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5년 전부터 늘 창업을 염두에 두고 진로를 정하고 모임에 들어가고 행사에 참석하고 대화주제도 자연스레 인사이트풀하거나 고양감을 일으키는 강렬한 뭔가로 하려는 편이었다. 그러다 보니 전에 비해 창업을 생각하는 사람들과 가까이했고, 10~25년 알고 지낸 죽마고우와 가족보다 오히려 근 몇 년 간 친해진 사람들과 훨씬 공감대가 크다. 이 정돈 아니어도 아마 옛친구와 절연하고 최근의 생활양식 하에서 말이 통하는 사람들과 자주 교류하는 경험을 해본 사람은 많을 것이다. 서울살이가 감정적 여유가 풍족한 환경이 못되다 보니 가지치기가 불가피하다.
그리고 내가 '동류'라고 인식하는 사람들에게 생각지 못한 유사점이 보였다. 첫째로 모범생답지 않게 가족 친지와 불타는 갈등을 빚었다는 게 있고 둘째로 대학에 오기까지 교육 투자를 많이 받지 않아 가족에게 진 부채감이 낮은 편이라는 게 있다.
그 원인은 드라마 <응답하라 1994>에도 간접적으로 나온다. 지방 출신 하숙생들 중에 가수가 되고 싶어하는 의대생 인물이 결국 가족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본업으로 돌아가는 내용이 나온다. 진로 문제에서 부모와 충돌하는 젊은이들 모두를 대변하기에는 한참 애송이로 그려져서 나는 불만스럽다.
여하튼 집안의 재력을 등에 업고 사업할 게 아니면 반골성향이라도 강해 줘야 주변의 케케묵은 자들의 공격을 떨쳐내고 자기 내키는대로 사는 게 그나마 가능하다. 그렇지 않다면, 전통적이고 안정적인 고소득 진로로 가서 부모님이 어디 가서 어깨 으쓱할 수 있게 해드리고 용돈도 많이 붙여주는 그런 달콤한 유혹을 떨쳐내는 건 꽤 어려운 일이다. 지금 그 자리까지 가 있는 게 자기 혼자 잘나서가 아니라는 부담감이 클테니까.
한편 어려서부터 "내 가까운 사람들은 다 아니라고 하지만 나는 이게 맞다고 자신하고 있고, 내가 주변인들보다 더 넓은 세상에서 넓은 관점을 가졌다는 나름의 근거도 있다"라는 강렬한 반골적 깨달음을 해본 것 자체가, 훗날 세상에 없던 뭔가를 만들려는 뚝심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실리콘밸리의 영웅으로 꼽히는 사람들이 그저 롤모델로 삼을 대단한 사람들에 그치지 않고 강렬한 동류의식과 감정이입을 유발한다. 가령 남아공 변두리에서 불량학생, 부친이랑 충돌하다가 미국으로 이주한 후 늘 대마를 건 사업을 해온 창업가라거나 입양아 출신이라거나. 나는 잡스가 전세계 고아와 입양아들을 편견으로부터 구원했으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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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말이 안 통하는 사람들이랑 부대끼다가 올 때 그저 불쾌감을 느껴 손해만 보고 끝나냐 하면 꼭 그렇지만도 않다. 후술하건대 평상시에 결여되었던 강렬한 감정-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 과 그 감정으로 인한 동기부여를 명절 때마다 채우고 돌아가기 때문이다. 솔직히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업적을 세우기 위해 내가 부단하게 살아왔냐 하면 아니다(애초에 말 안통하는 사람들의 인정을 갈구하며 사는 게 옳은 방향이냐는 둘째치고). 근면, 성실, 인내가 부족했다 이런 모더니즘적 사고를 강조하고 싶진 않고, 단지 강한 동기부여를 유지한 채 한 방향을 보고 달릴 조건을 제대로 구축하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제프 베조스는 day 1 정신을 강조했는데, 닷컴버블 때 회사 망할 뻔 한 걸 상기하며 늘 회사가 망할 위기에 있다는 자기최면을 걸고 출근한다고 한 말과 맞닿은 얘기로 보인다. 한편 1년 전에 어떤 창업 데모데이에 가니까 한 CEO가 1번째 창업을 말아먹고 먹으려다 만 수면제를 매일 아침에 쳐다보며 출근한다고 말했다. 저게 꼭 좋다는 게 아니지만, 사람이 지루한 평상시 감정일 때보다 요동치는 감정일 때 비약적으로 향상되는 역량이 있게 마련인데 본인이 원할 때마다 그 스위치를 켤 수 있다면 남들보다 유리한 운영이 가능하다는 진화심리학적 관점을 나는 지지한다. 마치 먹이를 쫓거나 맹수와 전투하기 전에 고개와 어깨가 앞으로 말리는 자세를 취할 때 공부에도 집중이 잘되는 것처럼. 내 경우 부대끼는 주변 사람을 통하여 내가 얼마나 한참 갈 길이 멀며 참으로 열받는 입장인지 하는 현실 인식이 빠르게 업데이트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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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친구와 절연하는 예시를 들었지만, 오래된 친구들 역시도 최근에 나를 만나 대화할 때 눈빛이 달라지는 경험을 근 반 년 간 종종 한다. 나중에 사업을 할 거라면 삼라만상을 이해하고 소비자를 이해하고 사람을 이해해야 하고 스스로가 한참 발전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목표가 있다 보니 타인에게도 해줄 수 있는 말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가령 누가 어떤 고민과 불안에 대해 얘기를 하면, 위안거리가 될 뻔한 말만 하고 그치는 게 아니라 은근히 남들이 잘 안 꼬집는 진실을 섞어서 듣기 좋은 말을 해주는 식이다.
내 고향에서는 그저 오래 알고 지냈기 때문에 계속 연을 유지하는 관계가 정말이지 보편화되어 있다. 그걸 좋게 말하면 '의리'라고 부른다. 그러니까 이 사람에게 정말 감화해야지만 계속 친구를 하는 게 아니라 관계가 오래되었고 나름 편한 사이이기 때문에 계속 만나는 것이다. 그런 경향성 때문에 결혼도 무난하게 빨리 하는 경우가 많고 전반적인 도파민 수치가 낮고 안정적인 건가 생각도 든다.
그런데 나는 이제 정으로 만나는 친구가 아니라 '줄 수 있는 것'이 생겨난 친구에 가까워졌다. 몇주 전에 다산그룹 회장과 사석에서 만날 귀한 기회를 가졌는데, 이분도 "교수나 이런 친구들이 왜 나를 보러 자주 오겠나? 내가 술 사줘 재밌게 해줘 그만큼 베푸는 게 있기 때문이지. 사람은 누구나 이기적이고 나도 이기적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되, 그러면 나와 타인이 윈윈할 현실적인 방법을 찾아야지"라고 말씀하셨다.
이렇게 친구관계 수준에서는 적당히 처신을 하고 있지만, 세대/환경 차이가 더 심하다거나 선을 안 지키는 상대를 대할 때는 그게 참 어렵다. 보통 아무리 친한 사이여도 처음에 만나면 근황을 묻는다거나 하는 탐색을 하는 와중에 서로에 대한 이해가 커지고 흥미로운 얘기와 내공과 인사이트가 자연스레 묻어나게 마련이다. 그런데 가령 남자끼리 모이면 앞에서는 억까(AMOGing)를 하고 뒤에서는 진국이라고 칭찬하는 친구관계가 많다고 하는데, 그 비슷하게 무례한 관계에서 무슨 심도 있는 대화가 진전하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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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드리히 니체가 사람은 낙타, 사자, 어린아이 순으로 나아간다는 모델을 제시했다. 그러나 어린아이가 되려면 인정욕구가 0에 수렴하거나 가만히 있어도 압도하는 무기가 있거나 둘 중 하나는 되어야 한다고 본다. 그게 아니면 작은 흔들림으로 금세 사자나 낙타의 면모를 보이게 마련이다.
나는 지난 5년 간 세계관에 있어 많은 변화를 겪다 보니 수십 년 동안 알고 지내던 수많은 주변인들의 평균지점에서 한참 멀어졌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결과임에도 어느날 새삼스레 체감하면서 혼란스러울 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