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편협, 너그러움, 순수, 처음. 시마자키 도손 '첫 사랑'
얼마 전 다른 글에서 저는 어느 나라 길거리 개들의 비겁한 '블러핑' (bluffing, 뻥을 치는 것/허세를 부려서 남을 속이는 것/허세 부리며 남을 위협하는 것)에 대해 말한 적이 있습니다. 주인이 있는 개가 다가오면 그 개가 멀리 있을 때에는 정면으로 바라보며 마구 짖던 그 길거리 개들이, 정작 그 개가 가까이 오면 돌연 엉뚱한 방향을 보며 그저 그쪽에 무엇이 있다는 듯 그리 짖어댑니다. 비굴의 극치이지요. 별로 좋아하지 않던 개들에 대해 더욱 비호감의 감정을 갖게 된 한 계기였습니다.
저는 사과를 정말 좋아합니다. 거의 평생 사과 먹는 것을 즐겼지요. 한국에 있을 때는 사과가 나오지 않는 여름과 가을철을 빼고는 늘, 또 외국에 있을 때는 사시사철 거의 언제나 사과를 먹습니다. 외국 생활 중에는 밥보다 더 많이, 더 자주 먹는 저의 주식 중 하나이지요. 삶은 감자와 고구마, 삶은 계란과 함께.
러시아에 인접한 작은 나라 조지아에는 연중 다양한 사과가 납니다. 그곳 사람들은 푸석한 사과, 초록빛 사과 그리고 노란 사과를 좋아합니다. 다 제가 좋아하지 않는 사과지요. 그러니 저는 제가 좋아하는 사과를 거의 독점적으로 즐길 수 있었지요. 가격도 아주 저렴합니다.
그곳에서 뜻밖에 맛있는 사과 품종도 찾아냈습니다. 일식집에서 식전에 갈아서 주는 마 같은 식감의 독특한 사과도 맛있고, 우리나라에는 없는 제법 단단한 식감의 단맛 강한 사과도 좋았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과일집 주인이 단골이 된 내게 후지, 후지하고 말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이게 뭔 소리인가 싶었는데 바로 후지 사과를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곳에서도 일본에서 탄생한 후지 사과를 재배하고 있었습니다.
한국의 부사보다 훨씬 맛있습니다. 신 맛이 덜하고 단 맛은 더 강합니다. 식감도 아주 살짝 덜 딱딱한 것이, 저는 더 좋았습니다. 가격은 한국의 1/5 수준입니다. 한국의 부사 하나 2,500원 이상, 조지아의 후지 하나에 500원, 제게는 그야말로 사과 즐기기에 적격인 나라였지요.
그 후지 사과를 부사라고 부르는 곳은 아마 우리나라 밖에 없을 겁니다. 베트남에서도 미니 후지를 비롯해서 몇 종류의 후지 사과를 만날 수 있습니다. 요즘은 사과 강국 뉴질랜드에서도 후지를 재배, 생산합니다. 살짝 모양과 맛이 다르기는 하지만 거의 후지 그 맛입니다.
그런데 왜 유독 우리는 부사라고 부르는 것일까요? 한반도의 백두산, 우리나라의 한라산만큼이나 일본에도 그들이 자랑하는 산이 있지요? 바로 후지산입니다. 한자로 표기하면 부사산입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우리나라 사람들도 후지산이라 부르지 부사산이라고는 하지 않잖아요?
우리나라를 방문하는 외국인들이 서울의 남산을 남쪽의 산, 남대문을 남쪽으로 난 큰 문, 이렇게 부르지 않는 것처럼 말이지요. 그냥 그 나라의 고유 명사니까요. 아마도 얽힌 여러 얘기가 있을 겁니다. 일본과 대한민국, 많은 사연과 복잡한 감정상의 이슈들이 존재하니까요.
한글 맞춤법 표기의 원칙에도 외국어의 경우 그 나라 현지 발음을 소리 나는 대로 적는 것으로 이미 오래 전에 바뀌었지요? 예전의 모택동, 등소평을 요즘은 마오쩌둥, 덩샤오핑 이렇게 부르는 것과 같지요.
일본에서 개발된 사과 품종의 국제적인 공식 명칭, 그러니 부사가 아니라 후지라고 부르는 것이 맞습니다. 다른 나라 어디 가서 부사 사과 찾으면 찾을 수 없습니다. 그들은 전혀 들어보지 못한 품종이니까요. 일본에서는 이 품종을 말할 때 아예 한자를 쓰지 않습니다. 그냥 히라가나로 후지라고 표기합니다.
세계에서 가장 많이 생산되는 사과 품종이지요. 세계 최대의 사과 생산국인 중국에서 나오는 사과의 80% 정도가 이 후지 사과라고 합니다. 물론 일본과 한국에서도 제일 많이 퍼진 사과 품종입니다. 맛도 맛이지만 저장성이 뛰어나다는 점이 이 사과의 경제적 측면의 가장 큰 강점이지요.
우리가 살아가면서 자칫 타인에게 '옹졸한 사람'으로 비춰지는 경우가 가끔 있습니다. 이게 전적으로 주관적 그리고 100% 감정의 영역이라, 사실 '나는 그리 옹졸한 사람이 아니야!'라고 소리 높여 항변을 한들 잘 먹혀들어가지 않습니다. 한번 그렇게 형성된 옹졸한 사람으로서의 인식표는, 소설 '주홍글자'에서의 늘 달고 다니는 그 표식처럼, 쉽게 바꿀 수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일단 옹졸한 사람, 편협한 사람, 속이 좁은 사람으로 분류되면 이래저래 불편하고 불리한 점들이 많습니다, 아주 많습니다. 우선 그 사람 말의 소위 '씨알이' 잘 먹히지 않습니다. 일단 디스카운트하고 들어갑니다, 사람들은. 권위? 당연 기대난망이겠지요? 얼굴이 아무리 잘 생긴 들, 번듯한 학벌을 가지고 있은 들, 재산이 많은 사람이더라도 늘 한구석이 크게 모자라는/부족한/그래서 주위 사람들에게 뜻하지 않은 '위안이 되는' 그런 존재로 남습니다.
그 사람, 왜요? '응, 그는 옹졸한 사람이야. 편협하지. 늘 감정적으로 자신의 판단과 결정을 하고. 냅둬, 그런 사람도 좀 있어야지 우리 사는 이 세상에? 그래야 우리 같은 사람들도 위안을 얻으며 살아가지.'
오늘의 시를 봅니다. 우연한 기회에 최근 이 시와 재회를 했습니다. 우연의 모습을 하고 저를 찾아온 또 하나의 필연인 것도 같습니다.
제가 이 시를 처음 만난 것은 아주 오래 전, 그러니까 한국에서 와인 열풍이 불 때였습니다. 그래서 그때는 와인 얘기를 다룬 일본 만화 '신의 물방울' 전집이 한창 인기를 끌 때였지요. 지금껏 30년 이상 와인을 즐겨 온 저로서는, 그때는 그야말로 와인 이론에 대한 목마름으로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읽을 때였습니다.
그때 제가 그 신의 물방울에서 읽은 시가 이 '첫 사랑'이었습니다. 일본에서는 워낙 유명한 시인이고 참으로 유명한 시이지요. 그런데 사실 이 시인의 개인사 또한 저의 큰 관심을 끌었습니다.
요 며칠 문득 어디 좋은 일본 시 없을까 하고 뒤지다가 툭하고 튀어나온 것이 바로 이 시입니다. 우연도 이런 우연이 없지요? 그런데 그 옛날 만화 속에서 읽을 때도 사실 제가 받은 감동은 살짝 기대 이하였습니다. 아니 그 유명한 시인의 그리 유명한 시라면서? 아마도 번역 과정에서 있을 수 있는 미묘한 어감 혹은 뉘앙스의 차이 때문이었을 겁니다. 시의 번역, 참으로 어렵습니다 그 원작의 느낌을 제대로 잡아내기가!
그래도 일본어와 한국어의 관계는 그 직역이 더 나을 것 같은 생각에, 처음에는 그냥 기존의 일본어 직해본을 쓸 생각이었습니다. 하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뭔가가 여전히 아쉽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지요. 그래서 영어 번역본을 뒤졌습니다. 마침 좋은 것 하나를 찾았습니다. 글쎄요, 훨씬 그 어감이 풍성하고 맛이 제대로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오늘 여러분에게 소개하는 것은 영어 번역본에서 제가 우리말로 옮긴 버전입니다. 저는 아주 맛있게 읽었습니다.
첫 사랑 (First Love)
- 시마자키 도손
사과나무 아래에서 내가 처음 당신을 보았을 때
당신은 가지런하게 자른 앞머리카락에
머리에는 꽃 모양의 빗을 꼽고 있었지
그때 나는 당신이 바로 꽃이라고 생각했지요.
당신은 파리하게 하얀 그 손을 부드럽게 내밀며
내게 사과를 주었지 :
마치 붉게 익어가는 가을날의 과일처럼
내 첫 사랑의 감정도 그렇게 싹텄지요.
나도 모르게 새어나온 나의 설레는 한숨이
당신의 그 머리카락에 닿았지
사랑이 주는 그 큰 기쁨
그 순간 당신의 사랑을 마시는 나...
사과밭 나무 아래로
어느새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작은 길 하나
누가 여기에 이런 길을 만든 거야?
아무 것도 모르는 듯 이리 묻는 당신,
내 몸을 떨게 하는 즐거움이었지요.
<우리말 번역 - 가을에 내리는 눈, 영어 번역본을 바탕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