에 동료를 뽑을 때에도 컬쳐 핏을 중시했기 때문에 평소에 소탈하게 지내더라도 지도자 자리를 누군가가 대체할 수가 없다.


 만만해질 자격요건은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지만 대표적으로 '남보다 깊은 탁견, 즉 제너럴한 역량' 및 '동료들의 심리와 관계 양상과 유인구조를 간파하는 능력' '사람들의 정신적 지주가 되는 능력' 등이 있지 않을까 싶다.


* 서열정리 당한다는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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