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는 국경이 없다' - 턱도 없는 소리

- 필요조건이 많은 사랑, 그래서 늘 많이 힘든 사랑. 강은교 '사랑법'

by 가을에 내리는 눈

망고를 좋아합니다. 지금 제가 머무르고 있는 이곳에서 먹는 망고는 한국에서 먹던 망고와는 그 맛이 전혀 다릅니다. 원산지 현지와 먼 나라에서 온 수입과일 그 차이겠지요. 그런데 망고를 자주 먹다보니 이제 맛있는 망고 고르는 법도 터득하게 되었지요.


너무 노랗기만 한 망고는 일단 그 최고의 맛에서 살짝 지나간 겁니다. 80% 정도 노랗고 20%는 여전히 푸른 기운이 있는 그런 망고, 그게 제일 맛있는 망고입니다. 달기만 한 망고는 언제부터인가 조금 질리는 느낌이 들었어요. 김빠진 탄산음료 같은 느낌. 그래서 살짝 신맛이 아직도 살아있는 단맛, 그게 최고의 망고 맛입니다. 저는 그렇습니다.


이곳 사람들은 새파랗고 그냥 딱딱한 망고를 소금에 찍어 먹기도 합니다. 반찬으로도 만들구요. 그 반찬 아주 맛있습니다. 이들의 제대로 된 가정식 백반에서 빠지지 않는 반찬이지요.


망고 하나 고르는데도 살펴야 할 것이 이리 많습니다. 그러니 사람을 만나고 판단을 하고, 선택의 결정을 하는 과정에서는 얼마나 많은 고려의 요소가 있겠어요? 단맛이 우선 중요하고 신맛도 어느 정도 남아있어야 하고, 지나치게 딱딱하면 망고의 그 부드러운 식감을 느낄 수 없고 그렇다고 너무 물렁하면 씹는 맛이 없고. 너무 크면 싱겁고 너무 작으면 그 풍미가 크게 떨어지고. 아 무엇보다 우리가 먹는 그 망고는 종류가 다릅니다. 그러니 자칫 엉뚱한 종류의 망고를 고르면 그냥 낭패입니다.


'사랑에는 국경이 없다', 뭐 우리가 일반적으로 인식하고 있는 이러저런 일상적 한계 또는 제약을 사랑은, 진정한 사랑은 뛰어넘는다 그런 의미겠지요. 국가, 나이, 인종 등의 외부적 태생적 조건.


그런데 어쩌나요? 국경, 버젓이 눈을 뜨고 살아있습니다 남녀간의 사랑에 있어서는. 겹겹이 쳐진 철조망, 많고도 험합니다. 산 넘어 산이라 하면 맞을까요? 차라리 그 물리적인 국가간의 국경이라면 우리 한국사람 여권으로는 못 가는 곳이 거의 없지요? 남녀간의 사랑에 있어서의 실질적 국경에는 우리의 막강 파워 여권도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우선 인종, 아마도 제일 큰 제약 조건일 겁니다. 서양 여성들은 아주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동양인 남성들과 사귀거나 결혼을 하지 않습니다. 그들에게는 오히려 흑인 남성이 더 선호의 대상입니다. 우리로서는, 저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지만 현실이 그렇습니다.


가늘게 찢어진 눈이 그리 거슬린다네요? 왜 그렇까요? 무엇보다 신체적 조건이 그녀들의 눈에 차지 않습니다. 키도 키지만 동양인치고 자기 몸에 진심으로 시간과 노력을 들이는 사람 많지 않잖아요? 그녀들에게는 왜소하게만 보이는 것이지요.


나이요? 사실 남녀간의 사랑의 시작의 첫 조건이 나이 아닐까요? 젊어서 나쁠 것은 없습니다. 법에서 하한선으로 정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거꾸로 법이 정하는, 사랑을 위한 나이의 상한선은 없습니다. 하지만 어느 선을 넘는 나이의 남녀는 일단 사랑을 위한 후보군에서 원초적으로 제외됩니다. 결혼의 경우에는 더욱 심각하지요.


여성의 경우에는 어느 나이 기준을 넘어서면 현실적 이유에서도 우선 부정적인 요소로 작용합니다. 과학적 근거도 있는 얘기이기는 합니다. 뭐니뭐니 해도 젊음에서 오는 아름다움이 제일 아닙니까? 남녀 가릴 것 없이 공히 그렇지요?


나이 든 남자는 일단 시작부터 큰 핸디캡을 안고 있는 겁니다. 물론 이 부정적 요소를 상쇄시키는 보충 재료들이 몇 가지 있기는 하지요. 우선 금권입니다. 부자 남성이면 모든 것이 용서됩니다. 나이가 많아도, 참으로 많아도 부자라면, 어마무시 부자라면 아무 상관 없습니다. 우스개소리로 그 경우 나이 많은 것이 차라리 더 좋은 조건이라 그리 말하기도 하지요.


사실은 동물의 세계를 보면 보다 명확합니다. 동물의 세계에서 짝을 고르는 기준은 단 하나, 힘이 있는 존재인가 바로 그것입니다. 육체적 힘을 말합니다. 신체적인 경쟁우위를 말하는 것이지요. 그곳에서는 금권도 권력도 그 힘의 부족을 상쇄시키지는 못합니다. 오직 인간의 세계에서만 그런 '반칙'이 통용되는 것이지요.


저는 동물의 세계의 법칙과 관행을 보면서 저를 달랩니다. 그게 맞는 것이라고, 그들이 자연의 법칙을 제대로 따르는 것이라고. 우리네 인간들이 얕은 반칙적 수단들을 이용하고 있는 것이라고. 아마도 시간의 흐름과 함계 그런 반칙의 부작용은 우리가 지금 상상할 수 없는 형태로 우리 인류에게 그대로 돌아올 겁니다.


돈의 힘으로 해도 되는 것들이 있고 돈을 이용해서 해서는 안 되는 것들이 있다는 것을 얘기하는 겁니다. 제가 돈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서 이런 말을 드리는 것은 아닙니다. 억만장자 부자들 중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돈을 이런 자연의 법칙을 거스르는 부당한 용처로 사용하지 않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이 몰라서 하지 않는 것이 아니지요.


남녀간의 사랑에 있어서의 험하고 무서운 국경은 또 있지요. 같은 인종, 충분히 젊은 나이. 이제 그 다음 요구사항이 등장합니다. 외모/신체적 조건/이미 형성한 재산의 정도/수입의 크기/학력/직업의 구체적 종류와 그 사회적 등급/집안...


그러니 요즘 젊은이들이 결혼 생각을 아예 하지 않는다고 자조적으로 말하는 것이지요. 차라리 서양의 경우에는 이런 까다로운 사랑의 전제 조건을 내세우는 경우가 드물어요. 저는 그들이 그만큼 합리적인 사고를 가지고 있는 것이라고 그리 생각합니다. 그들은 사랑의 상대에게 적어도 이런 조건에 있어서는 관대하고 너그럽습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합리적인 수준의 것들을 바라고 요구합니다. 그만큼 건강한 사랑의 시작이지요.


헤어짐에 있어서도 그들이 훨씬 쿨한 것 같습니다. 적어도 제가 보기에는 그렇습니다. 그저 사귀다가 헤어진 경우도 그렇고 결혼 후 갈라서는 경우에는 더욱 그렇습니다. 가끔 그들의 그 결별 후의 관계의 관리가 저는 부럽습니다. 갈라서면 그때부터 이내 '원수'가 되는 그런 무서운 관계는 정말 무섭습니다. 뭐 굳이 그럴 것까지야? 두 사람 사이에 자녀가 있는 경우는 더욱 그런 유연한 관계의 관리 기술이 필요하지요. 둘 만의 문제가 아니니까요. 아이라는 또 다른 중요한 이해관계인이 있는 것이니까요. 부부의 관계는 남으로 돌아갔지만 아이와의 관계는 서류상으로든 실질적으로든 사라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니까요.


너그러운 사랑을 하면 좋겠어요. 시작도 그렇고 결별의 경우에는 더욱 그렇게.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하지는 않는 그런 사랑이 되면 좋을 것 같아요. 특히나 외형적, 금전적인 것들에 대한 지나친 요구는 가급적 삼가고 최소화하는. 양은냄비 같은 사랑 말고 그래도 무쇠솥 정도는 되는 은근하고 오래가는 사랑의 관계가 되면 좋겠네요. 누런 양은냄비는 라면 끓여먹기에나 좋지요. 맛있는 도가니탕을 끓이려면 그래도 무쇠솥이 제격이지요?


국경이 있든 없든, 사랑하는 사람들은 사랑의 힘으로 그 국경을 조금은 쉽게 넘을 수 있게 되면 좋겠어요. 막강한 힘을 가진 우리나라 여권처럼 그렇게요. 그래서 언젠가는 제가 다시 브런치에 이 제목으로 글을 쓰고, '사랑에는 정말 그 어떤 국경도 없다, 참으로 아름다운 일이다'라고 쓸 수 있으면 좋겠어요. 그런 날이 올까요?


오늘의 시를 봅니다. 단 한 마디의 제 말도 필요없는, 강은교시인의 멋진 시입니다. 직접 읽으시라 여기 이렇게 적습니다.


사랑법

- 강은교

떠나고 싶은 자

떠나게 하고

잠들고 싶은 자

잠들게 하고

그리고도 남은 시간은

침묵할 것


또는 꽃에 대하여

또는 하늘에 대하여

또는 무덤에 대하여


서둘지 말 것

침묵할 것


그대 살 속의

오래 전에 굳은 날개와

흐르지 않는 강물과

누워있는 누워있는 구름,

결코 잠깨지 않는 별을


쉽게 꿈꾸지 말고

쉽게 흐르지 말고

쉽게 꽃피지 말고

그러므로


실눈으로 볼 것

떠나고 싶은 자

홀로 떠나는 모습을

잠들고 싶은 자

홀로 잠드는 모습을


가장 큰 하늘은 언제나

그대 등 뒤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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