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둘의 가치, 믿음과 귀의, 희망 그리고 상생. 김현승 '가을의 기도'
바둑판에서 '아니 이 사람은 뭘 믿고 이런 수를 둘까', 해설자들이 자주 하는 코멘트입니다. 그런데 바둑은 그야말로 그 판 위에 모든 것이 다 드러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오래, 그리고 많은 것을 감출 수는 없지요. 포카 게임과는 아주 많이 다릅니다. 거기서는 상대방이 쥔 패를 알 수 있는 방법이 거의 없으니까요.
사람의 마음 속은 더욱 알기가 힘들어서 도대체 지금 이 사람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인지, 뭘 마음에 머릿속에 쥐고 있는 것인지 알 수가 없지요. 그래서 사람과의 관계가 그리 복잡하고 힘들고, 때로는 많은 고통을 수반하기도 하지요, 어느 일방에게 혹은 쌍방에게.
분명 뭔가 단단히 믿는 구석이 있으니 저런 행동을 할 것인데? 그게 뭘까? 그런데 있기는 있는 걸까 정말로? 에이, 블러핑 (bluff, 허세를 부리다/끗수가 높은 체하며 상대를 속이다) 아니야?
당신은 지금 무엇을 믿고 있나요? 어떤 것에 의지하고 있나요? 당신의 삶에서 당신이 믿고 있는 구석은 무엇인가요? 있나요? 꼭 있었으면 좋겠어요, 여러분 모두!
김현승 시인의 시를 읽다가 문득 이런 의문이 들었지요. 그래서 서둘러 이 글을 씁니다. 제가 여전히 성질이 급해요. 또 하나, 저는 사실 그 순간의 느낌 혹은 밀려오는 감정 속에 글을 쓰는 타입입니다. 당연 장단점이 있지요. 잠시 시간이 흐르면 조금 전의 그 감흥과 열정이 그냥 사라져버려요. '둔필승총' (일일이 적어두고 그러는 것이 둔하고 어리석은 듯 보여도 결국에는 총명함을 이긴다), 어릴 때 아버지가 늘 내게 하신 말씀이지요.
종교의 세계에서의 신이 가장 일반적인 대답이 되겠지요? 그것이 어떤 형태의 종교이든 우리가 절대적 존재인 신에게 귀의하고 그렇게 늘 의존하고, 그 과정에서 우리는 다시 살아갈 힘을 얻고. 종교의 참된 가치와 의미이지요. 불교에서는 물론 신의 존재를 말하고 있지는 않지만 역시 마찬가지일 겁니다. 그것이 석가모니불이든 다른 부처이든, 아니면 부처 혹은 보살을 향하고 있는 자기 자신의 깨달음의 여정이든.
철학자 스피노자의 자연 또는 그가 평생 추구한 '일상 속 철학하는 행위를 통한 구원의 갈망'도 저는 결국은 같은 맥락에 있다고 봅니다.
저는 '귀의'라는 말을 좋아합니다. 불교에서 주로 쓰는 용어지만 뭐 꼭 특정 종교를 염두에 둘 필요는 없을 것 같아요. '나의 몸과 마음을 의탁하고 의지한다.' 그냥 일반 명사로 쓰일 때도 '돌아와 몸을 의지함' 이런 뜻입니다. 돌아간다는 것, 분명 믿는 구석이 있겠지요? 돌아갈 곳이 있는 자는 행복하나니, 그저 제 말입니다. 네, 저는 돌아갈 곳이 있는 사람들을 부러워합니다. 몸을 의지한다는 것, 저는 여기서 아름다움을 봅니다. 당연 마음을 위한 의지처가 동시에 될 것이고 그렇게 몸과 마음은 편안한 휴식처, 안식의 공간을 찾은 것이겠지요. 마음의 평화, 영혼의 평온...
어릴 때 아버지 어머니가 제게 늘 그러셨지요. 가까운 사이일수록 절대로 정치와 종교 얘기는 깊게 하지 말라고. 자라면서 그 말의 의미와 필요성을 여러 차례 실감했습니다. 다행히 두 분이 제게 주신 그런 경구 덕에 살면서 종교적 신념이나 정치적 가치관의 차이로 인한 별다른 문제는 겪지 않았습니다. 고마운 부모님!
그것이 무엇이든 사람은, 참으로 미약한 존재인 우리 인간은 믿는 구석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신이어도 좋고 자연이어도 좋고, 여러분 자신이어도 좋습니다. 내가 사랑하고 나를 사랑하는 그 누군가이면 또 어떤가요? '둘은 하나보다는 낫다 (Two heads are better than one)'는 디즈니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대사가 기억납니다.
힘들고 외로울 때 그저 말없이 기댈 수 있는 그런 존재가 있으면 좋겠어요. 꼭 여성일 필요는 없어요. '지금 내게로 와서 나를 안아주세요!' 이런 마음 간절한 때가 많아요. 그때는 고독, 외로움, 서러움, 두려움, 아쉬움이 그냥 가득하지요.
요즘은 브런치가 제게 그런 역할을 해줍니다. 고마운 일이지요. 전혀 기대하거나 예상하지 못했던 그런 존재. 새로운 묵상과 사유를 가능하게 하는 아름다운 글, 따뜻한 사람들이 그곳이 있네요?
그러나 결국에는 늘 나를 믿어주고 내게 힘을 주는 또 다른 나의 존재. 세상이 변하고 사람이 바뀌고 그들과의 관계에 그 어떤 변화가 오더라도 단 하나 변함이 없는 존재 - 나를 위한 나.
지난 세월 나를 있게 한 것이 바로 이 또 다른 나였지요. 그가 없었다면 지금의 나는 존재할 수 없을 겁니다. 이리 온전한 모습으로, 여전히 선하고 의로운 마음을 지닌 개체로 살아내지 못했을 겁니다. 그래서 이런 나에게 감사합니다, 늘.
이런 따스하고 단단하고, 흔들리지 않는 나를 존재하게 한 어머니와 아버지에게 감사합니다. 늘 나를 응원하는 사랑하는 나의 아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갖습니다. 그들이 있어 제가 있음을 압니다. 고마운 일이지요.
이제 시를 봅니다.
기도하게 하소서/사랑하게 하소서/홀로 있게 하소서. 왜 굳이 가을이었을까요? 풍성한 결실, 화려한 단풍, 어느새 우수수 떨어지는 낙엽, 비 한 번 내리면 그때마다 점점 쌀쌀해지는 날씨, 무더웠던 지난 여름과의 극명한 대비, 조만간 찾아올 겨울의 매서운 추위, 먹고 살 걱정들...
그래서 가을이었을까요? 문득 절대자에 대한 기도가 생각난 것일까요? 나만으로는 여전히 힘든 작금의 삶, 나 아닌 그 누군가에게 기댈 수 있다면? 그 아늑함, 그 따스함, 그 든든함...
고독과 외로움이 더욱 깊어지는 시간? 우리 몸의 생체 시계? 아니면 벌써 한해의 끝이 바로 저기 보이는, 그렇게 빠르게만 지나가는 세월과 계절의 시계? 화려함과 쓸쓸함이 누가 더 잘났나 뽐내기라도 하듯 서로 고개를 내미는 혼돈의 시간들?
결국은 나, 나 혼자라는 인식? 그래서 이리 홀로 있게 하시는 것이라는 깨달음 혹은 자조? 여우의 '신 포도'?
낙엽과 겸허/아름다운 열매 그리고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비옥한 시간들/내 영혼, 무섭게 굽이치는 바다와 향기 가득 백합의 골짜기/잎 떨어진 마른 나뭇가지 위의 까마귀...
적어도 하나쯤은 당신에게 믿는 구석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저요? 네, 저는 단단히 믿는 구석이 있습니다, 고마운 일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