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오자이와 몸빼, 미니스커트

- 노출과 억제, 미와 실용, 문화와 정서. 천양희 '옷 입다 생각하니'

by 가을에 내리는 눈

30년 전쯤 처음 싱가포르항공을 탔을 때 특히 인상적인 것이 두 가지 있었다. 하나는 승무원들이 엄청 친절했다는 것, 다른 하나는 여승무원들의 화려하고 자칫 자극적일 수 있는 유니폼.


그 후 서울의 어느 호텔 바나 식당가에서 그 비슷한 복장의 직원들을 보면 항상 그때 생각이 났다. 치마 양 옆을 길게 타서 노출과 자극의 강도를 훨씬 세게 만든 그 패션. 중국의 여성 의상 치파오를 연상하게 하는 옷.


그만큼 인상적인 기억으로 남아있다. 하긴 그 유니폼의 디자이너가 프랑스의 유명 디자이너 피에르 발망 (Pierre Balmain)이었으니. 사실 싱가포르항공의 유니폼은 발등까지 내려오는 치마가 옆으로 타지지는 않았다. 타이트한 통치마다. 치마 앞부분에 처음부터 끝까지 길게 주름이 잡힌 트임이 있다. 보기에 따라서는 아주 대담한 디자인이다. 물론 입는 사람으로서는 편안할 것이다, 걸을 때 앞이 자연스럽게 열리니까. 그래도 어쩐지 대놓고 옆을 확 트는 상업적 자극 목적의 옷보다는 훨씬 우아하고 젊잖은 느낌이 든다. 은은함과 은근함이 주는 설렘과 조바심의 매력?


사실 그 스타일의 원조는 '사롱 케바야' (sarong kebaya)다. 인도네시아와 싱가포르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의상이다. 긴 스커트 (사롱)와 몸에 착 달라붙는 블라우스 상의 (케바야), 이렇게 한 세트로 이루어져 있다.


지금 머무르고 있는 이 나라의 전통 의상 아오자이. '아오'는 도포, 그러니까 축 늘어진 윗옷이다. '자이'는 길다는 뜻. 그러니까 아오자이는 '길게 아래로 늘어진 상의' 뭐 그런 뜻이다. 그런데 우리가 주목하지 않는 부분이 있다. 바로 바지다. 정확하게 말한다면 여성들의 전통 아오자이는 풍덩한 바지 ('꽝'이라 부른다) 위로 종아리까지 내려오는 긴 윗옷을 내려입은 것을 말한다. 그 긴 윗옷은 허리 조금 위부터 아래로 넓게 옆 트임이 되어있다. 바지를 입었으니 그렇게 마음 놓고 터도 노출에 대한 우려는 없다.


어쩌면 아오자이의 핵심 혹은 필수는 편안하게 넉넉한 바지다. '몬페' 혹은 우리에게 익숙한 말 몸빼는 정말 몸놀림에 편안하게 만든 넉넉한 스타일의 바지다. 일본에서 들어온 옷이다. 그 기원은 일본 에도 시대 (1603년 - 1867년) 말엽까지 올라간다. 눈이 많이 오는 지방에서 방한용으로 입던 바지란다.


1937년 중일전쟁 발발 후 한반도로 들어온다. 일본은 노동력 착취를 목적으로 강제로 이 옷을 보급한다. 기존의 작업용 한복의 착용을 엄격히 금지한다. 민족말살정책과 노동력 착취, 이 두 가지를 동시에 이루려는 식민정책의 전형으로 자리잡는다.


역사의 아이러니는 이런 곳에서도 나타난다. 해방이 되고 강요가 사라진 후에도, 이 옷이 편하기는 정말 편했기 때문에 그 후에도 작업복 용도로 널리 애용된다. 한국과 일본의 좌식문화와도 관련이 있을 것이다. 2019년 일본 관광객들이 한국에서 가장 많이 사가는 인기상품 6위에 올랐다는 보도도 있었다.


아오자이는 18세기 후반 응우엔 왕조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하지만 우리가 지금 보는 현대적인 아오자이의 형태는 1930년대 프랑스 식민지 시기에 서양 스타일을 결합한 후부터 등장한다. 그러니 일본 몬페의 영향을 받은 것일 수도 있다, 단순 시기적으로는. 이런 논의는 한복을 포함한 동남아 여러 나라를 얘기할 때 꼭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식상하는 소모적 논쟁일 뿐이다. 뭐가 무엇에서 영향을 받았고 어쩌고...


그 무슨 큰 상관이 있겠는가? 그저 우연의 영향일 가능성이 제일 높다. 지리적 인접국들의 특성, 기후가 비슷하고 문화 또한 비슷한 부분들이 있을 것이고, 따라서 그 사회 속 사람들의 필요와 기호 또한 비슷한 부분이 있을 수밖에 없다. 이 영역에서 굳이 지적 재산권의 이슈가 대두될 것도 아니니, 이런 불필요한 유치 가득 언쟁은 이제는 없어도 좋을 듯하다.


나는 예전에는 아오자이에서 바지를 보지 못했다, 아니 놓쳤다 보는 것을. 그러다가 이번에 자세히 보면서 알게 된 것이기에 그냥 신기함 절묘함 이런 감정 속에 이 글을 쓰는 것뿐이다. 나는이들의 옷에서 우리네 어른들이 자주 입었던 바로 그 몸빼를 보았다.


한복과 기모노에는 바지는 없다. 여성 한복에는 속바지를 비롯해서 여러 개의 속옷을 겹쳐 입기는 하지만 그건 그야말로 속옷이다. 기모노에는 단순한 속치마 하나만 속옷으로 입는다. 치파오에도 바지는 없다. 아오자이와의 가장 큰 차이점으로 꼽는다. 치파오를 볼 때면 나는 '그냥 한번 젊잖은 채 해보는 우회적인 최강 미니스커트'라는 생각을 한다. 그리 나쁜 의도의 음흉함은 없는, 중국인들의 흔치 않은 '선의 속 몇 번 돌아서 가기'의 한 예다. 실제로 한때 치파오가 미니스커트 스타일로 아주 짧아진 때도 있다. 지금은 소매만 짧다, 대단히 자극적으로 짧은 소매. 사실 여성의 묘하게 짧은 소매는 짧은 치마만큼이나 인상적인 법이다.


아오자이에는 슬리퍼 형태의 신발을, 싱가포르항공의 경우에도 매력적인 슬리퍼를, 기노모의 경우에는 조리 (보통 양말과 함께 신는다, 격식 있는 자리에서 신는다) 혹은 게타 (땅에 닿는 신발바닥에 두 개의 나무 굽이 있다, 조리보다 좀 더 캐쥬얼한 느낌이다, 주로 유카타와 함께 신는다, 맨발로 신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나무로 만든다)를, 치파오에는 통상 구두를 (이 옷이 1920년대 상하이에서 처음 만들어진 만큼 현대적 영향이 제일 큰 것 아닐까 그리 짐작한다, 개인적으로), 우리 한복의 경우에는 고무신 혹은 꽃신을 신는다. 이 또한 흥미로운 부분이다.


사실 한복이나 기모노와 비교하면 아오자이는 그 기본적 용도가 미에 중점을 둔 패션이라기 보다는 일상 속의 평범한 옷, 뭐 그런 수준이 아닌가 나는 그리 생각한다. 우선 바지가 있다는 것부터가 그렇다. 더운 나라라는 특성도 있지만 아무튼 옷의 셋팅 자체가 단순하다. 활동에 지극히 편한 바지, 그 위를 내리덮는 그냥 단순한 자루 같은 긴 도포형의 윗옷, 허리부터 탁 트여진 그 상의. 활동성으로 보면 한복이나 기모노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실제로 밭에서 거리에서 일할 때 많이 입었단다.


그럼에도 사회주의 정권 초기에는 이마저도 비실용적이라는 이유로 착용이 금지되기도 했다. 아마도 이전 왕조/정권에 대한 반동적인 정치적 제스츄어가 더 컸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매주 월요일을 아오자이 입는 날로 정하고 권장할 만큼 그렇게 바뀌었다. 상업적, 정치적 동기의 냄새가 물씬 풍긴다.


베트남의 아오자이, 중국의 치파오, 일본의 기모노, 싱가포르항공의 여승무원 복장 모두 여성의 몸매를 그대로 드러내는 타이트한 옷이다. 기모노를 빼고는 모두 아주 긴 옆 트임 (아오자이) 혹은 짧지만 자극적인 옆 트임 (치파오), 독특한 젊잖은 앞 트임 (싱가포르항공)이 있다. 물론 아오자이의 경우에는 아예 긴 바지를 입어버리니 과다 노출의 우려나 호기심은 없다.


이런 우스개 소리가 있다. 미국 닉슨 대통령의 부인이 치파오를 입은 중국 여성들의 모습을 보고는 이리 말했단다 - "중국이 인구 대국인 이유를 알 것 같아요"


그런데 우리의 여성 한복은 절대, 결코 몸매를 드러내지 않는다. 아주 짧고 딱 붙는 상의 (저고리)를 빼면 그 옷을 입고 있는 여성의 실제 체형을 파악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이 부분을 놓고는 한참, 여러 날 생각을 해보았다. 왜? 이 자리에서 굳이 공유하지는 않기로 한다. 물론 나름의 생각은 얻었다, 많이.


오늘의 시를 본다.


처음에는 단순 평이 즐거움, 그렇게 읽었다가 두 번 읽고 또 한 번 더 읽고 그 회차를 거듭할수록 그리 만만한 시가 아니라는 깨달음에 도달했다. 많은 사유와 묵상을 요하는 시다.


나는 이 세상에 와서 입은 옷이 모두 몇 벌이나 될까? 시인의 자문처럼 나도 내게 묻는다. 많을 것이다, 아주 많을 것이다. 옷 욕심이 그리 많은 것은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일단 내 눈에 꽂힌 옷은 쉽게 포기하지 않았다. 원색을 좋아했다, 특히 신비로운 붉은색과 겨자색, 그리고 인디고 블루를.


내가 이 세상에 와서 처음 입은 옷은 무엇이었나 시인은 다시 묻는다. 그럼 나는? 어머니가 나 태어나기 전 정성 가득 사랑 가득 그리 지어놓으신 부드러운 면의 아기옷들? 어쩌면 형제가 많았으니 그네들이 입던 고운 옷들의 자연스러운 물림? 아무려면 어떤가, 분명 그들의 사랑과 온기가 여전히 남아있는 고운 옷이었을 것이니!


시인이 재미있는 질문을 던진다 - '옷이 처음 본 것은 누구였나?'


처음 들어보는 신기하고도 신선한 물음이다. 그 옷을 입게될 나? 아니면 그 옷을 마련하고 구입한 어머니? 사랑하는 아들 어릴 때 내가 흥분 속에 가슴 설레며 산 오시꼬시 진 멜빵 통자 옷, 그러니까 그때 파리의 어느 아동복 가게에서 그 오시꼬시가 처음 본 사람은 바로 나? 그 다음이 자기 주인 내 아들?


시인은 왜 이런 물음을 던진 것일까? '완물상지' (물건에 너무 마음을 빼앗기고 그렇게 빠지면, 그 물건 본래의 기능과 존재 이유를 망각하는 것이 되고 만다)를 슬쩍 경계하시는 건가? 그 틈에 '완인상덕' (사람에 너무 빠지면 자신의 본모습, 선하고 아름다웠던 덕목까지 잃게 되는 위험이 있다)의 경구까지?


갑자기 톤을 바꾸어 냉랭한 목소리로 말한다 - '지나간 건 다시 오지 않듯이' '처음은 언제나 끝이 되고 말지'... 쌔하니 내 정신이 번쩍 든다. 그렇지? 모든 시작은 그 끝이 있는 것이지?


'옷의 일생은 늘 그렇지 그대여 옷이란 그런 것이네 옷과 함께 잘 낡아가는 것이네'


어디 옷의 일생만 그렇겠나? 우리네 삶이란 것이 본시 그런 것이거늘? 원래 그런거야, 뭐 당신에게만 특별히, 신이 혹은 운명이 나쁜 마음 먹고 그리 하는 것은 아니야. 순서의 문제이고 정도의 문제이고, 결국은 당신 인식의 문제일 뿐. 누구에게나, 우리 모두에게 인생은 그렇게 흘러가는 것이야.


여기 참으로 기가 막힌 구절이 있다 - '그래도 끝나지 않는 것은 한 몸에 빛과 어둠을 입고 벗는 옷'. 와우, 그냥 멋지다, 이것이 시다!


그저 빛을 입고 또 어둠을 벗고, 어느 때는 어둠을 입고 빛은 그만 벗고, 같은 몸에 매일 조금씩 다른 옷을 입고 벗는 것처럼! 그것이 우리의 일상, 그것이 우리네 삶, 옷에게는 평범한 일상. 우리도 옷처럼 그냥 평범한 일상으로 그렇게 덤덤하게 받아들일 수 있으면 좋을 것을?


세월의 흐름 속에 낡아가는 옷과 함께, 우리 그냥 그렇게 자연스럽게 낡아갑시다, 그것이 옷의 일생이고 인간의 숙명이니까!


아오자이의 핵심은 어쩌면 그 바지에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단상에서 시작된 이 글이, 우리 어머니 아버지 시대의 필수품 일본산 몸빼 (몬페)를 거쳐, 이렇게 '옷과 함께 잘 늙어가는 지혜'로 이어졌네요? 저로서는 뜻밖의 수확입니다. 글을 쓴다는 것은 이런 의외의 즐거움과 기쁨을 가져다줍니다. 그래서 글 쓰는 것을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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