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이 달린 눈사람을 본 적이 있나요?

- 그때는 그리운 님을 찾아 길을 나설 수 있을까요? 정미조 '눈사람'

by 가을에 내리는 눈

중학교 1학년 때부터 많이 좋아했던 가수가 있었다. 그 누나는 그때 모 유명 여대 미대생이었다. 사실 노래 자체와 그 노래의 가사를 좋아했다. 40년이 넘는 세월이 흘러 몇 해 전 그분이 무려 71세의 나이에 새로운 노래를 발표한 것을 우연히 알게 되었다. 바로 들어 보았다. 좋았다, 이십 대 중반의 그 젊은 목소리도 좋았지만 지금의 목소리는 뭔가 또 다른 맛이 있었다. 창법도 조금은 변했다.


세월의 흐름/깊은 삶의 경험/기쁨과 슬픔/여유로움/이제는 크게 아쉬워하거나 미련을 갖지 않는 달관의 자세/오유지족 (나는 만족을 안다), 그런 많은 스토리가 그분의 그 노래 속에 들어 있었다. 재즈풍 느낌이 살짝 묻어나는 믹싱과 멜로디는 묘하게 상반되며 또 그리 묘하게 어울리는 맛을 주었다.


가수, 화가, 미술학 박사, 대학교수, 그분의 그 자유로운 영혼과 용감한 선택, 자신의 삶의 여정에 미리 한계를 긋지 않는 도전이 부러웠다. 중학생 때의 내가 알고 생각하고 좋아하던 그 젊은 누나와는 당연 괄목상대, 엄청 큰 사람이 되어 있었다. 돌연 한창 잘 나가던 가수 활동을 접고 미술을 위해 파리로 떠나간 그 젊은 누나가 그때는 잘 이해되지 않았다. '물 들어올 때 노 저어야 하는 것 아닌가? 더구나 여기는 연예계인데? 그 생명력이 그리 긴 것은 아닌데?' 그런 생각을 그때 나는 했다.


그 가사를 잠깐 본다. 나는 눈사람이다, 밤새 하얀 눈이 펑펑 내린다. 내가 아침에 잠에서 깨었을 때 내 사랑하는 사람이 문 앞에 떡하니 서있으면 좋겠어, 정말 좋겠어. 그런 바람과 기대 속에 나는 꿈나라에 가고 드디어 설레는 마음으로 잠에서 깨었네? 벌컥 문을 연다, 그런데 그 사람은 없네? 오지 않았네? 혹시 길을 잃을까 밤새 불도 밝혀놓았건만?


그는 왜 오지 않은 걸까? 오지 않은 걸까 올 수가 없었던 것일까? 그럼 이제라도, 나라도 그를 찾아 나서볼까? 그럴까? 아 참, 나는 그럴 수가 없지. 나는 발이 없는 눈사람이지! 가만, 나는 왜 발이 없는 거지? 내가 원치않아서일까 아니면 내게는 필요 없다고 아예 발을 만들어주지 않은 것일까?


발이 있었다면 과연 나는 그를 찾아 나섰을까? 그럴 수 있었을까? 지금은 어떻게 생각해? 그러고 싶어? 그럴 거야? 그가 나를 만나고는 싶어 할까? 만나는 줄까? 괜히 문전박대, 서로 어색한 상황만 연출되는 것 아니야? 차라리 아니 간만 못하게? 나는그것까지 감내할 준비가 되어있나? 내가 그리 용감한 사람이야?


이내 오그라든다 - 나는 갈 수가 없다고, 나는 눈사람이라고, 그러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그저 기다리는 것 뿐이라고! 그래서 이리 기다린다고, 앞으로도 눈 내리는 날에는 죽 그렇게 길에 불을 밝히고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고.


수필가 피천득님의 수필 '인연' 중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그리워 하는데도 한 번 만나고는 못 만나게 되기도 하고 일생을 못 잊으면서도 아니 만나고 살기도 한다" 거기에 나오는 아사코라는 이름과 함께 오랫동안 내 마음속에 들어앉아 있는 아름다운, 가슴 시린 말이다.


이 아름다운 문장이 사실 내 삶에서 흔들리는 나를 그때마다 마지막 위기의 순간에 꼭 잡아준 고마운 경우가 되었다. 지금도 그렇다, '(일부러) 아니 만나고 살기도 한다'.


중학교 3학년을 마치고 이제 고등학교 입학을 기다리고 있던 어느 해 1월, 나는 큰 수술을 받게 되었다. 세 달 정도 학교에 가지 못했다. 무려 세 달을 출발부터 뒤진 것이다. 공부에는 그래도 자신이 있었던 나였는데, 그 세 달의 공백은 참으로 나를 힘들게 했다. 시험에서 거의 틀리는 것이 없었던 나인데, 모르는 것이 아는 것보다 더 많았다. 특히 암기과목이 그랬다.


그 와중에 나를 흔드는 것이 또 있었다. 병원에 있을 때 나를 간호해 준 간호사 누나의 존재였다. 아마도 살아가면서 '여성'의 존재를 느낀 것이 그때가 처음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당연 나 혼자 '달이 떠서'. 퇴원 후에도 수시로 생각이 났다. 그때마다 만나러 갔다. 그 누나는 그냥 만나준 것이겠지, 어린 나를. 밤에도 생각이 나고 수업 중에도 어른거렸다. 그야말로 이중의 위기였다.


깨달은 바가 있어 어느 날 결심을 하고 그날 이후로는 단 한 번도 만나러 가지 않았다. 시간은 역시 약이었다. 뒤떨어졌던 학과공부도 다시 따라잡았다. 예전의 나로 돌아온 것이다. 그렇게 해서 나는 원하는 대학 원하던 학과에 갔다. 입학식 후 내가 제일 처음 한 일은 그 누나를 만나러 간 것이었다. 두근두근 설레는 마음으로. 이제는 더 이상 어린 중학생 고등학생도 아니었고, 어엿한 대학생의 신분이었다. 이제는 아무런 장애도 없을 것 같았다.


장애물은 바로 내 안에 있었다. 참으로 그분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몇 년을 내가 참아내며 머릿속으로만 그려왔던, 아니 언제부터인가는 그 '생각'이라는 것조차 하지 않으려 애썼던 그분이 아니었다. 나를 보고 여전히 환하게 웃어주던 그 누나를 보는 순간 내 마음에 들어온 현실적인 느낌이었다. 반가운 재회의 시간을 가졌다, 물론 좋았다. 그러나 그냥 그것이었다. 그 후 나는 그 누나를 다시 만나지 못했다.


그날 집으로 돌아와 내가 가슴에서 다시 꺼낸 문구가 바로 이것이었다 - '일생을 못 잊으면서도 아니 만나고 살기도 한다' 때로는 아니 만나는 지혜가 필요하다. 그러면 추억 속의 그 아련한 아름다움은 그냥 그렇게 온전히 내게 남는다. 그 가치와 의미는 우리네 이 험한 삶에서 참으로 귀하고 소중한 것이다. 그런데 과거에 익숙한 그 습관성이, 충분히 사려 깊지 못한 경솔함이, 귀한 것을 귀하게 지켜내지 못하는 우리의 짧은 생각이 그것을 단 한 방에 날려버린다. 한번 간 것은 다시 오지 않는다, 그런 아름다운 추억은!


눈사람에게 발이 없는 이유다.


하나, 차라리 발이 없어 가지 못한다고 그 눈사람에게 말할 구실과 핑계를 주기 위함이다. 눈사람의 이런 아쉬운 듯 말하는 호소에 그 누구도 뭐라 할 수 없다. 발이 없는데? 뭘 더 어쩌라고?


둘, 뜨악한 어색함을 막기 위함이다. 간들, 가서 정작 만난 들, 그래서 뭐? 차라리 아니 만난 것이 몇 배는 더 좋았을 그런 상황은 우리 삶에 많다. 선인들의 지혜다, 눈사람에게 발을 만들어 주지 않은 것은.


셋, 고운 눈사람을, 새하얀 그 순백의 눈사람을 그렇게 곱게 고이 지켜주기 위함이다. 자, 발이 있다, 먼 길을 떠난다, 가는 사이 눈은 거의 다 녹고 온갖 험한 모습들이 그대로 드러난다, 보는 눈사람 자신도 당황스럽다. 그 사람을 만났다고 치자, 보지 못하던 모습의 지금의 눈사람의 몰골을 보는 그는 또 어떤 심정이겠나? 나 한 사람 보겠다고 여기까지 그 먼 길을? 그래서 저런 모습이 되어서? 나는 뭐 어쩌라고? 내가 과연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 더욱 가슴 아파진 나, 그것 외에 뭐가 남나?


넷, 이런저런 이유로 발을 만들어준들 눈사람은 그 발로 자기 몸 하나 유지할 수도 없다. 그 무거운 신체를 달랑 눈으로 만든 작은 발 두 개로 어찌 견디고 지탱하겠나? 날이 푸근해져서 눈이라도 살짝 녹으면? 이내 와르르, 끝! 눈사람이 이미 알 것이다, 그래서 굳이 발을 가지고 싶다는 생각도 하지 않는 것이다. 발을 만들어 달라고 신에게, 섭리에게 자연에게, 아니 인간들에게 청하지 않는 것이다. 눈사람이 우리보다 훨씬 현명하고 현실적이다.


오늘의 시, 노래의 가사는 이미 위에서 보았다. 노래도 한 번 들어보시고 그 전에 가사를 음미해 보시기를. 이 가수의 그 노년의 그윽한 영혼의 목소리를 들어보시기를. 제가 오늘 주저리주저리 늘어놓은 개똥철학도 살짝 곱씹어보시기를!


발이 없는 눈사람이 발 달린 눈사람보다 훨씬 아름답다, 그 외양도 그 영혼도 그녀의 명예와 우아함도! 그래서 눈사람에게는 발이 없는 것이다, 기다리는 외통수 그 고고함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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