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추억의 소환, 다짐과 의지, 여전한 열정. 퀸 '사랑할 그 누군가'
동전에는 반드시 양면이 있다.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큰 오류다, 동전 수집가들에게는 뜻밖의 기회가 될 것이다. 이 세상 모든 일에도 그렇게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이 함께 있다. 그 비율은 상황에 따라 그리고 보기에 따라 조금씩 다를 것이다. 혹시 긍정적인 부분만 있는 어떤 일이 있다면 어쩌면 그 자체로 이미 부정적인 것일지도 모른다. 이 세상의 일반적인 상식 법칙에 크게 어긋나기 때문이다. 그 위험과 부정적인 측면을 내가 보지 못하는 것이거나 아니면 아직은 오지 않은 것일 가능성이 많다. 그게 상식이다.
오해는 마시기를. 우리네 삶에 힘든 시절, 나쁜 일이 꼭 있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 결코 아님을 알아주시기를. 살아보니 아쉽게도 그 둘은 함께 혹은 번갈아가며 오더라, 섞여있더라 그런 말씀을 드리는 것뿐이니. 그러니 뭐 어쩌겠나, 그것이 피할 수 없는 현실이라면 우리도 그것에 적응하는 방법을 배우고 익혀야지?
그래도 동전이 서로 다른 문양의 두 면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참으로 힘들 때, 유난히 기분이 꿀꿀할 때는 살짝 밝은 곳으로, 조금은 덜 추운 곳으로 가서 잠시 시간을 벌어야지? 당을 보충해 줄 사탕이나 초콜릿이라도 입에 넣어야지? 소나기는 피해가는 것이 현명하다.
이 나라 저 나라를 다니면서도 늘 빼먹지 않고 나와 함께 하는 물건들이 몇 가지 있다. 오스트리아의 크리스탈 장인들이 입으로 불어서 만든 슈피겔라우 두 종류의 레드 와인 잔. 꼭 가지고 다닌다, 하나는 버건디 잔이고 다른 하나는 보르도 잔이다. 또 하나는 내가 일상 속에서 물 마실 때 쓰는 웨지우드 본 차이나 컵이다. 윗단에 노란색 간결한 줄무늬가 들어간 '미스트랄' (Mistral, 남프랑스에서 지중해 쪽으로 부는 차고 건조한 바람. 이로 인해 프로방스 지방 대부분은 지중해성 기후임에도 불구하고 한겨울에 매우 맑은 날씨를 자주 보인다. 알퐁스 도데의 단편소설의 단골 소재다.)이라는 목이 짧은 컵이다. 이제는 나의 귀하고 고마운 동무들이다.
여전히 내가 그 옛날의 아름다운 시절과 따뜻한 곳에 있음을 느끼게 해준다. 급격한 환경과 상황의 변화에서도 나를 지켜주는 중간자의 역할도 한다.
영국의 싱어송라이터 아델을 좋아한다. 그녀의 아름다운 곡과 의미 깊은 가사가 참으로 좋다. 진심이 보이고 마음이 들리는 그녀의 목소리와 창법을 좋아한다. 어떻게 한 노래가 유튜브 23억회의 조회수가 나올 수 있나? 지구의 인구가 얼만데? 그러니 나와 비슷한 생각과 취향을 가진 사람들이 이 세상에 그만큼 많다는 것이다. 그녀의 유명한 곡 뮤직 비디오 중에 런던의 템즈강을 걸으며 그녀가 부르는 노래가 있다. 간혹 런던에 가서 템즈강 옆에 있는 '테이트 브리튼' 갤러리를 갈 때면 그녀의 노래가 생각난다.
지난해 연말부터 올봄의 끝 무렵까지 거의 4개월 동안 클래식 음악의 세계에 모처럼 깊게 빠져들어간 적이 있다. 그 기간 중 거의 200시간 이상을 들었으니 적은 것은 아니다. 그때 다시 발견한 음악가가 베토벤이었다 (이렇게 쓰면서도 늘 불편한 것이, 사실은 '베토픈' 이라 부르는 것이 조금이라도 그 위대한 음악가를 존중하는 것이 된다는 나의 인식 때문이다. 루트비히 판 베토픈 (Ludwig van Beethoven)은 분명 독일 사람이고 독일 본에서 태어났고 독일 이름을 가지고 있고, 따라서 최대한 제대로 발음해 주는 것이 맞다. 홍길동과 홍길땅은 정말 다른 이름이다.).
아무튼, 그의 피아노 소나타를 즐겨 들었다. 교향곡들도 많이, 여러 차례 들었다. 그래도 결국 개인적 취향은 강하게 남는 것이라, 나는 피아노 소나타 32번/교향곡 9번/첼로 소나타 3번/현악 4중주곡 16번을 특히 좋아한다. 대부분 그의 생애 마지막 작품들이라는 묘한 공통점도 있다.
결과적으로 그의 마지막 피아노 소나타가 된 32번은 그가 평생 사랑한 여인 요제피나가 죽은 후 작곡된 것이다. 그녀의 죽음에 대한 조곡인 셈이다. 그의 다른 피아노 소나타들과는 많이 다른 느낌을 준다. 2악장으로 되어 있다. 기존의 소나타 형식의 제약에서 과감하게, 실험적으로 벗어나는 시도가 강하게 드러난다. 모든 것을 수용하고 그 속에서 마음의 평화와 영혼의 평안을 찾은 듯한 그의 말년의 모습이 보인다. 2악장의 다섯 개의 변주는 그가 누구인가를 말해준다.
26세 때 작곡한 헨델의 '유다스 마카베우스의 주제에 의한 12개의 변주 - 첼로와 피아노'와는 또 그 격을 달리 한다. 통통 튀는 그 젊음의 자신감과 미래에 대한 무한한 가능성의 기대, 나는 그 옛날 이 변주곡을 처음 듣고 이리 생각했다. "불과 26세의 베토벤의 음악가로서의 미래를 보여주는 곡, 그리고 피아노가 과연 어떤 악기인가를 우리에게 쉽게 알게 해주는 그런 곡" 피아노 소나타 32번은 그때로부터 거의 30년이 지난 후에 작곡된 것이다. 어찌 큰 차이가 없을 수 있겠는가?
자 그러면 오늘 글의 본론으로 들어간다. 왜 나는 요즘, 근자에 퀸의 음악을 더욱 열심히, 온 마음을 다해 듣고 있는걸까?
하나, 젊어서부터 워낙 그룹 퀸을 좋아했다. 그들의 면면이 좋고 그들의 음악이 좋다. 메인 기타의 브라이언 메이, 대단한 사람이다. 기타 실력은 말할 것도 없고, 임페리얼 칼리지 런던에서 천체물리학을 공부하던 학생이었다. 결국 박사 학위를 땄고 후에는 영국 어느 대학의 총장까지 했다. 지금은 78세 나이의 브라이언 해럴드 메이 경 (Sir)이다. 치대에서 공부한 멤버도 있다. 프레디 머큐리의 뛰어난 작곡 실력, 그의 발군의 가창력 그리고 그의 열정적인 무대 매너. 나는 그의 그 괴상한 무대 의상까지 마음에 든다. 골수다.
둘, 그들의 전성기 때의 무대 공연 실황을 보며 그들의 넘치는 에너지를 느끼고 내 몸에 받아들인다. 이를테면 열정과 기의 수혈이고 충전이다. 그래서 라이브 공연 유튜브를 즐겨 본다. 정 음악 자체가 조금 아쉽다 느끼면 그때 해당 곡의 베스트 음반을 듣는다. 나이 들어서는 삼국지를 읽지 말라고 했지만 나는 이리 말한다 - 나이가 들면 주기적으로 그룹 퀸의 열정 가득한 야외 공연 실황 중계 비디오를 보라고. 그들과 열광하는 수많은 관객들이 내뿜는 그 열기와 에너지를 느끼라고, 그리고 최대한 나의 것으로 받아들여 보라고.
셋, 그렇게 나의 젊었던 시절을 소환한다. 내게도 저런 때가 있었음을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나는 다시 힘을 얻는다. 참으로 멋지고 잘 생겼던 모습의 내 젊음의 시절이 있었다. 40대 또한 내가 봐도 멋졌다. 충분히 나이 든 지금의 나를 흐뭇하게 미소 짓게 하는 달콤함이다.
도스토예프스키가 그랬다, 사람은 어린 시절, 젊은 시절의 아름다운 추억 몇 개만 있어도 충분히 건강한 삶을 이어갈 수 있다고. 몇 가지 이유로 아버지와의 관계가 그리 좋지만은 않았던 그는, 그래서 자식에 대한 아버지의 역할과 책임을 많이 강조한다. 그의 작품 여기저기서 무책임하고 어린 자식에게 사랑 없는 아버지를 강하게 비난한다. 공감한다, 아버지는 기쁨의 자리이고 영광이 자리이지만 동시에 무거운 책무와 힘듦 가득한 자리이기도 하다. 웬만하면 누구나 아버지가 될 수는 있지만 좋은 아버지, 자식이 존경하는 아버지가 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어이쿠, 잠시 옆으로 샜다.
넷, 나에 대한 다짐이다. 발버둥이라 해도 좋다. 힘들고 허망한, 하지만 결국 언젠가 뒤에 올 나이 들어감에 대한 대금은 이미 진작에 다 받았다. 예를 들면 후일 언젠가부터는 결국 나 또한 나이 들어간다는 사실에 대한 인식과 두려움이, 나의 젊은 시절을 소중하고 희소성 있는 시간으로 아끼며 쓰게 만들었다. 그것이 지금의 나이 들어감에 대해 내가 그때 미리 받은 선지급금이었다. 그러니 이제는 새삼 받을 돈은 없고 이미 그때 외상으로 잡아먹은 소에 대한 값을 치르는 시간이다.
자연의 법칙이기도 하지만 이미 예전에 내가 받아쓴 돈에 대한 갚음의 행위를 지금 나는 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 자위한다. 적어도 책임감 없는 사람, 돈 떼어먹는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으니까. 적어도 해야 할 것은 하자는 그런 결의다. 이렇게 하면서까지 나는 내게 남겨진 나의 책무를 다하고 있어요. 보이지요? 그러니 염려 마세요, 실망하지 않을겁니다! 옆에서 지켜보는 사람도 든든할 것이다. '그 자세, 좋아!'
다섯, 일상 속의 작은 달콤함을 위한 다각화 전략의 실행이다. 이 나이에 큰 것 한 방은 이제는 힘들다. 기대할 수 없다. 나도 안다, 그래서 잔챙이 여럿을 모아서라도 꽤나 괜찮은 사이즈의 그 무엇을 만들려고 하는 것이다. 그런 눈물 나는 노력의 일환이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했으니, 슬쩍 마음 한구석에 은근히 그런 기대감을 가지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나도 적극적으로 무언가를 하면서 신과 섭리에게 좀 도와달라고 하는 것이 그래도 더 잘 먹히지 않겠나?
여섯, 나 자신에 대한 긍지 혹은 자부심을 증명하는 한 방식이다. '이거 왜 이래? 나 아직은 쌩쌩하다고, 살아있어!' 남에게 보여주는 것이라도 좋다. 하지만 나의 주된 목적은 또 다른 내게 보여주는 것이다. 그를 안심하게 하고, 그렇게 그도 힘이 나서 나를 돕게 하기 위함이다. '둘은 하나보다는 여러 면에서 낫다'.
누군가 그랬다. 나이 들어 클래식 음악의 세계에 좀 더 깊게 발을 디디고 그래서 클래식과 동무가 될 수 있다면, 그런 기회를 갖는다면 그 사람의 노년은 그리 외롭지만은 않을 것이라고. 삶의 의미 또 하나를 손에 쥐게 되는 것이라고. 나의 경우가 그렇다.
그것이 클래식이든 팝이든, 베토벤의 음악세계든 비지스의 '퍼스트 오브 메이 (First of May)'이든, 로드 스튜어트의 '당신은 내리는 비를 본 적이 있나요 (Have You Ever Seen The Rain)'든 그저 다 좋다. 나의 메말라가는 정신과 마음, 영혼에 좋은 영양소가 된다. 엘라 핏제랄드의 그윽하게 달콤한 목소리로 '그저 여러 감상적인 이유에서 (나는 당신을 사랑해요) <(I Love You) For Sentimental Reasons>'를 들어도 금새 눈에 보이는 치유 혹은 위로와 위안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많은 국내외 시인들의 아름다운 시, 우리의 눈과 마음을 파고드는 여러 화가들의 그림들, 그리고 다양한 장르의 음악 (그것이 정미조님의 '눈사람'이든, 조용필의 '꿈'이든, 마리아 칼라스의 '카스타 디바'든, 르네 플레밍의 '달에게 보내는 노래'든, 엔리코 카르소의 가슴 저린 노래 '흠/결점 (Pecche - defects, flaws)'이든)을 들으면,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 만큼이나 큰 기쁨과 즐거움을 생활 속에 가져다 줄 것이다.
오늘은 퀸의 노래 중 '사랑할 그 누군가 (Somebody To Love)'의 가사를 본다. 내가 사랑할 그 누군가일까 나를 사랑해 줄 누군가일까? 나는 '내가 사랑할'은 그 다음이면 좋겠다. 우선은 '나를 사랑해 줄' 그 누군가가 나를 발견하면 좋겠다. 보석을 발견하듯 나를 찾아내고 그렇게 그녀의 손에, 마음에, 영혼 속에 나를 넣으면 좋겠다. '불감청 고소원', 신이 섭리가 스피노자의 대자연이 참으로 은혜로운 마음을 먹고 도우신다면 혹 모를까?
사랑할 그 누군가 (Somebody To Love)
- 퀸
누구든 저를 좀 알아봐 주세요, 저라는 존재를 발견해 주세요,
제가 사랑할 사람 그 누군가 제발
오, 매일 아침 저는 잠을 깹니다 하지만 그 순간에도 조금씩 죽어가고 있지요
내 두 발로 서있기가 힘들어요
'거울 속의 너를 한번 보렴, 거울에 비친 너의 모습을 봐, 왈칵 울음이 나올걸?'
신이여, 왜 제게 이러시는 겁니까? (정말 왜요, 네?)
평생 당신을 믿었어요, 당신의 존재와 당신의 그 전능함을요
그런데 저는 지금 그 어떤 위안도 구원도 받지 못하고 있네요, 주여
누군가 (그 누군가)
오, 누구든 (그 누구든)
당신의 두 눈이 저를 발견할 수 있을까요
사랑할 그 누군가?
네?
제 삶의 모든 순간, 매일매일 저는 열심히 일합니다 (물론 그도 열심히 일해요)
제 뼈가 쑤실 때까지 그렇게 일해요
일이 끝나면 (그도 하루의 끝에는) 저는 집으로 가지요 (그도 그렇게 하지요)
나 혼자의 책임과 노력으로 정말 힘들게 벌어들이는 돈을 꼭 쥐고 (그도 그렇게 해요 저와 똑같이)
저는 무릎을 꿇고
기도를 시작하지요 (물론 나의 신을 찬양하고 찬미하지요)
마침내 저의 이 두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리는 그 순간까지
주여, 누군가를, 그 누군가를 (제발) 제게
누구든 저를 찾아낼까요 사랑할 그 누군가?
그는, 저는 매일 열심히 일해요
저는 노력하지요, 노력합니다, 정말 애를 쓰고 있다고요
하지만 모든 사람이 나를 제지하고 억누르고 그저 비난하고 싶어 해요
그들은 그래요 제가 지금 미쳐가고 있다고요
제 머릿속은 물이 가득차 있다고 그렇게 말하지요
그러다 보니 저는 지금은 아주 평범한 감각도 없어요 (그도 이미 그렇구요)
내 주변에는 나를 믿어줄, 나의 존재와 가치를 믿어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요
오, 그래요, 정말요, 그렇다구요
느낌도 감지력도 없어요, 물론 리듬감도 없지요
그저 내 심장의 박동을 잃어만 가고 있어요 (당신 또한 점점 그 힘차게 뛰던 심장의 고동을
잃어만 가고 있군요, 계속해서 그렇게 잃고 또 잃고)
하지만 사실 저는 아무런 문제가 없어요, 저는 정상이라니까요 (그도 그래요, 지극히 괜찮아요
나무랄 데는 없어요)
이제부터라도 저는 그 어떤 패배나 좌절을 그냥 참아내지 않을 겁니다 (그럼요, 더는 안 되지요)
이 감옥에서 벗어날 겁니다
어느 날 언젠가는 그렇게 나는 자유로워질 겁니다, 나의 신이여!
그가 누구든, 그가 어느 곳에 있든, 정말 그 누가 되었든, 저를 찾아주세요 저를 알아봐 주세요
사랑할 그 눈군가
사랑, 그 간절한 사랑, 그놈의 사랑, 나의 사랑
저를 발견하세요, 저를 찾아내주세요, 저를 손에 넣으세요, 네
<우리말 번역 - 가을에 내리는 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