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 멀리 가기 위해 제대로 쉬기, 전략과 여유. 김용호 '주막에서'
일주일에 두세 번 가는 이곳에서 제일 큰 마트. 갈 때는 룰루랄라 가벼운 손으로 가는데 돌아오는 길에는 이것저것 양손에 무겁게 들고 온다. 편도 25분 정도의 거리인데 어떤 때는 세 번, 또 어떤 때는 다섯 번 정도 중간중간 잠시 쉰다. 무거운 것 들지 않고 다니면 좋겠다, 수화물 중량 초과 걱정하지 않으면 좋겠다, 나의 작금의 여행에서는 늘 그런 바람이 있다. 그런데 장 보는 과정에서도 그렇다. 한국에서는 이리 무거운 것들 들고 걸을 일이 없었는데?
다음번 쉴 곳을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생각한다. 나름 이번에 걸어가야 할 목표거리가 있고 그 비슷한 지점에 가까워지면 그늘도 좀 있고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니지 않는, 조금은 넓고 여유있는 공간이어야 한다. 그 단순한 것이 어찌 보면 그리 단순하지만은 않다. 그렇다고 어려운 의사결정의 과정도 물론 아니다. 세상 일이 다 이와 같으면 참으로 좋겠다.
"이번에 내가 멈추는 지점이 다음번의 출발점이 된다", '클래식 바이블'이라는 책을 쓴 김성현기자가 그 책의 서문에서 한 말이다. 첫머리부터 대단히 인상적인 말이었다. 그 후 늘 나의 머릿속에 저장되어 있다. 오늘도 내게 이리 소환되었다.
우선 이번에 너무 조금 걷고 멈추면 다음번에 가야할 거리가 그만큼 많아진다는 뜻이 있다. 다음번 출발때까지는 그곳에 머물러 있어야 하니 그때까지 충분히 제대로 쉴 수 있는 적절한 공간이어야 한다는 말도 된다. 주변에 물도 있어야 하고 평평한 지대라서 천막도 칠 수 있어야 하고 야생동물의 습격도 대비해야 한다. 뜨거운 태양을 피할 수 있는 그늘도 있으면 좋겠다.
날씨의 변화가 어찌 될지 알 수 없으니 다음번 출발이 꼭 내일 아침이 되리라는 보장도 없다. 그러니 그 점도 고려해야 한다. 히말라야같은 세계의 최고봉들을 등반할 때는 결국 마지막 쉬는 지점, 최종 캠프가 등정 성공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단순히 안전의 문제뿐만이 아니다. 정상까지 너무 먼 거리에 자리를 잡으면 가야 할 길이 너무 멀다. 그렇다고 조금이라도 더 가까운 곳이 꼭 유리한 것도 아니라고 한다. 그만큼 정상 바로 아래에서의 위험 요인들이 많아지기 때문이란다.
이 경우에도 역시 등장하는 '최적 (옵티멀, optimal - 최선의/최적의)'이라는 단어. 하지만 그게 그리 쉬운 것은 아니라는 것 또한 우리는 이미 잘 안다. '전가의 보도' (대대로 집안에 전해지는 보검)처럼 툭하면 나타난다. 그래서 이 말의 일반적인 의미도 '어떠한 한 사실을 자주 들먹이며 모든 상황을 회피하는 것' 이런 뜻으로 우리는 사용한다. 원래의 의미인 '비장의 수단/마지막 최후의 수단'의 뜻이 아니라 '흔히, 습관적으로 들먹이는/걸핏하면 꺼내드는 논리나 상투적인 대책' 등의 변질된, 주로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조금 옆으로 샌 김에 하나 더 얘기를 한다면, 처음 '클래식 바이블'이라는 책을 접하고는 '아, 근본적인 혹은 101처럼 옛날부터 이미 인정받고 널리 통용되는 그런 바이블인가 보다' 그리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글쎄, 뭐 바이블에도 클래식이 있고 아닌 것이 있나 이리 생각했다. 또 다른 상상은 '바이블 같은 클래식의 고전' 그것이었다. 그런데 정작 펼쳐 들고 보니 그 책은 성경에 나오는 얘기를 토대로 유명 작곡가들이 작곡한 클래식 음악이었다. 대학원에서 마케팅을 전공하고 마케팅으로 먹고산 나로서는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책 제목이었다. 차라리 '클래식이 그려내는 성경' 혹은 '클래식 음악 속의 성경 이야기' 아니면 '대가들이 클래식으로 표현하고 있는 성경 속 에피소드' 뭐 이런 것이 더 낫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을 했다. 하긴 그분들도 다 생각이 있었겠지!
어쨌거나 그 한 권의 책이 내게 준 영향은 대단했다. 거의 200시간 이상을 그 책에 나오는 음악을 중심으로 클래식 음악을 들었으니! 지난 해 연말부터 올해 봄까지의 시간이었다. 200시간이면 결코 적지 않은 시간이다. 매일 하루도 빼지 않고 두 시간씩 듣는다고 해도 꼬박 100일 (세 달 넘게)을 들어야 하는 긴 시간이다. 내게는 실제로 4개월 정도 소요되었다. 바흐의 마태수난곡을 다섯 번 들었고 헨델의 메시아를 다섯 번 들었으며, 리하르트 바그너의 대작 오페라 '니벨룽의 반지' 전 4편 (한 번에 총 16시간 정도 소요)을 모두 네 번 들었다. 어떤 곡은 그 기간 동안 11번 들은 것도 있다. 최소 세 번 이상씩은 다 들었다. 오라토리오/오페라/관현악곡/현악 4중주곡/교향곡/피아노 소나타 등 서른 곡 정도의 대작들을 집중해서 여러 번씩 들을 기회가 되었다.
참으로 유익하고 의미 있고, 자랑스러운 대장정이었다. 내게는 그랬다. 그 '프로젝트' 이전과 이후의 나는 많이 달라졌다, 나의 음악을 듣는 귀도, 클래식을 참아내는 능력도, 끈기와 무모할 정도의 집중력도, 사람과 사물을 아니 세상을 보는 눈도. 나의 고마운 젊은 동무가 내게 이런 기회를 주었다. 늘 그에게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있다. 특정 분야의 책과 오디오 비디오를 집중적으로 수집하는 독특하고 귀한 취미를 가진, 참으로 선하고 의로운 사람이다. 그 얼굴에 그리고 그의 행동에 '나는 선한 사람이오' 하고 쓰여있는 사람이다. 귀한 사람이다!
먼 길을 돌아 다시 오늘의 주제로 왔다. 걱정 마시라.
먼 길 가는 우리, 중간중간 쉬어야 한다. 충분히 잘 쉬어야 한다. 그래야 완주한다. 그러려면 중간에 쉬는 지점을 잘 선정해야 한다. 무엇보다 나를 알아야 한다. 나의 평소의 체력, 지금 남아있는 에너지의 양, 나의 몸과 정신이 원하는 것. 그 다음에는 나를 둘러싼 환경과 상황 - 다음에 가야 하는 거리와 그 길의 경사도/난이도, 예보된 기상 조건, 먹을 것 남은 것, 물과 식량을 보충할 곳, 고려해야 할 사항들은 이처럼 많고도 많다.
하지만 아쉬운 일이 될지 아니면 그래서 그 먼 길을 꾸역꾸역 갈 수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우리네 삶에서 남은 거리가 얼마인지는 그 누구도 모른다. 그냥 간다, 모두들 그렇게 가니까. 가야만 하니까! 왜 가야만 하나? 그건 나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다 고려해야 한다. 꼼꼼하게 리스트를 만들고 (카오루 이시카와 다이어그램 혹은 생선뼈 다이어그램을 이용해서라도) 하나씩 체크해야 한다. 자칫 어느 하나가 빠지면, 운이 없으면 그 하나가 결정적인 실패의 요인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제 오늘의 시를 본다.
시인은 대뜸 사거리 길옆 주막에 들른다. 많은 사람들이 입을 대고 마셨던 이 빠진 낡은 사발에 그도 막걸리 한 잔을 마신다. 이전에 그 잔으로 마셨던 사람들의 그 따스한 정이 그대로 묻어오는 듯, 막걸리 맛이 달다. 저만치 보이는 송덕비, 하긴 그게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살아 인생이지! 세월의 무상함. 한 잔 막걸리 그리고 짠 왕소금 한 알. 짜디짠 그 소금보다 짜다는 인생을 안주 삼아 술 한 잔 하고는 이제 주막을 나선다. 다시 그 험한 현실 세계로 돌아가는 것이다. 해지는 저녁, 가야 할 길은 여전히 멀기만 하다. 그럼에도 가야지 어쩌겠나? 아마도 내 뒤에 올 그 누군가는 조금 전 내가 입을 대고 마셨던 그 이 빠진 잔에 입을 대고 또 한 잔의 막걸리를 마시겠지? 정확히 저녁 노을 지는 이 무렵에. 누구나, 이렇게 앞서거니 뒤서거니, 그리 계속되는 우리들의 고단한 삶의 여정.
시인은 다음번에도 이 비슷한 주막에서 막걸리 한 잔으로 목을 축일까? 그리 나쁘지 않은 중간 쉼터였다고 시인은 내게 말하고 있는 듯하다. 굳이 치밀한 계산도 전략도 없이, 그저 내 몸이 그리고 나의 마음이 기우는 곳으로 들어간 곳, 사거리 허름한 주막. 막걸리가 있고 안주로는 짜디짠 왕소금이 있는 그곳.
그거면 족하다는 인생길 나그네들, 그도 너도 그리고 나도! 오유지족, 나는 만족을 안다. 그것이 우리네 인생임을 나는 안다. 그러니 그것으로, 그렇게 만족할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