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래방이 성업 중인 이곳 - 인생의 '니치 마켓'

- 열린 마음, 예의주시, 결단과 실행력, 그게 에지. 김소월 '기회'

by 가을에 내리는 눈

요즘의 서울 초등학생들은 밤 열두 시가 가까워서야 집에 온다는 얘기를 얼마 전 가까운 분에게서 들었다. 일찍 자면 새벽 한 시란다. 그리고 다시 아침 일찍 일어난다. 사회 초년병 직장인의 일상이 아니다. 몇 달 후 대입 본고사를 앞둔 고3 수험생의 얘기가 아니다. 길게는 10년, 짧아도 6년 이상의 시간이 아직은 남아있는 (대학 입학 때까지) 우리네 어린 학생들 얘기다. 오호통재라!


어제 어느 작가님이 내게 주신 귀한 댓글에 대한 답글에서 나는 이렇게 말했다 - '우리 학생들은 대학 들어갈 때까지만 죽어라 공부합니다. 그러나 서구의 학생들은 대학 들어가고 나서부터 죽어라 공부합니다.'


저 국민학생 중고등학생 때는 이렇지 않았습니다. 왜 이러는 걸까요? 그저 '우리들만의 리그 혹은 토너먼트'를 위해, 그러니까 지역 선발전을 위해 이 짓을 하고 있는 것이지요. 참으로 재주 많고 가능성 가득한 우리의 아이들을 초장부터 혹사시킵니다, 그렇게 조로하게 만들고 결국에는 조기 고사하게 만듭니다.


굳이 질량유한의 법칙을 말하지 않더라도 이 세상 모든 존재의 분출가능 에너지의 총량은 정해져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미리 다 쓰고 나면, 대륙별 예전선도 아니고 그저 그 나라 아니 그 지역 예선전에서, 그러면 정작 본게임에서는 쓰려고 해도 더 이상 쓸 실탄이 남아있지 않습니다. 그보다 병사 자체가 이미 기진맥진, 총을 들 힘도 없습니다. 제대로 된 조준은 아예 하지도 못합니다. 상대방은 어부지리를 하는 셈이지요.


서구의 학생들, 그들은 태어날 때 받은 자신의 소중한 자원을 어릴 때부터 잘 관리합니다. 때를 기다립니다. 거름도 주고 조금 약한 곳은 수시로 보강도 합니다. 결국은 밥심이라고 잘 먹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힘을 기릅니다. 다양한 기술들을 익혀놓습니다. 나중에 언제 어떤 곳에 필요하게 될 지 모르는 일임을 그들은 이미 알거든요.


초중고 시절 그들이 룰루랄라 노는 것 같지요? 아닙니다, 어떤 면에서는 우리 아이들보다 더욱 열심히 일상을 삽니다. 단지 그 방식이 다를 뿐입니다. 책을 많이 읽습니다. 운동에 정성을 기울입니다. 자기 신체를 튼튼하게 그리고 보기 좋게 가꿉니다. 음악 활동도 적극적으로 합니다. 밴드를 결성하고 즐기는 아이들도 많습니다. 아이스하키도 해 보고 그림도 그려보고 피아노도 배웁니다. 이 나라 저 나라 견문여행도 많이 합니다. 무엇보다 사유와 묵상의 시간을 많이 갖습니다.


제 아들 녀석은 대학 초년생 때 밴드를 구성하고 리드 싱어를 했습니다. 독일의 유명한 메탈밴드 '람슈타인'을 모방하고 그들 스타일로 노래하는 밴드였습니다. 한 2년 그렇게 한 것 같습니다. 저는 사실 속이 좀 탔지요. 그런데 지금 생각하면 실보다 득이 더 많았습니다.


그가 초등학교 5학년 때 몇 년을 다니던 집 앞의 피아노 학원 정기 발표회가 있었습니다. 아들 녀석이 그때 연주한 쇼팽의 '녹턴 19번'을 저는 잊지 못합니다. 그날 연주의 속도며 곡의 해석이 저는 참으로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 후에도 가끔 집에서 그 곡을 연주해 주었습니다. 대학생 때 언젠가 방학 중 서울에 왔을 때는 아버지를 위해 연습했다면서 '녹턴 20번'을 연주했습니다. 세상 고민 다 날려버리는 아름다운 순간이었습니다. 자기 사는 곳에서도 가끔 길을 가다가 피아노가 보이면 양해를 구하고 들어가 연주를 한답니다. 그 연주를 듣고 행사 때 연주를 부탁하는 사람들도 있었답니다, 작은 사례비와 함께.


그들은 부모와 대화를 아주 많이 합니다. 일상의 중요한 부분입니다. 부모의 지적질이나 잔소리를 듣는 일은 그리 많이 없습니다. 두 가지 이유입니다. 하나, 부모가 그들을 최대한 존중합니다. 프랑스의 유아교육을 보면 그저 놀라서 말이 나오지 않을 정도입니다. 프랑스 출신 철학자 수학자가 많은 이유 중의 하나입니다. 아이의 부모는, 아니 사회 전체가 그들을 '어린 어른'으로 봅니다. 그렇게 대접합니다. 둘, 바보가 아닌 바에야 어린 그들도 자기들이 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자연스럽게 알게 됩니다. 일상 속에서 반복적으로 보고 듣고, 그렇게 제대로 익힙니다.


아들 녀석 어릴 때 제가 그에게 자주 한 말이 있습니다. '어떤 것을 반복적으로 여섯 번까지 외워도 결국 외워지지 않으면 공부나 암기 말고 다른 분야를 파보자'고. 너의 재능은 분명 다른 곳에 있을 것이라고. 그 후 고맙게도 아들 녀석이 그 문제로 제게 고민을 털어놓은 적은 없습니다.


꼭 서울의 무슨무슨 소위 '유명 대학'에 가야만 인생의 길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오해는 마세요. 좋은 대학 가면 좋은 길이 당장은, 우선적으로 내 앞에 많이 보이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저 학교 다닐 때 주위에서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을 가끔 보았습니다 - '공부 잘한다고 꼭 성공하는 것은 아니야'. 저는 이리 대답합니다. 네 맞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공부 못 한다고 꼭 성공하는 것도 아니지요. 하지만 사실 공부 잘하는 사람이 우리 사회에서 성공할 확률이 그래도 좀 더 높지요?


그런데 꼭 그 길만 길이라고 죽을 듯 달려드는 것은 좀 곤란하다 이런 말을 저는 지금 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직은 남들이 많이 가지 않는 길/상대적 그리고 절대적으로 내게 유리한 점들이 더 많은 분야/내가 하고 싶기도 한 영역/내가 잘할 수 있다고 유독 자신감이 드는 그런 쪽, 이런 남이 많이 가지 않은 길들도 한번 적극적으로 살펴보면 좋겠다 그 말을 하고 있는 겁니다.


외국으로도 눈을 좀 돌리고, 그렇다면 어려서부터 영어에 더욱 신경을 쓰고. 꼭 시험을 목적으로 한 것이 아닌. 컴퓨터 사이언스를 전공해서 아마존이나 구글 같은 곳에 프로그래머로 들어가야만 성공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일을 하는 IT 전문가들도 많습니다. 이것이 삶의 아이러니인데 요즘 프로그래머로 일하던 사람들이 좁을 잃는 경우가 많이 생깁니다. 그곳은 그야말로 시장 직접 연동형의 업무이거든요. 어쩌면 그런 하이 리스크 때문에 돈을 그리 많이 주는 것인지도 모르지요, 미리 보험금으로.


지금 제가 있는 이곳은 해발 1,500미터의 고산지대입니다. 그래서 여름이 없습니다. 제가 이곳을 선택한 이유입니다. 4월부터 11월까지가 우기입니다. 하루에 두 번 정도 짧게 내리는 귀여운 수준의 비입니다. 아무튼 그러다 보니 일상 속에서 빨래의 건조가 문제가 됩니다. 이 나라 사람들 수준이 아직 집집마다 건조기를 가지고 있기는 힘듭니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뽀송뽀송 건조를 앞에 내세운 빨래방입니다. 코인을 집어넣고 하는 것이 아니라 직원이 두 명이나 상주합니다. 맡기고 나중에 찾아갑니다. 배달도 가능합니다. 하루도 쉬는 날이 없습니다. 성업 중입니다. 이곳에 사는 누구에게도 필요한 서비스이니까요. 제가 머무르고 있는 집처럼 건조기가 있는 집만 빼고는.


아마 세월이 흐르고 이들의 소득 수준이 높아지면 집집마다 건조기를 다 갖추고 살 겁니다. 그때까지는 이 비즈니스는 잘 될 겁니다. 그야말로 '보통재' (적어도 이 지역에서는 일상 속에서 누구나 꼭 필요한 물건 혹은 서비스)이니까요.


'니치 (niche)'는 틈새를 의미합니다. 어딘가에 존재하는 비집고 들어갈 틈을 찾아 파고 드는 겁니다. 이런 틈새시장 (niche market)은 늘 존재합니다. 우리 눈에 쉽게 보이지 않아서 그렇지. 그 틈을 볼 수 있는 눈, 혜안이 필요합니다. 그러러면 열심히 찾아보아야 합니다. 늘 눈을 크게 뜨고, 무엇보다 열린 마음으로 주변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기회를 잡고 그것으로 만족할 만한 결과를 얻으려면 몇 가지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하나, 기회를 기회로 볼 줄 알아야 합니다. 기회는 늘 내 옆을 지나갑니다. 아무런 소리 없이. 그것을 매의 눈으로 알아채야 합니다. 둘, 그것을 잽싸게 낚아챌 수 있어야 합니다. 잘 빠져나갑니다, 잡기가 그리 쉽지만은 않습니다. 참으로 좋은 기회라면 더욱 그렇습니다. 셋, 그러니 평소 준비를 해야합니다. 표내지 않고 슬쩍 지나가려는, 잽싸게 움직이는 그 기회를 잡을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기회는 준비하는 자의 것이라는 말이 그래서 나온 것 같습니다. 넷, 실행해야 합니다. 구슬 서 말, 들고만 있으면 아무 소용없습니다. 꿰어야 합니다, 실행을 해야 합니다. 그렇게 최종적으로 나의 것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서 힘을 아껴두어야 합니다. 너무 일찍 지치지 않도록 힘의 안배를 잘 해야 합니다. 다양한 경험을 하고 많은 기술을 연마해 두어야 합니다. 그래서 이제 때가 왔다 싶으면 그때부터 나의 전력을 다해야 합니다.


오늘의 시를 본다.


이분에게 이런 시가 있다는 것이 내게는 놀랍다. 123년 전에 태어난 분, 14살에 결혼, 할아버지의 광산업을 물려 받아 경영, 자기 사업도 조그맣게, 그 두 가지 다 어려움에 봉착, 결국은 안타까운 죽음, 그의 나이 겨우 서른 둘.


기회

-김소월

강 위에 다리는 놓였던 것을!

건너가지 않고서 바재는 동안

때의 거친 물결은 볼 새도 없이

다리를 무너치고 흘렀습니다.


먼저 건넌 당신이 어서 오라고

그만큼 부르실 때 왜 못 갔던가!

당신과 나는 그만 이편 저편서

때때로 울며 바랄 뿐입니다


# '에지' (edge) - 가장자리, 모서리, 끝, 날카로운 면 (어떤 물건의 테두리나 경계). 날카로운 판단력, 혹은 그를 통한 경쟁우위 또는 우월한 위치. 패션계에서 '에지 있다' 그러면 세련되고 멋있다 뭐 그런 뜻.


# '바재다' - 쉽게 결정하지 못하고 머뭇거리거나 망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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