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의 신비, 상상의 아름다움! 전봉건 '피아노'
피아노
- 전봉건
피아노에 앉은
여자의 두 손에서는 끊임없이
열 마리씩
스무 마리씩
신선한 물고기가
튀는 빛의 꼬리를 물고
쏟아진다.
나는 바다로 가서
가장 신나게 시퍼런
파도의 칼날 하나를
집어 들었다.
여러분이 이 시를 읽고 시인에게 이런 질문을 한다면, 시인은 참으로 흐뭇한 표정으로 따뜻하게 당신의 손을 잡아줄 겁니다. 하나, 시인은 과연 어떤 피아노 음악을 들었을까요? 드뷔시의 달빛? 쇼팽의 녹턴 19번이나 20번? 멘델스존의 무언가 중 38-6이나 19-1 혹은 첼로와 피아노를 위한 특별한 무언가 작품번호 109번? 아니면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21번, 그 중에서도 1악장? 둘, 그 피아노 연주를 듣고난 후 왜 서둘러 바다로 갔을까요? 조용한 산이나 절, 또는 호수가 아니라? 셋, 시퍼런 파도의 칼날 하나를 집어들었다, 왜요? 뭔가를 자르고 썰고 하려구요? 아니면 그저 읽는 우리들을 헛갈리게 하려는 일종의 귀여운 시적 페인트 모우션일까요? 마지막의 이 질문을 하면 시인이 조금은 당황하실걸요?
저는 피아니스트 예프게니 키신을 좋아합니다. 그의 연주는 당연 좋고, 그의 그 순수한 얼굴의 표정과 연주 때의 행동들이 좋고, 듣는 제가 미안할 만큼 후한 그의 앙코르 곡 연주가 좋습니다. 올해 벌써 54세의 나이, 허연 머리카락에도 불구하고 그의 그 어린아이 같은 얼굴은 여전히 그대로입니다. 미켈란젤로가 그린, 성경 속의 야곱의 초상화를 보는 것 같습니다. 곱슬곱슬 풍성하게 부풀어 있는 머리 스타일, 똘망똘망 꾀돌이 같은 호기심 가득한 그 얼굴, 모든 것을 관통하는 야곱과 키신 그 두 사람의 순수하고도 순진한 얼굴 표정.
전봉건 시인의 이 짧은 시는 거의 일주일 이상 저를 잡고 있었습니다. 저로서는 시의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그 어느 것도 쉽게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당황스러움, 묘한 오기, 긍정적 호기심, 이런 것들이 뒤따랐지요. 그래서 우선은 그야말로 제 최대치의 상상력을 동원하고, 그렇게 잠시 시인의 사유 속으로 직접 들어가 보기로 했습니다. 조금씩 시인의 마음이 제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피아노에서 튀어나오는 펄펄 뛰는 물고기들을 보는 것 처럼 저는 갑자기 신이 났습니다. 시인 전봉건님과의 만남은 이렇게 시작되었지요.
이 시는 시인의 나이 52세 때 쓰신 것이니 아마도 음악을 듣는 귀가 대단한 경지에 있지 않았을까 그리 생각합니다. 그러니 피아노 연주 후의 깊은 감동 속에 그 선율이 이번에는 살아 움직이는 물고기들로 다시 들리고 다시 보였겠지요? 물고기의 꼬리에 꼬리를 물고, 혹은 화사하게 쏟아지는 햇살의 꼬리를 타고 이어지는 아름다운 선율과 공감. 어쩌면 시인이 이 여성의 피아노 연주를 들은 곳은, 늦은 아침 혹은 오후 한낮의 태양 빛이 신나게 자신의 모습을 내보이는 그때, 스위스의 올스베르크 수도원 교회에서 열리는 솔스베르크 페스티벌에서였을까요? 아예 야외 무대였을까요? 아니면 저녁 시간 우리의 예술의 전당이나 해외의 유명 음악당 안에서였을까요? 하긴 그건 뭐 그리 중요한 것은 아니지요.
감동의 여운이 지속되는 가운데 시인은 서둘러 바다로 갑니다. 지금의 그 감동을 좀더 지속시키려는 마음에서 그리고 그 감동과 동무가 될 수 있는 그런 존재와 상황을 찾아서. 시퍼런 파도 일렁이는 바다가 적소였겠지요? 시인이 들었던 그 피아노의 선율은 이제는 눈에 정말로 보이는 푸른 바다, 시퍼런 파도가 되어 다른 방향에서 다가옵니다. 물론 마음을 뻥 뚫리게 하는 파도 소리도 함께요. 그렇게 시간이 조금 더 흐른 뒤 시인은 마침내 그 중에서 제일 마음에 드는, 제일 신나게 그리고 활기 차게 솟구쳐 오르는 파도의 끝 하나를 마음에 담습니다. 비로소 그 많은 물고기들을 다시 그들의 집 바다로 돌려보내면서, 자신에게 준 그 감동의 순간들을 감사하면서,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아쉬운 마음에 그 모든 것들을 담고 있는 날이 시퍼렇게 선 푸른 파도의 아름다운 끝 한 자락을 손에 들고 가는 것이지요.
음악은 그것이 그 어떤 장르의 것이든 모두 아름답습니다. 누군가가 그랬지요, 특히 나이 들어서 좋은 음악과 동무할 수 있는 그런 의지와 열정과 기회를 손에 쥔다면, 그 사람의 노년은 훨씬 덜 외로운 시간이 될 것이라고. 얼마 전 마음 세차게 먹고 리하르트 바그너의 대작 오페라 '니벨룽의 반지' 전 4부 총 16시간 짜리를 거의 한 달에 걸쳐 모두 네 번씩 들은 때가 있습니다. 우선 저 자신의 끈기와 열정이 대견스럽게 보였고, 무엇보다 일상 속에서 자신감이 더 많이 생겼지요. 소위 괄목상대, 그 이전과 그 이후의 제가 저를 보는 눈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굳이 돈으로 따져도 수백만 원은 족히 되는 대형 프로젝트였습니다. 만일 제가 독일 바이로이트 축제극장 (Bayreuth Festspielhaus)에 갔다면 하루 건너 한 편씩의 공연이 있었을 것이니 적어도 8일은 소요되었을 것이지요. 그런데 저는 제가 있는 집 안에서 그것도 제일 좋은 자리에 앉아, 보고 싶고 듣고 싶을 때 제 전용 맞춤식의 관람을 했으니 R석도 이런 R석이 없겠지요? 더구나 다시 보고 돌려보고 쉬었다가 보고, 최고였지요! 유튜브에 감사를 표합니다, 진심으로!
음악과 시, 그림은 사실은 함께 갑니다. 서로 연결되어 있기도 하구요. 시를 음악으로 표현하는 작업이 가장 일반적이고, 그것이 표제음악을 시작으로 오페라, 오라토리오 이렇게 이어지는 것 아닌가요?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마지막 작품 중에 '4개의 마지막 노래' (Four Last Songs)라는 것이 있는데, 헤르만 헤세의 시 세 편과 요제프 폰 아이헨도르프의 시 한 편을 가사로 해서 작곡한 참으로 웅장한 성악곡입니다. 저는 체코의 소프라노 루치아 포프가 부른 버전을 제일 좋아합니다. 사람의 목소리와 웅장한 오케스트라의 그 화려한 선율이, 서로 주거니 받거니 마치 콘체르타타 처럼 (두 개 이상의 악기가 서로 대립적으로, 그러나 아주 공평한 비중을 가지고 연주하는 것, 연주에 있어서의 윈-윈이라 할까요?) 그렇게 이어집니다. 여성 소프라노 루치아 포프는 자신의 윈드 서핑에서 솟구쳐 오르는 시퍼런 파도의 끝을 아슬아슬하게 타고 오르고 또 내리고, 그렇게 멋진 소리를 들려줍니다. 여러분들도 기회 될 때 꼭 한번, 아니 가급적 여러 번 들어보세요. 아마 4곡 합해서 총 25분 정도 소요될 겁니다. 아주 좋은 공연, 아름다운 연주입니다. 한편 신화와 설화 속 얘기들을, 특히 성서 속의 이야기들을 토대로 그려진 명화들 또한 많지요? 우리가 오페라를 좋아하는 것 처럼, 그렇게 그림으로 읽고 듣는 이야기 혹은 스토리는 또다른 맛과 감동을 주지요. 거장들의 눈을 통해, 그들의 영감을 통해 그림으로 변화된 스토리, 멋지지 않습니까?
저는 영원 혹은 불멸이라는 개념에 대해 그리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누군가가 제게 '그럼에도 예술은 영원하다'라고 말한다면 충분히 공감하고 얼른 수긍할 것 같습니다. 지금 제가 다루고 있는 '시와 함께 하는 에세이' 또한 그렇습니다! 시와 음악, 그림 그리고 누군가의 잘 정리된 글은 우리를 기쁘게 합니다!
# 솔스베르크 페스티벌 (Solsberg Festival) - 스위스 올스베르크 (Olsberg)에 있는 올스베르크 수도원 교회에서 매년 열리는 실내악 중심의 클래식 음악 페스티벌. 2006년 유명한 첼리스트 솔 가베타 (Sol Gabeta)가 자신의 이름을 따서 만들었다. 무대의 중심인 교회 내부가 참으로 멋지고 아름답다. 피아니스트 조성진과 솔 가베타가 그곳에서 공연한 베토벤의 첼로 소나타 3번이 특히 듣기 좋았다.
# 바이로이트 축제극장 (Bayreuth Festspielhaus) - 리하르트 바그너가 자신의 대작 오페라 '니벨룽의 반지' 공연을 위해 직접 그 기본적 구조를 구상하고 건축의 거의 모든 단계를 감독하는 열정을 통해 건축된 오페라 공연 전용 극장. 지금으로부터 149년 전인 1876년 처음 공연이 시작되었다. 초기 상당 기간 바그너의 '니벨룽의 반지'는 오직 이 축제극장에서만 공연될 수 있었다. 오늘날에도 많은 바그너 숭배자 ('바그너라이트' 혹은 '바그네어리언')와 관광객들이 이 극장을 찾는 이유이기도 하다. 매년 7월 말부터 8월 말까지 한 달간 '바이로이트 축제'가 이곳에서 열린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