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주 혼밥을 하시나요? 밥상의 음식들과 대화는 하세요?

- 오늘은 어떤 말을 건네셨어요? 몸부림? 백석 '선우사'

by 가을에 내리는 눈

혼자해야 좋은 것이 있고 혼자해도 좋은 것이 있고, 혼자하면 결코 재미없는 것들이 있다. 혼자 먹는 밥이 그렇다. 설령 그날 음식의 맛이 좋았던들 그 누구에게 그 기분을 말할 것이며 누가 나의 만족한 그 표정을 보아줄 것인가? 사실 맛있을 일이 별로 없다. 대개는 최소한의 생명 유지식일 가능성이 크니까!


어릴 적 대가족이었던 나의 집, 한 밥상에서는 다 둘러앉아 밥을 먹는 것도 힘들었다. 그래서 언제나 밥상 두 개. 아버지와 어머니, 여러 형제들 이렇게 여럿이 둘러앉아 먹는 밥은 언제나 꿀맛이었다. 형들이 맛있게 먹으니 나는 그냥 덩달아 맛있었다. 그날 밥상에서 특히 맛있는 특별식은 아버지가 일부러 내게 조금 더 떼어주시고는 했다. 아버지의 특권이니 형들도 내게 별다른 눈치를 주지는 못했다. 맛이 없을 수가 있겠는가?


일본에서는 일찌기 혼자 식당에 와서 먹는 사람들을 위한 배려가 많았다. 칸막이를 한 곳도 있고 '혼잔데 식사될까요?' 이리 물어볼 필요도 없다. 우리나라에서는 여전히 식당에 가서 혼자 밥을 먹기는 수월하지 않았다. 우선 피크 타임은 반드시 피해야 한다. 예의다. 점심 시간 한참 지난 그 시각 혹은 저녁 손님 지나간 그때에야 얼굴을 내밀 수 있다. 그것도 자리에 앉기 전에 꼭 물어본다, 혼자 먹을 수 있나요? 2인분 이상 주문만 가능한 메뉴도 많다. 그러니 사전에 충분한 연구를 하고 들어가야 한다. 낭패를 볼 수 있다. 자연스럽게 외식은 꺼리는 상황이 된다.


외국에서는 오히려 수월하다. 그런데 문제는 사 먹는 밥은 뭐가 달라도 다르다는 것이다. 긍정적 측면에서가 아니라 부정적 측면에서. 무엇보다 내가 질린다. 너무 달거나 간이 세거나 지나치게 자극적이거나, 그것 또한 큰 문제다. 결국 집에서 해 먹는 방식을 택한다. 물론 밥은 아니고. 밥을 하면 반찬을 해야 하니까. 어쩔 수 없이 '간편식'을 택하게 된다. 그래도 내 입맛과 물리지 않을 오래갈 메뉴, 기본적 영양과 칼로리는 생각한다. 물론 탄수화물/단백질/지방의 균형을 맞추는 것은 힘들다. 아주 힘들다!


삶은 달걀/삶은 감자/통곡물 빵 약간/사과, 점심에는 여기에 호두, 가끔은 제일 쉬운 파스타 알리오 에 올리오, 저녁에는 다크초콜릿 몇 조각이 추가된다. 몇 년을 이렇게 먹어왔다. 칼로리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고 한국에 있는 유명 대학병원 소화기 내과 전문의 친구 녀석이 걱정을 한다. 뾰족한 방법이 없다. 그냥 그리 산다. 그래도 10년 째 같은 허리 사이즈의 청바지를 입을 수 있으니 그것을 다행으로 여긴다.


지금 머무르는 이 나라에 와서는 곡물 빵 구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할 수 없이 곡물 뮤즐리를 함께 먹는다. 양배추와 청경채도 삶아서 섬유소를 보충한다. 감자와 함께 이곳에서 많이 나는 자색 고구마를 삶아서 먹는다. 호두도 아주 어렵게 구해서 꼭 먹는다. 이만하면 잘 먹고 사는 것이다, 늘 그리 생각한다. 요즘은 토마토 한 개를 올리브 오일에 잘 익혀 껍질을 벗겨내고 계란 두 개를 넣어 묽은 스크램블을 점심 때 해 먹는다. 아주 맛있다,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 오일 듬뿍 들어간.


혼자 끓여 먹어서 좋은 점? 있나? 100% 나의 기준에 맞춘다는 것. 메뉴도 먹는 시각도, 먹는 방법까지도. 늘 '신독' (군자는 남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스스로 삼가고 자중한다, 공자님 말씀)의 상태에 있다. 그래서 가끔은 정상적인 식사 자리에서는 하지 못할 예의 없는 행동들도 한다. 설거지가 빨리 끝난다. 5분? 큰 접시 하나에 담아서 먹는 새로운 아이디어가 생각이 났다. 그래서 그 후로는 늘 그렇게 한다. 중동이나 인디아 사람들처럼 손으로 먹는 방법을 많이 쓴다. 손이 또 하나의 혀라는 실감을 그때 했다. 물론 오른손으로만 집어먹게 된다.


'오늘 내가 먹는 것이 바로 내일의 나'라는 말을 늘 기억한다. 그래서 언제나 걱정이 남는다. 칼로리가 부족하다. 또한 탄수화물/단백질/지방의 균형잡힌 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함을 알고 있다. 한때는 매일 내가 먹는 음식들의 칼로리를 하나하나 다 적어본 적이 있다. 역시 부족했다. 나이 든 성인 남성의 경우 하루 통상 2,000 - 2,500킬로칼로리가 필요한데 나의 하루 음식 섭취량으로는 이것에 미치지 못하는 것이었다. 한동안 머무르던 조지아에는 러시아에서 생산된 한국 유명 브랜드의 초코파이가 있어서 점심 식사 후에는 그것도 하나씩 먹을 때가 있었다. 오직 130킬로칼로리를 위해서.


방법은? 최대한 열심히 챙겨 먹는 것 밖에는 달리 방법이 없다. '생존을 위한 프로젝트'라는 결사항전의 각오도 머릿속에 넣고 산다. 이럴 때는 외국에 머무르는 것이 주는 여러 가지 한계들이 더욱 크게 다가온다. 우리가 익숙한 자포니카 쌀도 이곳의 동네 가게에서는 구할 수 없다. 현미나 보리도 없다. 찰수수 같은 것이 있으면 좋으련만. 무엇보다 이곳이 고산지대라 음식을 익히는데 평지의 두 배의 시간이 걸린다. 그 또한 고역이다. 얼마 전 찾아낸 쥐눈이 콩 비슷한 작은 검은 콩 삶는 데에도 40분 넘는 시간이 소요된다.


이럴 때는 스타우브나 르꾸르제 같은 무쇠솥 생각이 절실하다. 훨씬 나을 것인데! 인덕션이 주는 화력의 제약도 장애물이다. 이래저래 끓여 먹고 살기가 녹녹지 않다. 먹는 것이, 아니 먹기 위해 무언가를 준비해 내는 것이 그저 고역이다. 사는 것이 고해이기 이전에 먹는 것이 고행이다. 먹는 즐거움이 내 삶의 가장 큰 기쁨과 낙이었던 때도 있었는데? '이 또한 지나가리라, 결국은 다 그렇게 지나간다', 부디!


오늘의 시를 본다. 내가 좋아하는 시인 백석님의 시다. 그분의 나이 25세 때 쓴 시다. 함경도에서 영어선생을 하고 있을 때다. 그 멋지고 잘 생긴 눈부신 젊은 시절, 그야말로 그의 '화양년화' (꽃처럼 아름답고 화려했던 시절). 이 양반 역시 오랜 세월 혼밥에 익숙해진 분이다. 그래서 급기야는 매일 밥상에서 마주하는 음식 친구들과 대화를 한다. '나의 음식 친구들 (선우)에게 바치는 노래 (사)', '선우사'.


흰밥과 가자미, 그들과 시인 이렇게 셋이서 낡은 소반을 앞에 놓고 앉아 두런두런 사는 얘기를 한다. 서로를 격려하고 서로를 자랑스럽게 여긴다. 그래서 굳이 가난해도 서럽지 않고 외롭다 생각하지도 않는다. 누구 하나 부럽지도 않다. 나는 혼자가 아니다, 그들도 혼자가 아니다. 내게는 그들이 있고 그들에게는 자신들을 알아봐 주는 내가 있다. 친구가 있다.


바다 저 아래 맑은 물밑 모래톱에서 나고 자란 가자미, 바람 좋은 들판에서 물새 소리 들으며 단이슬 먹고 익어간 쌀, 그리고 외딴 산골에서 솔개 소리를 배우고 다람쥐와 동무하면서 자라난 나, 완벽한 우주적 공통체!


'세상 같은 건 밖에 나도 좋을 것 같다' - 내가, 우리가 그들의 눈밖에 나도 오불관언이고 나 또한 세상에 별 미련 없다. 아무런 아쉬움도 없다. 내게는 늘 이리 마주하는 고마운 친구들이 있다. 그것으로 나는 되었다.


'다행스럽게도' 저는 아직 이런 중한 단계는 아닙니다. 그들과 주저리주저리 대화하는 상태는 아니랍니다. 아직은 멀쩡하지요. 그래서 신과 섭리와 자연에 늘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지요. 오늘 필요 칼로리 채우는 일에나 다시 골몰하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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