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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창업가

만만한 리더상을 최고로 꼽은 학교 동기

루피와 검은수염이 담대할 수 있는 이유

by 반골

2017년 초에 투자로 돈을 쏠쏠하게 번 사람이 주변에 2명 있었다. 그중 1명은 학부 동기인데 16년 미국 대통령선거 당일 트럼프 당선을 예측하고 이유까지 읽어내기도 했다. 지금 생각하면 친분을 잘 쌓았어야 했는데 나는 도대체 학부 때 뭐했는가 모르겠다. 아무튼 그는 투자로 얻은 돈을 사업 도전에 재투자하면서 경험과 인사이트를 얻은 걸로 보였는데, 수 년 후 "만만한 리더가 되는 게 최상책이다"라는 요지의 글을 쓴 적이 있다.


여기에 숨겨진 함의가, 팀원들에게 한껏 흐트러진 모습을 보임에도 존중을 잃지 않는 리더들은 대부분 대체불가능한 비범함을 가졌다는 사실이다. 일단 저 글을 쓴 동기 본인도 머리가 굉장히 좋고 그 식견을 말로 풀어내는 스킬도 뛰어났다. 그래서 소탈한 모습을 보여도 충분히 함께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계속 묶어둘 역량이 되어 보였다.

루피 기어5.jpeg 사황 루피

반면에 많은 지도자들이 수평적 리더십을 실현하려고 하다가 마음 고생을 토로하는 걸 꽤 봤다. 모든 사람은 '주변인에게 먹히는*' 것을 본능적으로 두려워하며, 리더들 역시 호모 사피엔스 100명이서 움막 짓고 살던 시절 동료들 사이에서의 서열에 전전긍긍하던 본성을 이기는 게 어려운 일이다. 소규모 업체 대표들의 단골 소재가 직원들이 자기 지시사항을 제대로 따르지 않고 만만하게 여기며 한껏 해이해진 기강이다.


그래서 이런 우려사항을 '소통을 덜함' '임원과 직원 간 정보 비대칭성을 교묘하게 이용'함으로써 미연에 방지하는 리더들을 겪어봤는데, 어쩌면 이것이 현실적으로 불가피한 타협책일지도 모른다. 조직을 번창시키면서 리더십도 서서히 성장하게 마련인데, 아직 인품이 궤도에 오르기 전에 지도자의 권력을 적당히 유지해야 조직을 이어나갈 수 있다. 이데아가 어디에 있는지를 인지하되 자기가 처한 현실과 이데아 사이에서 적당히 타협해야 하는 순간도 존재하는 것 같다. 물론 동료에게 일부러 거리를 두고 위계를 유지하는 저 상태를 계속 유지한다면 과연 좋은 미래가 있을지는 별개의 일이다.


사업체를 M&A해본 경험자에게 이 얘기를 하면서 <원피스>에서 동료들과 진정으로 격의 없이 지내는 해적선장은 루피와 루피의 아치 에너미밖에 없었다고 유비를 하니까, 이분도 격하게 공감하길래 뜻밖이었다. 아마 지도자 역할을 하면서 받은 여러 스트레스와 생각 때문에 공감하셨던 것 같다. 루피와 검은수염은 해적왕이라는 명확한 비전을 스스로 한 치의 의심 없이 믿고 있으며 동료들에게 비전을 제시하여 이끌어나가고, 애초에 동료를 뽑을 때에도 컬쳐 핏을 중시했기 때문에 평소에 소탈하게 지내더라도 지도자 자리를 누군가가 대체할 수가 없다.


만만해질 자격요건은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지만 대표적으로 '남보다 깊은 탁견, 즉 제너럴한 역량' 및 '동료들의 심리와 관계 양상과 유인구조를 간파하는 능력' '사람들의 정신적 지주가 되는 능력' 등이 있지 않을까 싶다.


* 서열정리 당한다는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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