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에서 말하는 7대죄가 아닌 죄, 그러나 심각한 죄

- 나를 믿는 마음, 나는 나 너는 그저 너. 쉼보르스카 '증오'

by 가을에 내리는 눈

'누군가 나를 위해 기도하네' 이런 찬송가를 들은 적이 있다. 그저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내가 알지도 못하는 그 누군가가 나를 위해 기도를 한다고? 그런데 왜? 내가 그리 불쌍해 보였던가? 멀리서 본 나의 외양이, 아니면 슬쩍 전해 들은 내 얘기가? 단순한 연민일까 동병상련이었을까?


그 이유나 사정이 무엇이든 나는 그의 그 기도가 많이 고맙다. 거꾸로 내게 미워하는 감정을 가질 수도 있었지 않았겠나? 그것이 아닌 것만 해도 고마움을 느낄 이유는 충분하다. 그 미움이 공기를 타고 내게 오지는 않겠지만, 그럴 수는 없는 것이기는 해도 아무튼 누군가가 나를 미워하고 증오하는 것보다는 훨씬 다행스러운 일 아닌가? 혹시 아나? 천국의 문 앞에서도 나를 비호해 줄지? 아 이 사람 내가 안다고, 괜찮은 사람이라고. 들여보내주라고!


나는 증오를 두려워한다. 혹여 누군가가 나를 미워하고 증오하지는 않을까 하는 노파심, 그보다는 내가 부지불식간에 그 누군가를 싫어하고 미워하는 마음을 내 마음 속 저 깊은 곳에 가지고 있지는 않을까 하는 불안감. 남이 나를 미워하면 내가 안타깝고 내가 남을 증오하면 그 또한 무서운 일이고. 결국은 내가 다친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 특히 후자의 경우에는 100%.


네덜란드의 철학자 스피노자는 증오는 질투나 탐욕, 시기와는 달리 '상대방의 완전한 파괴'를 그 목표로 한다고 아주 무서운 말을 했다. 그에 따르면 누군가를 증오하는 사람은 자신이 겪는 불행의 원인이 그 누군가에게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는 그에게는 이 세상에 존재해야 할 그 어떤 권리나 명분도 허용하지 않는다. 철저하게 파괴적이다. 무섭다 참으로!


그는 그렇다면 어찌해야 증오를 극복할 수 있는지도 설명한다. 투명성과 치료. "내가 느끼고 있는 불쾌한 감정, 그리고 더 나아가 나로 하여금 지금 불행하다고 느끼게 만드는 그 원인이 진짜 어디에 있는지를 명확하게 투명하게 짚어낼 수만 있다면, 우리는 굳이 우리가 증오하는 상대를 제거하려 하지는 않는다." 그것이 쉽지 않으니 그게 문제다.


브런치의 다른 글에서 나는 '두려움의 정체, 그는 아니 그녀는 누구인가?'에 대하여 나름의 생각을 늘어놓은 적이 있다. 마치 '천재의 작품에서 잃어버린 자아를 발견함'의 경우처럼 나는 스피노자의 이 말에 크게 기뻤다. 아 나도 얼마 전 그의 말과 비슷한 얘기를 한 적이 있는데? 그 실체를, 핵심 원인을 하나하나 짚어보라고. 카오루 이시카와 다이어그램으로 그려보자고, 생선가시 그려나가듯이 그렇게!


스피노자가 말하는 진짜 원인 찾아내기에서의 핵심은, 내 생각에는, 충분히 객관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의사 앞에서 내 현재의 증상을 그대로 소상하게 털어놓듯이 그렇게. 누가 보는 것도 아니고 듣고 있는 것도 아니고, 그저 나와 또 다른 나, 이렇게 단 두 사람뿐인 이 자리. 지킬박사와 미스터 하이드, 실은 하나의 존재인 그 둘을 차근차근 분석하고 해부해 본다. 그래야 처방전이 나오고 그래야 약국에서 약을 지을 수 있다.


증오에 관해서 쓴 어느 책에 보면 스피노자와 비슷한 진단이 나온다. 증오는 오직 파괴를 지향하는 성향이고 경멸의 가장 파괴적인 형태라고. 정말 농도 짙은 적대감이고 공격성인 증오는 강력한 독성을 지닌 침묵의 형태로 혹은 거친 언어를 통한 폭력의 모습으로, 개인 간의 격렬한 대결과 사회적 갈등으로 표출된다고 그 책은 말한다. 때로는 심각한 수준의 조직적 차별과 집단 폭력, 최악의 경우에는 무서운 범죄와 전쟁의 형태로 그 모습을 드러낸다고 지적한다.


나는 증오가 종교에서 말하는 일곱 가지 대죄보다 더 무섭고 심각한 죄라고 생각한다. 시기나 질투, 혹은 오만과 탐욕보다 그 파괴적 효과가 더욱 직접적이고 가시적이고, 강력하다. 그 일곱 가지 대죄의 중심에 아니면 그 언저리에는 늘 이 증오의 감정이 함께하고 있다고 나는 본다. 어쩌면 최후의 공격 수단일지도 모르겠다. 여차하면 모든 해결책을 이 증오에서 찾을 수도 있다. 실제로 그런 성향이 강하다. 결국은 미움으로, 증오로 이어진다. 거기서 비로소 자신의 '일시적인' 마음의 위안을 찾으려 한다. 진통제 같다고나 할까? 아주 잠깐 고통이 사라지는 듯한 착시를 가져오는? 그래서 진짜 진통제와는 다르다.


그가 행복하기 때문에 지금 내가 행복하지 못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는 내게 별다른 짓을 한 적도 없고 사실 할 수도 없다. 그가 나를 행복하게 아니면 불행하게 만들겠는가? 그에게는 그럴 힘도 없고 그럴 여유도 없다. 자기 먹고살기에도 바쁜데 나를 왜 신경 쓸 것인가? 그저 나 혼자 '달떠서' 있거나 괜히 나 혼자 그를 걸고넘어지는 것이다. 어리석음의 극치다.


'오불관언' (그게 도대체 나와 무슨 상관이 있어? 아, 지금 나는 내 일만 해도 바쁘고 정신없어. 아들 녀석 일도 아니고! 솔직히 그저 남이잖아? 때로는 그리 쿨할 필요도 있어, 암!)의 지혜를 나의 것으로 만들려 자꾸 노력해 보자. 된다, 어느 순간 먹힌다 이 전략이! 나의 경험에 기초한 고백이다.


생산적/창조적/효용가치 중심의/결국에는 일이 되도록 하는 (getting things done), 이런 단어를 나는 좋아한다. 늘 내 삶의 주변에 가까이 두려고 애쓴다. 이와 극단의 반대편에 있는 것들은 따라서 가급적 멀리하려 힘쓴다. '근주자적 근묵자흑' (붉은 것을 가까이 하면 결국 내게도 붉은 것이 묻고 먹을 가까이 하면 나 또한 검어진다)의 경구를 기억하자.


오늘의 시를 본다. 1996년 73세의 나이에 노벨문학상을 받은 폴란드의 시인 비스와바 쉼보르스카의 시다. 그녀의 시는 읽기는 쉽다, 굳이 어려운 시어를 쓰지는 않는다. 그래서 대체로 시가 길다. 호불호가 엇갈린다. 나는 어려운 시를 그리 좋아하는 편이 아니라서 그녀의 이런 시풍이 좋다. 그 쉬운 설명의 시 속에 당연 들어있는 메시지는 많다. 어쩌면 어렵게 쓰여진 시보다 더 어려울 지도 모른다. 그 또한 읽는 이들의 재미다. 내가 지금도 기억하는 것 하나는 그녀의 시 중에 소련의 이오시프 비사리오노비치 주가시빌리 (스탈린)를 지긋지긋한 눈사람과 비교하는 내용의 시다. 폴란드와 소련, 그들의 그 고단한 역사.


그녀가 시에서 설명하는 증오는 스피노자의 그것과도, 증오에 관해 책 한 권을 쓴 권위자의 그것과도 다른 참신한 모습으로 내게 다가왔다. 더욱 공감이 갔다. 증오의 실체와 그 숨겨진 모습을 좀 더 구체적으로 볼 수 있었다. 나의 방벽 또한 그만큼 단단해질 것이다. 이 시에서 내가 얻은 큰 수확이다.


증오 (Hatred)

-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보세요 그는 여전히 얼마나 효율적인 존재인가를, 그가 어떻게 스스로 그 모습을

형성해 내는지를 - 우리 사는 이 세기의 그 증오를.

가장 큰 장애물들조차 쉽게 뛰어넘지요. 참으로 재빠르게 우리들에게 달려들어

우리를 바짝 쫓지요.


증오는 다른 감정들과는 달라요. 나이 든 사람에게도 또한 젊은 사람들에게도 동시에 있어요.

사람을 가리지 않지요. 그는 언제나 자기 자신에게 그 탄생과 존재의 구실을 주지요.

그렇게 증오는 생명을 유지해요. 증오가 잠시 잠이 든 듯 한 때에도, 그는 결코 영원히 쉬지 않아요.

그렇다고 그의 그런 쉼 없음이 그의 힘을 약하게 하지도 않지요 ; 그는 그 자신을 먹고 살아요.


어떤 하나의 종교 혹은 그것과는 다른 또 하나의 종교, 그에게는 아무 상관 없어요 전혀 장애가

되지 않지요 - 그 종교가 무엇이든 똑같아요 그를 즉시 그가 활동하기 좋은 위치에 놓아주지요.

조국이 어디냐구요? 그것도 아무런 효과가 없어요 그저 똑같아요 출신이 어디든 결국은

증오라는 존재가 자신의 일을 시작하게 해주지요.

증오, 그놈의 증오. 그의 얼굴은 육욕적인 황홀경의 찡그린 상으로 뒤틀려있지요...


증오는 전혀 다른 두 모습을 취하는데 능해요 - 폭발하듯 날뛰기도 하고 죽은 듯 조용하기도 하고

그 사이를 참으로 자유롭게 왔다 갔다 하지요, 혹은 시뻘건 피와 새하얀 눈 사이를.

무엇보다 증오는 그 자신의 주된 목적이나 중심 사상에 결코 싫증을 내는 법이 없어요 - 늘 자신의

더럽혀진 희생물 위로 날아오르며 그 위에 탑처럼 우뚝 솟아있지요.


항상 새로운 도전에 나설 준비가 되어있어요. 만약 잠깐 기다려야 한다면 그는 기다려요.

사람들은 말하지요 증오는 앞을 보지 못하는 장님이라고. 앞을 못 본다고요?

아니요, 증오는 저격병의 날카로운 시력을 가지고 있어요 그리고 결코 쉽게 물러서지 않고 미래를 응시하지요

오직 그만이 그럴 수 있어요.


<우리말 번역 - 가을에 내리는 눈, 영어 번역본을 바탕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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