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저 당신의 선택. 마음관리 얼굴관리, 내 책임. 장석주 '석불'
젊음보다 아름다운 것은 없다. 진심으로 하는 말이다. 상투적인 수사적 표현이 결코 아니다. 나이 들어서야 비로소 깨달은 단순한 진실이다. 늙음은 달리 말하면 미워지는 과정이다. 자연이 그렇게 만든다. 애초의 약속일지도 모른다. 늙는다는 것 자체가 추함과 그리 멀리 떨어진 것은 아님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자연은 늘 이렇게 너그러운 존재인가, 그런데 반전이 있다. 늙어가면서도 여전히 우아한 아름다움을 지니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예외적 존재들이다. 오늘 아침 이곳에서 산책을 하다가 참으로 예쁘게 늙어가는 여인을 만났다. 서로 잘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얘기도 했으니 그냥 슬쩍 지나치며 본 것은 아니다. 오십 대의 끝? 아니면 육십의 초반? 영화 속에서 보았던 이 나라 전통적 여성의 그 상이다. 키도 크고 얼굴의 선도 예뻤다. 긴 머리는 여전히 검은 색이고 중간중간 흰색의 흐름이 드러나 있다. 충분히 고고하고 충분히 우아했다. 매력적이었다. 말이 통했다면 조금 더 얘기하고 싶었다. 나의 산책길이니 내일 아침에도 그 시간 그 길을 갈 것이다. 혹시 아나, 다시 만나게 될지?
러시아 인접 국가에 장기간 머무를 때의 일이다. 그 나라에는 구 소련 시대에 건설된 메트로가 있다. 노선은 단순하고 운행거리는 아주 짧다. 지하철을 기다리는 노부부를 보았다. 러시아 사람처럼 보였다. 그곳 토착 종족은 아닌 듯 했다. 지하철을 탄다, 그들은 자리에 앉는다. 앉자마자 육십 대 중반의 그 여인은 작은 손가방에서 조그만 책을 꺼낸다. 심하게 흔들리는 객차 안에서 그 책을 본다. 정말 다소곳하게. 꽃무늬 머릿수건을 쓰고 부끄러움 많은 십 대 소녀처럼 그렇게. 내가 가까이 가서 남편인 듯 보이는 사람에게 사진 한 장 찍어도 되겠느냐는 제스츄어를 한다. 웃으며 흔쾌히 그러라고 한다. 아주 심하게 흔들리는 지하철에서 나는 서둘러 사진 두 컷을 찍었다. 아름다운 사진이었다.
혼날 얘기일 수도 있는데 그래도 하겠다. 일반적으로, 물론 내 주관적 관찰이지만, 동양 사람들은 나이 들어가며 많이 험한 인상으로 변한다. 이유는 모르겠다. 내가 서양인들의 얼굴을 제대로 읽어내지 못하는 탓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점을 고려한다 해도 여전히 동양 사람들은 아름답지 못하게 나이 드는 경우가 많다. 때로는 무서움까지 느껴진다, 얼굴과 그 행동에서, 말에서까지. 안타깝다.
나는? 나 또한 다른 사람이 보면 별반 다르지 않다고 할 것이다. 안다, 그래서 더 노력한다.
나는 지금도 이런 마인드 컨트롤을 쓴다 - 누군가가 길을 가는 나를 본다, 유심히 관찰한다. 그저 그때의 나의 얼굴 표정, 내 인상을 기초로 내게 좁을 줄지 말지를 결정한다. 바로 그 자리에서! 말을 나눠볼 수 있다면 그나마 만회의 기회가 있다, 나를 어필할 수 있다. 그런데 그런 과정은 없고 단지 멀리서 아니면 좀 더 가까이에서 관찰한 나의 첫 인상만을 토대로 모든 결정을 내린다.
좁이 아니라 이 사람에게 천국의 문을 열어줄까 말까를 결정하는 자리라면? 무서운 일이다! 이런 상상은 의외로 효과가 있다. 그래서 늘 그런 마음으로 길을 걷는다. 표정을 관리한다. 어느덧 나의 얼굴도 그렇게 자리를 잡는다.
'남자 나이 40이 넘으면 자기의 얼굴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 미국의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이 한 말이란다. 어디 남자만 그렇겠나? 그 사람의 얼굴에는 그 사람이 살아온 이력이 빼곡하게 사실 그대로 적혀있다는 말이리라. 공감한다. 물론 부잣집 아들로 순탄한 삶을 살아왔는지, 아니면 어려서부터 많은 고생을 한 사람인지 그것도 어느 정도 알 수 있다.
하지만 여기서 링컨이 하는 말은 그저 윤기나는 얼굴, 여전히 고운 손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그 사람의 얼굴이 풍기는 전반적인 느낌, 인상이다. 선함과 너그러움의 정도가 바로 얼굴에 그대로 나타난다. 나이 든 사람의 얼굴에서는 더욱 분명하게 드러난다. 쉽게 속일 수 없다. 아니 속일 수만 있다면 그것도 괜찮다. 그것 또한 자기 얼굴의 성공적 관리이니까. 지금 우리가 말하는 것은 바로 그것이니까. 그런데 그럴 수가 없다.
사진으로 보는 링컨 대통령의 얼굴. 결코 잘생긴 얼굴은 아니다. 오죽하면 수염을 기르라고 했으까? 하지만 그의 얼굴에서 악함이 느껴지는가? 긴 코에 쑥 패어 들어간 눈과 볼, 꽉 다문 입. 그러나 그의 그 얼굴에서 속임수에 능한 사람의 모습, 자기 이익만을 앞세우는 인물, 젊을 때 여러 사람 힘들게 한 이력, 거짓과 권모술수의 흔적은 읽을 수 없다.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 이 글을 쓰며 다시 보는 그의 얼굴 또한 그렇다. 나이가 드니 사람 보는 눈은 좀 생긴다. 거의 크게 틀리는 일은 없다. 내가 보고 읽은 그 인상이, 그 해석이 결국은 맞아가는 경우가 아주 많다. 내가 사람을 잘 보는 재주가 있다는 것이 아니라, 그만큼 사람의 얼굴에는 그 사람의 모든 것이 드러난다는 말이 맞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이제 시를 본다.
짧지만 시골의 옛 정취를 떠올리게 하는 예쁜 시네요. 비 오는 날이 배경이라 저는 더 좋아요. 비 내리는 날의 시골집, 그저 서로 의지하며 건강한 구릿빛으로 늙어가는 노부부, 찐 감자 몇 개를 앞에 놓고 열무김치 국물 삼아 점심을 드시고 있군요. 무료한 듯 보여도 아니요, 그분들에게는 모처럼 자연이 주는 휴식의 시간이지요. 오늘 쉬어야 내일 날이 개면 또 일을 하지요.
아쉽지만 길가 석불의 그 얼굴을 읽어볼 기회는 없네요. 저는 불상의 그 미소가 늘 그리 좋아요. 그런 석불이 둘인지 아니면 그 빗속에 길을 가는 노인이 둘임을 말하는 것인지. 그것이 더 자연스러울 듯해요. 드디어 잠시 비를 피할 곳을 찾은 두 노인. 저는 이들이 남편과 아내, 부부였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그것이 더욱 시적이기도 하구요. 다만 그렇다면 비에 온 몸이 다 젖은 노부부의 모습이 처량하고 안타깝고 그러네요. 그나마 잠시 비를 피하고, 점심으로 먹을 찐 감자도 있으니. 마실 물은 챙겨 오셨나? 농주 같은 진한 막걸리라도 들고 왔으면 좋으련만. 목도 축이고 마음도 축이고 위장도 든든하게 채우고.
비는 그치지 않고 그 두 노인은 그렇게 종일 내리는 비를 내다봅니다. 아, 그렇다면 이제는 집에 와있는 것이군요. 그 비를 맞고 집까지 오셨구먼. 당장 비 그치지 않아도 뭐 별 탈은 없겠네요. 그것 좋구먼! 집에 마실 물도 있을 것이고 늘 힘들게 일하는 남편을 위해 아내가 담궈놓은 막걸리도 있을 것이고. 그저 방문을 열고 내리는 비나 두 분이 바라보면 될 것이니. 밭 일이야 내일 하면 되고.
석불
- 장석주
죽산 가는 길목,
머리 없는 석불
둘이 서서 비에 젖는다.
사그막골 두 노인네
점심 끼니로 찐 감자 두어 개
종일 오시는 비나
내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