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창업가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반골 Feb 27. 2024

스프링캠프 VC 면담에서 느낀 교훈

'운'에 맡기는 영역을 줄여야겠다고 통감한다

 지금까지 쓴 18개의 글과 처음으로 동떨어진 성격의 글을 쓴다. 여태까지는 내 독창적인 경험과 사고를 통해 어디 가서 접하기 어려울 견해를 도출하는 데 집중했던 반면, 이번에는 최근에 느낀 교훈을 내 스스로가 잊지 않기 위해 눈에 띄는 곳에 써놓는 것이 주요 취지이다. 스프링캠프 VC에게 긍정적인 화답을 얻어낸 반면 SNUSV 면접에선 왜 45분 간 횡설수설 하다 나왔는가를 돌이켜본다.


 별 대단한 에피소드는 아니고, 일단 스프링캠프의 퍼널(funnel)* 중 하나가 허가된 사람들에게 라운지 입장권을 제공해주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전도유망한 인재들을 투자 얘기를 꺼내기 전부터 미리 점지하여 좋은 관계를 이어나가다가 추후에 투자할 가치가 있는 기업을 키울 수 있다. VC는 투자기업 100개 중 1개가 대성공하면 이윤을 얻을 수 있는 극단적인 업사이드** 전략을 고수하는데, 이 퍼널을 통해 역세권 공간에 초대하는 시점부터 관계를 시작할 수 있는 것이다.


 아무튼 그 소식을 건너건너 전해듣고 무작정 찾아가서 눈에 보이는 아무 직원에게 나도 신청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나 직원이 약간 애매하게 반응하며 담당자가 부재하여 연락처를 남겨달라고 요청했는데, 미루어보건대 이게 정식 루트까지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크게 기대하지 말아야겠다 하고 며칠을 보냈더니 VC에게 연락이 와서 약속을 잡았다.

.

 방문하니까 해당 VC와 또다른 직원(아마 서기 역할) 1명이 있었다. 그들이 말하기를 아이디어는 초기에 몇번이고 pivot할*** 수 있기 때문에 아이디어보다 사람됨을 우선시하고, 아이디어도 당연히 물어보겠지만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제일 알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이제 와서 어플 런칭을 시도하려 한 정신적인 계기가 바로 유투브 '비즈카페' 채널이었다고 말했다. 비즈카페에 나오는 미국 유명인들의 연설, 인터뷰 내용은 내게 있어 마치 '이상기체 방정식'처럼 느껴졌는데, 한국 유명인들과 달리 미국인들은 추상적이고 본질적인 내용 위주로 말을 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런데 한국인에게 들을 수 없었던 그런 형이상학적인 말들을 듣고 나니, 큰 틀에서의 방향이 정립이 되어 머릿속이 정리가 되는 느낌이었다. 현실과 타협을 할 때 하더라도 이상이 무엇인지 알고 모르고의 차이가 현격하고, 허황된 시도 횟수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는 생각을 밝혔다.


 그러자 그 VC도, 미국이 한국보다 몇 년 정도 선행하게 마련인데 미국에선 이제 구체적인 방법론을 모르는 사람이 별로 없을테니 오히려 정신적 동기부여와 추상적 가치를 강조하는 셀럽이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그래서 본인은 진짜 큰 일을 미국에 비하여 문화지체가 발생하는 한국에서 할 수 있을지 약간 회의감이 들어서 결국 미국에 가는 선택지를 고려 중인데, 내게도 미국행을 진지하게 고민해본 적 있냐고 물었다. 그래서 나는 h1b가 뭔지를 아는 수준까지는 알아봤지만 석박사에 돈과 시간을 태우는 게 부담스럽기도 했고, GPT 덕에 언어 장벽이 점점 얇아지는 추세에서 영어에 높은 가중치를 둘 생각은 못하겠다고 대답했다.


 아마 저런 대화 내용, 그리고 대화 전반에서 내 솔직한 태도들도 좋은 인상을 주는 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그 후에 VC가 내가 원하는 아이디어를 물었는데, 내가 지난 몇 년 간 살아온 내력과 이를 통해 내 아이디어를 착안했음을 스토리텔링 형식으로 말했다. 아마 스토리텔링과 실행안이 어느 정도는 설득력과 진정성이 있어서 마음에 들었을 것 같다.


 내가 스프링캠프는 서울대 근처에 터를 잡았다는 점에서도 특이하고 여러모로 특색 있는 투자사라는 인상이 있는데, 대전략이 뭔지를 물었다. 그러자 뾰족한 팀, 즉 무난한 육각형보다는 어느 지점 하나가 이레귤러한 사람과 팀을 찾고 있다고 했다.

.


 며칠 후에 공간 허가권을 주겠다고 연락이 왔다.


 반면에 SNUSV 면접은 앞선 VC처럼 "특이한 사람이 막 내뱉는 말을 다 들어줄 수 있고 그걸 높이 사는" 환경이 아닐 수도 있다는 점을 내가 고려하지 못했다. 그래서 준비를 하나도 안 하고 갔다.

 기본적으로 면접 한 세트당 다대다로 진행하고, 여러 지원자 팀을 맞이해야 하기 때문에 면접관의 정신적 피로도도 상승할 것이며, 촉박한 시간 때문에 질문 1개에 할애할 수 있는 답변의 길이도 제한되어 있었다. 그래서 VC와의 면담과 비교하여 긴장감도 더 컸고 내 답변의 자유도도 낮았다.


 며칠 후 VC를 만나서, SNUSV 면접 얘기를 하며 이번 면접을 좋은 인생 공부로 삼아서 다음에 다른 VC들을 만날 때는 만반의 준비를 다하여 가야겠다는 얘기를 했다. 그러자 VC가 투자자가 '갑' 채무자가 '을'인 구조가 아니고 여러 투자자 중에서 핏이 맞는 투자자를 찾는다는 접근방식이 더 유효할 것이며, 그러기 위해서는 스스로를 꾸밈 없이 표현하여 거를 거면 거르라는 태도로 나가는 게 오히려 더 좋을 수도 있다고 대꾸했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적절한 수준의 세련된 PR 능력을 함양하는 게 중요한 순간이 존재하며, 잘 보여야 하는 순간을 놓치면 큰 손해를 보는 경우도 존재한다고 통감한다. 몇시간 후에 결과가 나올텐데 결과 자체보다도 이 통감을 잊지 않는 게 더 중요한 것 같다.


 돌이켜보면 의도치 않게 기지를 발휘하여 사람들의 호감이나 감탄을 받은 적이 살면서 몇번 있었다. 그 기지를 언제든지 꺼내들 수 있는 통제가능한 능력으로 만들려면 메타인지가 선행해야 한다. 특히 체화된 사회적지능, 암묵지보다 인위적으로 쌓은 지식 쪽이 더 뛰어난 사람은 그 필요성이 더 크다.


  

* '소수 고객의 유료 결제를 이끌어내기에 앞서 다수의 잠재고객을 끌어모을 전략'을 일컫는 마케팅 용어

** 의역하면 '상방이 뚫린 보상을 노린다'라는 투자 용어


*** 기존의 아이디어를 폐기하고 새로운 아이디어로 변경. 팀의 전문분야가 하루아침에 바뀌지 않으니 아이디어 변경에 경로의존성이 있다는 함의 때문에 피봇이라고 부르는 걸로 알고 있다. 번외로 그냥 사업이 잘 안돼서 재창업하는 걸 pivot이라고 완곡하게 표현함으로써 평판이나 체면을 유지하려는 목적에도 사용됨.



mail: blackdragon@snu.ac.kr

매거진의 이전글 스타트업 업계에서 대표 본인의 align의 중요성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