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와 대문호 괴테의 인연

- 뜨거운 그 무엇, 기다림과 간구. 황지우 '너를 기다리는 동안'

by 가을에 내리는 눈

바흐의 유명한 오라토리오 '마태 수난곡' (St. Matthew Passion), 2시간 45분짜리 대작이다. '마태오가 전하는 우리의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겪으신 수난', 라틴어 원제목이다. 어딘가에서는 매튜의 열정이라고 번역한 경우가 있단다. 그저 웃자고 하는 소리일 것이다.


지난해 여름 거의 한 달에 걸쳐 모두 다섯 번 들었다. 헨델의 '메시아'와 함께. 그야말로 늘그막의 열정이었다. 사실은 열정은 젊은이에게 좀 더 어울리는 것이다. 롯데그룹의 창업주 그분도 그랬나 보다. 하긴 열정이 있었으니 그런 큰 일을 해낸 것이리라. 그 양반이 젊었을 때 괴테의 '젊은 베르터의 고뇌' (Die Leiden des jungen Werthers)를 읽고 큰 감동을 받았단다. 그래서 자신의 기업의 이름을 거기 나오는 여주인공의 이름 '샤를로테' (Charlotte, 불어로는 샤를로트/영어권에서는 샬럿)를 따서 롯데라고 했다고 한다. 실제로 소설 속에서도 샤를로테를 그냥 로테라는 애칭으로 더 많이 부른다.


이 백화점 상품권에도 샤를로테 관련 도안이 들어가 있다. 백화점 명동 본점에는 샤를로테 동상이 세워져 있고 롯데월드타워에는 괴테 동상이 세워져 있다.


목련꽃이 만드는 그늘은 어떤 것일까? 사실 오늘의 이 글을 쓰게 된 직접적인 동기다. 서울을 기준으로 목련꽃이 피는 시기는 4월이다. '봄볕은 며느리를 쬐이고 가을볕은 딸을 쬐인다' 봄볕은 공기도 많이 건조하고 살갗이 더 잘 탄다. 긴 겨울을 보낸 후의 그저 따사로운 봄볕, 그래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새까맣게 그을리는 경우가 많다. 요즘은 이런 시어머니는 없을 것이다. 그러니 귀한 며느리도 사랑하는 딸도 내보내지 않을 것이다.


목련은 잎이 나기 전에 꽃이 핀다. 꽃이 지고 나면 비로소 그때 푸른 잎들이 나온다. 그러니 꽃만 있는 목련 아래, 봄볕의 차단은 그리 효과적이지는 않을 것이다. 그냥 시적인 분위기를 내기 위한 멋진 표현일 뿐. 아무튼 그 아래에서 괴테의 젊은 베르터의 고뇌를 읽는단다. 산들산들 불어오는 바람에, 향기로운 커피 한 잔을 앞에 놓고 아니면 좋은 드라이 레드 와인과 함께 좋아하는 책을 읽는 망중한. 그저 생각만 해도 평화로운 풍경이다.


대부분의 명작들이 그렇듯이 이 소설도 괴테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다. 자기가 우연히 만난 매력적인 여인, 하지만 그녀에게는 이미 약혼자가 있었다. 그래서 괴테를 일부러 냉냉하게 대하는 그녀, 좌절하고 낙담하는 괴테. 그런데 그때 괴테의 지인 중에 비슷한 일을 겪고 있는 남자가 있었다. 결혼한 여자를 흠모한 것이다. 결국 그는 실제로 자살을 한다. 이 두 가지가 결합되어 괴테의 손에서 불후의 명작이 탄생한다.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의 형식으로 쓰여졌기 때문에 박목월시인은 '편지를 읽는다'라고 시 속에서 표현한 것이다.


처음 발표 당시 유럽에서는 워낙 인기가 좋아서 왕족이고 귀족이고 너 나 할 것 없이 읽었단다. 세계 최초의 베스트 셀러라는 평도 받는다. 그러나 정작 괴테 자신은 이 책의 성공으로 별 돈은 벌지 못했다고 한다. 곳곳에서 해적판이 나왔고 무엇보다 출판사측에서 아직은 무명의 괴테에게 아주 적은 금액의 인세를 주었기 때문이란다. 그의 나이 불과 25세 때 나온 작품이니까. 그러나 이 책으로 괴테는 일약 유명인으로 떠오른다. 하긴 이것보다 더 큰 인세가 어디 있겠나?


나폴레옹은 이 책을 전쟁터에까지 가지고 갔단다. 처음부터 끝까지 정독으로 무려 16번을 읽었다고 한다. 역시 무언가가 다른 사람들에게는 이런 광기에 가까운 열정이 있다. 나는 마태 수난곡을 겨우 다섯 번 들었으니 그래서 범인으로 이렇게 남아 있는 것이리라.


독일을 점령한 나폴레옹은 드디어 괴테와 대면한다. 당연 그 자리에서도 이 소설 얘기가 중심 화제. '다 좋은데 주인공이 귀족들로부터 창피를 당하는 장면은 내용에 좀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고 괴테에게 말했단다. 괴테는 그렇지 않다고 반박했다고 한다.


영국의 총리 벤저민 디즈레일리는 이 책을 사악한 책이라고 비판했다. 그럼에도 스무 번도 넘게 읽었다고 말했다. 주인공의 자살,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던 총리에게는 분명 사악한 책이었을 것이다. 결국 교황청에서도 금서로 지정했다. 그 인기는 더욱 높아졌다.


어릴 때 집 마당에 커다란 목련 나무가 한 그루 있었다. 아버지가 아끼시던 나무다. 목련꽃은 정말 예쁘다. 그리 화려하게 뽐내지도 않는다. 동물성 강한 지나치게 자극적인 향수의 향도 없다. 그야말로 적당하다. 은은하고 우아하다. 그래서 고고한 맛이 있다. 단순미의 최강이다. 나뭇가지에 그냥 흰 꽃들이 핀다. 잎은 아직 없다. 꽃의 시대가 지나가야 비로소 잎이 등장한다. 자신의 순서를 기다리는 그 미덕 또한 나는 크게, 높이 본다.


우리나라 토종이다. 백목련과 자목련은 중국산이다. 꽃의 모양, 꽃의 질감, 그 향, 모두 인위적인 맛이 강하게 난다. 목련과 비교할 것이 못 된다. 아파트 정원수로 목련이 심겨져 있는 곳과 백목련 혹은 자목련이 그 자리를 대신하는 곳, 비교하며 살펴 볼 점이 많다.


오늘 이 글은 '열정'을 말하면서 그 끝을 맺기로 한다. 바흐의 음악에 대한 열정, 어느 젊은 기업가의 창업의 열정 그리고 문학에 대한 열정, 괴테의 사랑과 문학 그리고 삶에 대한 열정, 괴테를 좋아했던 나폴레옹의 자신에 대한 그 놀라운 열정...


열정은 정열과는 또 결을 달리 한다. 정열에서는 왠지 쾌락적인 냄새가 난다. 육체적인 측면이라는 느낌도 준다. 일시적이고 때로는 통제되지 않는 강렬한 감정이다. 그러나 열정은 목표를 향한 지속적이고 통제된 뜨거운 감정을 말한다. 꾸준함, 집중력, 지속성이 핵심이다.


정열은 어쩐지 젊은이들의 독점적 영역일 것 같다. 하지만 열정은 젊은이는 물론이고 나처럼 나이 든 사람도 충분히 접근할 수 있는 덕목이다. 'Whoever has more passion wins' 결국은 더 많은 열정을 가진 사람이 이긴다, 내가 좋아하는 말이다.


사랑에 있어서도, 무언가 일이 되도록 하는 특정의 미션에 있어서도, 그리고 우리 삶 자체에 대한 것에서도 결국에는 뜨거운 그 무엇인가가 필요하다. 그것이 승패를 좌우한다, 그래서 우리는 그것을 아름다운 덕목이라 부른다.


오늘의 시를 본다.


이 시에 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으로 나의 존경의 마음을 그대로 표한다. 내가 말하고 싶은 모든 것이 시 안에 다 들어있다. 그러니 그저 읽으시면 된다, 몇 번 읽으시면 더욱 좋다. 그래서 굳이 여기에 옮겨 적는다.


'시란 바로 이런 것이다'라고 큰 소리로 사방에 소리칠 수 있는 그런 아름다운 시다.


너를 기다리는 동안

- 황지우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에

내가 미리 가 너를 기다리는 동안

다가오는 모든 발자국은

내 가슴에 쿵쿵거린다

바스락거리는 나뭇잎 하나도 다 내게 온다

기다려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안다

세상에서 기다리는 일처럼 가슴 애리는 일 있을까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 내가 미리 와 있는 이곳에서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

너였다가

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

다시 문이 닫힌다


사랑하는 이여

오지 않는 너를 기다리며

마침내 나는 너에게 간다

아주 먼 데서 나는 너에게 가고

아주 오랜 세월을 다하여 너는 지금 오고 있다

아주 먼 데서 지금도 천천히 오고 있는 너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도 가고 있다

남들이 열고 들어오는 문을 통해

내 가슴에 쿵쿵거리는 모든 발자국 따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너에게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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