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OTT LIFE

시네마 천국. 왓챠. 1988.

남자는 평생 토토다.

by 망고푸딩

시네마 천국. 왓챠. 1988. (스포일러 포함)


카메라 사고 보니, 정신 차릴 수 없는 레퍼런스 보고다. 언제부턴가 웬만한 영화가 다 그러한데 보는 동안 과부하 걸리는 걸 느꼈다. 시네마 천국에 반했다.


정결한 마음가짐으로 온전히 느끼려 오랫동안 미루다 이제야 충동적으로 찾았다. 그동안 너무 많이 노출됐지만, 알고도 당한다는 박찬호 묵직한 직구 같아 언제 보든 감동할 것 같다. 그 핏덩이가 뭘 알았겠나 싶고. 모든 영화는 각자가 다른 의미와 가치로 ‘ ’한다. 단연 최악은, 헛되이 써 버리고 잊는 것이다. 쓰고 보니 이성관계에 관한 씁쓸한 메타포가 있다.


'미드나잇 인 파리'가 '정말 그때가 좋았냐?' 묻고 나는 '글쎄.' 답했다. 그때의 영화 시네마 천국은 '그때가 좋았지'가 전제다. 전선에서 동떨어진 목가적 일상 속에서, 벗어날 수 없는 굴곡 견디고 산업화 따른 풍요와 빈곤에 적응해 가는 모두의 삶을 관조한다. 그 중심에, 생사와 영욕을 겪은 시네마 천국의 등대지기 알프레도가 있다.

아브라카다브라.

알프레도.


유식해도 무지한 사람은 사회적 흉기이고 공동체에 내재한 고질적 병폐의 시작과 끝이다. 무식해도 무지하지 않았던 알프레도는 작은 일탈로 일상을 변주해 그 낭만으로 주변을 밝히는데 그가 일생을 마주한 영사기와 닮았다. 알프레도의 마술은, 현실 경계 모호한 토토의 유년 세계에 상상할 수 없었던 판타지를 구현한다. 그렇게 확장한 세계와 그가 준 영감들은 토토가 열정으로 자기 이야기를 써 나아가는 길에 특별한 자산이 된다.


어른의 일터도 아이에겐 놀이터다. 꼭 필요한 일을 하는데 천대받는 알프레도가 '보람'을 의미 부여해야만 했던 고독한 영사실이, 토토에게는 꿈의 바다를 항해하는 선장이 있는 신기한 조타실이다. 극장 시네마 천국은, 지안칼도 사람들의 애환이 가득 숨 쉬던 공간으로 여러 관계의 매개이자 일상의 연장이었다. 산다는 건 변하는 것이다. 광장은 고즈넉이 생명이 거닐었지만 끝내 기성품으로 메워진다. 그동안, 시네마 천국은 퇴폐로 변질되고 더 이상 삶을 품을 수 없어 주인 비운 자동차들에게 자리 내어주기 위해 해체된다.


영화에 닻은 두 번 나온다. 한 번은 엘레나의 부재로 희망 잃어 가는 살바토레의 심경을 묘사할 때, 다음은 시대의 파고를 넘지 못한 어촌, 쓰임이 다한 닻들이 엉켜있는 부두에서 변해가는 가치와 준거가 표류하는 환경을 은유한다. 오래전 토토는 모두가 불을 피해 달아날 때 인파를 거슬러 알프레도에게 갔다. 이제 더 잘 보게 된 눈을 가진 알프레도는 살바토레가 보지 못한 길, 모두가 흘러가는 변화 속으로 토토를 돌려보낸다.

시절이 잠든 묘지.

이 이별은, 살바토레에겐 실감 나지 않는 격리, 성장에 필연인 홀로서기이지만 알프레도에겐 내 반쪽을 뜯어내는 고통, 토토 이전의 고독과 절망으로 돌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알프레도는 자신의 굴레가 소중한 토토에게 씌워지는 걸 막기 위해, 남은 생을 짓누를 어둠을 감내한다. 수많은 가능성과 선택에서 내가 아는 친구가 갈 단 하나의 길이 찬란할 것을 확신하며 내게 빛을 들려주던 오랜 벗을 내 인생에서 끊어내는 결의를 보인다.


알프레도는, 자기 언어와 인생을 발판으로 토토를 미래로 밀어내면서, 거역할 수 없는 흐름 속에서 얼어붙은 자신의 대지에 시대가 망각한 가치를 묻는다. 그 의미 필요한 토토에게 닿을 날을 기다리며.


토토.


최근 관점으로 보면, 성장기 아동의 보상회로가 영상매체가 주는 강렬한 자극에 반응하는 과정이 강화되어 영화에 관한 것을 대할 때 도파민이 과도하게 분비되는 기제로 이해할 수 있다.(아. 내 감동.) 토토는 보상의 정점이 영화였지만 살바토레는 엘레나였다. 살바토레는 심취하고 열중했던 영화를 첫사랑으로 치환하여 보기만 했던 꿈을 세상에 하나뿐인 나의 서사로 쓴다.

철컹철컹.

살바토레가 엘레나를 몰래 담은 필름이나 습작에서 그가 몰입했던 당대 영화의 관습을 뛰어넘는 미장센, 남다른 시선과 천부적 재능이 드러난다. 토토의 강렬한 기억 아카이브와 살바토레의 실연으로 인한 허무는 로마에서 경력 활동에 밑거름이 된 듯하다.


살바토레의 연애는 자신의 욕망과 탐미를 투사한 엘레나로 시작했다. 차이가 갈등으로 번지기엔 함께한 시간이 너무 짧아 열정과 젊음의 아름다운 단면만으로 추억을 채우기에 충분했다. 희열이 멈추면 괴롭고 결속에 반하는 모든 것 앞에 용기가 생긴다. 여느 사연에 있는 내 생의 그 순간들도 이 어린 연인에 녹아있다. 최선을 다했지만, 자신을 벗어난 아무것도 뜻대로 다룰 수 없었던 것도. 마음만으로 얻은 건 변치 않겠다는 만용뿐인 것도.


살바토레의 멈춘 시간은, 선명하게 찢긴 고운 추억, 극복하지 못한 상실과 부재로 가득 채워져 세상의 시간 위에 표류하고 있었다. 그렇게 넋을 잃은 자신의 영화에 잊었던 꿈이 샘솟는다.


시네마 천국의 끝은 함의가 너무 많다. 한 점만 집중하자면. 고집 센 인생 예술가는, 성가신 악동 구슬리는 말에 그친 줄 알았던 약속을 지켜내며 관계의 미학을 완성한다. 살바토레에게 간절했던 청춘의 환영이 떠난 자리 그 공허는 알프레도가 지켜낸 토토의 꿈, 토토의 희열로 다시 채워지기 시작한다. 그 꿈은, 토토의 시간으로 단숨에 거슬러 현재가 된다. 버려졌을 절정, 모두의 삶, 세상은 변해도 변하지 않고 남은 가치. 한 번뿐이었던 토토의 열병도 그들과 함께 어둠 속 별처럼 눈물로 빛난다.


마리아.


파두가 떠오르는 마리아는, 흔한 이름처럼 보편 여성성을 상징하는 한편 미망인과 어머니를 교차해 극을 위한 여성성을 집약한 인물이다. 젊었을 때와 늙었을 때의 피색을 연상할 수 있는 캐스팅에 뺨 특징까지 살리는 등, 일관성과 연속성을 내포한 인물 자체로 가족유대의 가치를 유기적으로 상징한다.


마리아는 인생 모순 속에 번민하지만 자기 자리 굳세게 지키며 가정의 중심이 된 분별 있는 여자다. 토토가 묻어버린 모든 것들을 다시 보고 새로운 지평으로 건너가는 일련의 사건, 귀향은 토토를 향한 마리아의 끈질긴 의지와 결연한 믿음, 아들의 참 행복을 바라는 간절함에서 비롯한다.

발견했다구.

가족은 우리말에 가깝고 식구는 일본말에 가까우니 가족을 쓰는 게 더 바람직하다는데, 난 ‘식구’가 더 좋다. 무엇보다 식구엔 ‘족’이라는 선천 지위에 근거한 배타가 없다. 내 역량과 정성, 애착으로 꾸리고 가꿀 수 있는 지위다. 해체된 가정을 복원하고 관계와 유대를 더 의미 있게 확장할 수 있기 때문에 문명과 자연 모든 시공에 통용할 수 있는 말이다. 알프레도는 토토의 가족이 될 수 없지만 토토와 한 식구였다. 그리고 우정이란 말로 부족한 깊은 유대를 이뤘다.


그리고 감독판.


러닝 타임 짧은 옛날 영화라 그런지 감독이 그런 건지 감정에 젖어 허우적거리기 전에 멱살 잡고 다음 코스로 담근다. 마지막도 누적한 서사를 터트릴 거라 마음에 준비까지 했는데. ‘이만큼 보고도 내 스타일 몰라? 넘겨 넘겨.’ 하는 듯했다. 한참 펑펑 우는데 끝나 버렸다. 그러나.


쿠키영상 기다리게 하는 마블 무비와 달리, 시네마는 감동으로 아무것도 못해 엔딩 크레디트를 보게 한다. 토토가 어미와 마주한 테이블에서 잘린 필름 하나하나 복기하듯, 엔딩 크레디트 따라가다, 키스신처럼 잘려나간 진실을 봤다. 온전한 분량으로 감독판이 있었고 그날 밤, 나는 토토처럼 미쳤다.


(OTT 박스였던 PS4가 전원 고장 나 장식품으로 쓰고 있었는데, 이 집에 시네마 천국 감독판을 볼 수 있는 블루레이 플레이어가 그 장식품뿐이었다. 20만 원에 이르는 수리 대신 YES24 하나남은 PS5로 환승했는데 디지털 에디션으로 들인 걸 후회하며, 몇 달 만에 PS4를 시동했다. 혹여 자연 치유되지 않았을까 기대하고 기원하며. 부팅 전 디스크 체크하는 애 등지고 감사 성호 그었다. 고장 난 기계가 그냥 나아지다니. 감독판 블루레이를 주문했다. 한밤중 잠시, 난 토토처럼 미쳤었다. 오감도 같은 영화, 시네마 천국.)


그리고 감독판은 완전히 다른 영화다.

나보다 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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