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당한 슬픔, 그 비탄 속의 의연함. '스타바트 마테르'
저기 자식이 울고 있어요, 가슴이 무너지는 일이지요. 아내가 울어요, 내가 뭘 크게 잘못한 것일까? 하지만 두 경우 다 짐작가는 것들이 있고 그래서 나름의 달래줄 방법 혹은 비책도 있어요. 그런데 어머니가 우시네요? 이건 전혀 다른 상황, 그 차원이 다른 얘기지요. 그렇지요?
다행스럽게도 제 어머니가 우시는 것은 아니에요. 감사하게도, 참으로 고맙게도 제 어머니는 제게 단 한 번의 눈물도 보이지 않으셨어요. 네, 분명 그분도 여러 번 우셨을 겁니다. 세상에 울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다들 많은 이유로 울지요. 그분은 아무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그저 혼자 우신 것이지요. 자식들이 걱정할까 봐, 당신의 그 우아하고 든든한 모습 상처 내지 않으려, 그리고 끝까지 우리들의 마음과 영혼의 안식처로 남으려 그리 하신 것이겠지요. 어느 구석진 곳에서 몰래 혼자 울고 계셨을 그분을 생각하면 정말 슬퍼요. 제가 위로해드렸으면 조금은 나았을 것을, 당신에게도 또 제게도. 이제 현세에서 그분이 우시는 모습은 결코 볼 수 없군요. 슬픈 일이지요!
영국의 어느 계관시인이 그랬어요. '눈물은 한여름 우리 영혼에 내리는 시원한 소나기와 같은 것'이라고. 소나기는 금새 그치지요? 어쩌면 그치기 위해 그리 서둘러 세차게 내리는 것인지도 몰라요. 우리의 눈물도 결국은 그치지요? 울고 나면 그래도 마음이 괜찮아지지요? 그래서 우리의 본능이, 위대한 인간의 두뇌구조와 그 복잡한 메커니즘이 그리 눈물 흘리게 하는 것이랍니다. 단순한 우리네 감정상의 충동의 발현만은 아닌 것입니다.
우는 행위 그 자체, 그리고 눈물은 많은 강력한 효능을 가지고 있답니다. 살균의 효과부터 눈을 보호하고 정화하는 효능, 스트레스의 해소, 면역력의 증진, 심리적 안정, 소화 촉진, 신체 통증의 완화 등. 여기서 주목할 만한 또 다른 효과 한 가지. 바로 '사회적 유대감의 형성'이라는 부분입니다. 어? 저 사람도 우네? 영 독종은 아니구먼! 막상 그의 우는 모습을 보니 내 마음이 좀 그렇구먼! 어쩌면 이런 식으로, 우는 행위를 통해 상대방에게 이런 말을 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어요. "사실 저 지금 많이 슬퍼요. 힘들어요. 저를 좀 꼭 안아주세요, 따뜻하게 바라봐 주세요. 당신이 필요해요 지금 이 순간!"
어릴 때 아버지가 제게 그러셨어요. 남자는 딱 두 번 운다. 태어날 때 그리고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 그래서 그런가 저는 아버지 우시는 모습도 보지 못했어요. 우셔도 괜찮았을 것을! 그 영향 때문인지 저도 거의 평생 울지 않았어요, 아니 울지 않으려 애썼어요. 남에게는 더욱 보이지 않으려 기를 썼지요. 그런데 늙어감은 여기서도 그 표를 내고 있네요. 자꾸 슬퍼요, 자주 울고 싶은 충동을 느껴요. 그리고 실제로 울어요. 그마나 나의 그 눈물을 볼 사람이 없으니 다행인가요, 아니면 그래서 더욱 슬픈 일인가요?
'십자가 위의 예수를 바라보며 성모는 서서 비통하게 우시네/슬픔 가득한 성모 마리아, 당신의 그 마음 또한 수난의 칼에 깊이 찔리고 참혹하게 뚫렸네/당신의 아들 그렇게 삶을 마감하니 그 애통함이 한이 없네/아들의 수난을 그저 바라보는 어머니는 비통함 속에 홀로 서 계시네/어머니의 이 고통을 보고 누군들 함께 울지 않겠어요, 당신의 아들과 함께 그렇게 고난 겪으심을 보고 그 누가 통곡하지 않으리요/당신의 그 귀한 아들이 모욕의 채찍질을 묵묵히 감내하는 것을 어머니는 의연하게 지켜보시네, 십자가 위 아들이 흘린 피로 붉게 젖은 땅을 보시네/사랑의 샘인 성모 마리아여 제게도 당신의 그 슬픔 나누어 당신과 함께 울게 하소서, 나의 이 마음이 주 예수 사랑하는 불길로 활활 타오르게 하소서'
중세부터 내려오는 기독교의 시가에 여러 작곡가들이 곡을 붙였지요. 긴 가사 중 일부만 제가 옮겨 위에 소개했습니다. 저는 페르골레지 (G.B. Pergolesi)의 곡을 좋아합니다. 네, 로시니의 작품 또한 유명하지요. 페르골레지의 곡은 그야말로 담백한 소고기 뭇국 같은 느낌을 제게 줍니다. 어릴 때 어머니가 끓여주시던 그 시원한 (뜨겁지만 그래서 시원한) 국. 소프라노와 카운터 테너가 혼자 그리고 함께 부르는 이 노래. 절실한 어머니의 마음, 비통함, 고통과 슬픔, 그러나 의연함과 당당함 이런 것들이 그대로 느껴집니다. 여러분들도 언제 한 번 들어보세요. 가사를 음미하며 그렇게요.
'스타바트 마테르 (Stabat Mater)', 말 그대로 어머니가 서있네, 서서 우시네입니다. 어떤 성화에 보면 성모 마리아가 슬픔을 이기지 못해 십자가 아래 풀썩 주저앉아 눈물 흘리는 장면이 있는데 그건 화가가 너무 오버한 것이라 합니다. 그 큰 슬픔 (우리는 이것을 비탄, 그리프 grief라고 하지요, 그저 슬픈 서로우 sorrow를 크게 지나) 속에서도 어머니는 당신 아들의 그 모든 수난을 당당하게, 의연한 모습으로 지켜봅니다. 망연자실, 그런 자세는 아니지요. 이미 이런 일의 도래를 알고 계셨고, 이 모든 것이 당신 아들의 뜻에 의한 것이며 이 세상을 위한 것임을 알고 있는 분이니까요. 그럼에도 그 슬픔은 어찌 주체할 수가 없어 온 힘을 다해 참아내며 그리 끝까지 서서 지켜보고 있는 것이지요.
헤어짐을 슬퍼하는 학생 시절의 제 등을 떠밀며 그리 냉정하게 저를 떠나보내시던 어머니의 모습을 기억합니다. 그깟 수업 좀 빼먹으면 어떠냐고, 저 공부 잘한다고, 문제 없다고, 그러니 여기서 어머니와 좀 더 있겠다고. 그런 저의 그 철없음을, 등을 다독이시며 그러나 타협 없는 그 깐깐한 목소리로 제게 말하셨지요. "아니, 그래도 가야해 너는! 끝! (피어리어드!)"
뜬금없이 이 아침 이런 생각이 듭니다. 현세에서 내가 여자가 아니어서 아쉬운 것이 하나 있다면 그건 누군가의 어머니가 되는 기회를 갖지 못한다는 것! 저는 개인적으로 여자와 어머니는 전혀 다른 존재라는 생각을 늘 합니다. 어머니가 여성이기는 하지만 여성이 어머니는 아니라고. 어머니는 그저 꼿꼿이 오롯이 어머니라고!
혹여 여러분의 어머니가 우신다면, 자식이 우는 것 그리고 아내나 남편이 우는 것과 같은 급으로 취급하지는 말아주세요. 그건 전혀 다른 '사건'이랍니다. 다음 세상에서 혹시 그때는 제게도 우는 모습을 보이시는 어머니를 옆에서 보게 되면,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해 그분을 위로할 겁니다. 제가 있다고, 이제는 당신 곁에 이 아들이 있다고, 그러니 우실 필요 없다고 그리 말할 겁니다. 감히 신에게도 말할 겁니다, 어머니의 울음을 멈추게 할 비책을 내게 알려달라고!
저기 어머니가 우시네, 아무쪼록 비탄과 고뇌 속에 우시는 것이 아니기를 기원합니다. 아마도 기쁨에, 자랑스러움에, 지나간 세월을 이겨내고 지금 여기까지 온 당신의 그 자랑스러운 모습에 그래서 잠시 보이시는 기쁨의 눈물이기를! 아멘!
# 계관시인 - 국가나 왕에 의해 공식적으로 임명된 시인 또는 그 칭호. 영국 왕실에 직속된 특별한 명예를 가진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