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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골 Dec 06. 2023

상담할 때 내담자를 평가하지 마라는 이유와 한계

상담에서 진솔한 고백과 소통을 방해하는 태도 중 하나로 내담자를 마음대로 판단하는 발언을 거리낌없이 하는 게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말은 이런 방면에서 사회적 지능이 높지 못한 절대다수의 상담자를 계몽하는 휴리스틱일 뿐입니다. 이와 반대로 지능이 높으면 평가와 판단을 해도 됩니다. 오히려 적절한 판단을 하는 게 최선이고 모든 판단을 배제하는 게 차악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무엇을 두고 지능이 낮은 평가와 판단이라 하는지를 규정할 차례입니다. 우리는 단체 술자리 혹은 1:1 겸상에서 누구 한 사람이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으면 그 고민이 그 사람의 약점으로 작용한다는 걸 경험적으로 압니다. 상담을 해주는 입장에 있어보신 분들도 상담을 해주면 약간 으쓱하는 감정을 크고작게 느꼈을 것입니다. 고민을 털어놓고 주변에서 훈수를 두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그 자리에서 보이지 않는 서열 같은 것이 형성됩니다. 그래서 내담자는 무슨 말을 해도 주변에서 씌우는 프레임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더욱 굴레에 깊숙이 갇히기만 합니다.


저런 술자리나 겸상은 그 자리를 파하고 나면 아무것도 아니게 되고 다음에 똑같은 인적 구성으로 모이더라도 그 소재를 언급하지 않을 때도 많지만, 만약에 경제활동을 하면서 매일같이 봐야 하는 사람에게 프레이밍을 당하면 성가심이 오래 갑니다.

흔히들 나이를 먹을수록 타인에게 사사로운 고민을 털어놓지 않게 되는 메커니즘이 이에 해당합니다.


이런 식의 상담 태도를 보이는 사람 중에 물론 여자도 있습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남자가 더 많다고 거의 확신하는 편이고, 당장 남자 5명이 모이면 까이는 친구가 1명 있게 마련이라는 meme만 봐도 불 보듯 뻔한 얘기입니다. 우리는 특히 학창시절 수컷사회에서 암묵적인 서열을 정하는 분위기에 익숙한 채 성장했으며 성인이 된 후에도 그 영향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는 않습니다. 누군가를 리드하는 짜릿함은 누구나 크고작게 느낄 것이고, 그게 좋은 방향으로 발현하면 위트가 되고 나쁜 방향으로는 가스라이팅이 됩니다.


그런데 일반적으로는 '위트' 쪽에 가까운 태도조차도 상담에서는 훈수질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가장 전형적인 예시가 무슨 말만 하면 "아~ 그러면 안되지~ 이랬어야지~"라고 사후 확증편향을 내비치면서 너는 내 재치와 처세를 따라오기에 한참 멀었음을 암묵적으로 내포하는 츳코미입니다. 이런 츳코미의 문제는 내담자의 컴플렉스 때문에 더 진솔한 자기고백을 막고 숨어버리게 만든다는 점입니다.

내담자가 그렇게 숨어버리면 그 상담 자리에서 상담자가 내담자를 더 깊게 이해할 가능성이 차단되고 얕은 이해에 그친 채 자신의 경험을 끌어온 성급한 조언- 즉 꼰대질로 귀결할 뿐입니다.


이런 방면의 사회적 지능의 정의는 결국 [재귀적 사고]입니다. 재귀적 사고란, 내가 a라고 표현하면 상대가 b라고 반응할 것이고 이런 핑퐁이 steady state로 갈 때 어떻게 되겠구나 하는 머릿속 계산입니다. 사실 꼭 상담에 국한하지 않아도 사회적 지능이라는 것 자체가 재귀적 사고를 요구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인싸]라고 불리는 부류들이 대체로 재귀적 사고도 좀더 잘합니다. 그러나 인싸 역시 상대의 컴플렉스를 읽어내는 훈련을 할 기회는 별로 가지지 못하고 좌중을 압도하는 언변과 텐션 스탯에 좀더 치중된 감이 있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상담에 있어서는 내향형인 사람이 두각을 보이기도 한다고 생각합니다.


위와 같이 부적절한 판단 행위의 예시와 메커니즘은 확실히 들 수 있었지만, 무엇이 적절한 판단 행위인지는 규정하는 데에는 조심스러워집니다. 다만, 현재 드러난 일부 정보 하에서 할 수 있는 여러 경우의 수를 염두에 둔 다음에, 내가 왜 현 시점에서 너를 이러이러하게 해석했는지를 설명하면서 내담자에게 피드백을 구하는 방식 정도면 무난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러면 왜 내가 불충분한 정보 속에서 이렇게 생각하게 되었는지를 내담자에게 납득시킬 가능성이 높아지고 내담자로 하여금 판단당하고 있다는 불쾌한 감정이 아니라 존중받는다는 느낌이 들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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