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돌아온 탕자'가 부럽다

- 돌아갈 곳이 있는 자의 행복. 하청호 '아버지의 등'

by 가을에 내리는 눈

비즈니스 클래스를 타고, 항공사 측에서 정말 신경 써서 골랐다는 특급 와인을 기내에서 마시고, 뉴욕 5번가 최고급 호텔에서 자고 그런 일정 뒤에도 결국에는 내가 사는 집으로 돌아와 가족들과 함께 하는 평범한 저녁 식사가 몇 배는 더 좋다. 식탁 옆 창밖으로 보이던 성수대교는 덤이었다. 우리에게는 돌아가 쉴 수 있는 마음 편한 나의 공간이 최고다.


이 나라 저 나라를 '떠돌다 보면' 이런 그리움이 더욱 강하게 몰려온다. 그래도 그런 꺼내먹을 수 있는 아름다운 추억이 있으니 다행이다. 도스토예프스키의 말처럼 힘들 때 꺼내어 음미할 수 있는 예쁜 어릴 적 기억 몇 개만 있어도 우리 삶은 충분히 살 만하다.


어느 시인의 시 중에 '(박꽃이 하얗게 필 동안)... 사람은 잠들고 ... 뜬소문도 잠들고 담비들은 제 집으로 돌아와 있다'라는 구절이 있다. 호랑이가 사라진 지금의 이 한반도 최상위 포식자라는 그 담비조차도, 새끼들이 있는 자기 집으로 돌아와 평화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오늘 하루 얼마나 많은 피식자들을 잡아댔을까? 그러나 지금은 그에게도 그저 휴식의 시간, 몸과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시간, 그런 공간 '제 집'.


예이츠가 늘 마음에 그리던 어린 시절의 고향 아일랜드 슬라이고주의 작은 호수섬 이니스프리도 그렇고, 빅토르 위고의 어린 딸이 묻혀있는 작은 묘지도 그렇고, 프랑스의 시인 기욤 아폴리네르에게 있어서의 미라보 다리도 그렇고, 나의 경우 외국에 사는 아들 녀석의 집 그 전망 좋은 22층 거실에서의 풍경도 그렇고, 누구에게나 가고 싶은, 돌아가고 싶은 그런 공간이 있다. 그곳에는 추억이 있고 그래서 늘 어디서나 그리움이 있기 때문이다.


나의 대학 3학년 이후로는 아버지의 집이라는 공간이 내게서 사라졌다. 늘 그것이 아쉽고 안타깝고, 서럽기까지 했다. "아, 이제 내게는 돌아갈 아버지의 집은 없구나!" 궁하면 더욱 궁하게 느껴지는 법, 남의 손에 있는 떡은 더욱 크게만 보이고 내 손에 넣을 가능성이 적은 물건과 사람은 그래서 더욱 아쉬운 미련으로 내게 다가온다. 인생이 그렇다.


렘브란트의 그림 '돌아온 탕자'가 있다는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에르미타시 박물관에 꼭 한 번 가보고 싶은 생각이 간절한 이유였다. 지금은 그 생각은 접었다. 나이 들면 현실을 파악하는 능력은 젊을 때보다 좋아진다. 감정의 영향을 제대로 배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만큼 꿈이 없어지고 호기심이 사라지고 사는 멋이 줄어들었다는 얘기다.


좀 옆으로 새는 것을 허락하신다면, 렘브란트는 집 테크를 제대로 하지 못해 평생 금전적 어려움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람이다. 이유는 모르겠으나 자신에게 과도한 집을 구매하고 그것 때문에 늘 돈에 쪼들린 사람이다. 결국 생의 마감 때까지 그랬다. 그는 유난히 성화를 많이 그렸다. 그의 사실주의적이고 세밀한 화풍은 성경 속의 얘기를 그림으로 옮길 때 더욱 두드러진다. 그만큼 보는 사람들에게는 설득력이 있고 깊은 감동을 준다.


그의 그림 '돌아온 탕자'의 주인공은 물론 둘째 아들 그 탕자다. 그의 까까머리 뒷모습, 다 닳은 슬리퍼, 남루한 옷이 기억에 남는다. 그 그림 오른쪽으로 잔뜩 못마땅한 얼굴로 자기 동생을 경멸하듯 내려다보는 형의 모습도 내게 강한 인상을 주었다. 하지만 내가 그 그림을 좋아하는 것은 바로 그의 아버지의 모습 때문이다. 얼굴 표정은 물론이고 작은 아들을 감싸안는 아버지의 두 손, 따뜻함이 그대로 느껴진다. 사랑과 기쁨과 만족이 가득하다. 물론 성경에 나오는 그 아버지의 그때의 말을 읽으면 이런 감정은 더욱 증폭된다. 그것이 우리네 아버지다.


오죽하면 도스토예프스키가 죽음 직전 아내와 아이들이 있는 자리에서 딸에게 탕자의 귀환 부분 (누가복음 15장)을 읽어달라고 했겠나? 자신의 아버지와의 화해의 메시지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아버지는 모스크바대학에서 의학을 공부하고 군의관으로 일했던 의사였다. 그후 아버지는 어느 가난한 지역 병원에서 일했다. 아버지는 대단히 엄한 성격의 인물이었고 이것이 도프토예프스키의 유년시절을 힘들게 했다. 아버지와의 관계는 평생 좋지 않았다. 아마도 도스토예프스키는 죽기 전 아버지와의 관계에 대해 많은 아쉬움을 느낀 듯하다.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의 시 '작은 호수섬 이니스프리'에는 첫 부분부터 이런 시구가 나온다. '나는 이제는 일어나 가리라 (arise and go)'. 이 구절은 뒤쪽에서도 반복된다. 어디서 읽은 기억이 있다 이런 분들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 바로 성경 여기저기에 나온다. 탕자의 귀환 얘기에서도 나온다. 둘째 아들이 이렇게 말한다. "그래 나는 이제 일어나서 갈 거야, 내 아버지가 있는 곳으로 갈 거야."


우리가 무언가 새로운 것을 하려면, 마음 굳게 먹고 어떤 일을 하려면 우선 내가 누워 있던 자리 혹은 앉아 있던 자리에서 분연히 일어나야 한다 (arise). 그것이 시작이다. 자 이제 일어섰으면 나의 길을 향해 가야 한다 (go). 성큼성큼 힘찬 발걸음을 내디뎌야 한다. 일어서서 가는 것, 그래야 나는 내가 원하는 곳으로 갈 수가 있다.


그의 아버지가 참으로 대단한 사람이다라는 생각을 다시 하게 하는 부분이 바로 여기였다. 아무리 굶어 죽어가게 생겼어도 이런 꼴로 아버지에게 돌아간 들 어떤 취급을 받겠나? 내 아버지를 오래 봐와서 알지. 차라리 이렇게 여기서 죽는 것이 낫지. 이리 생각할 가능성이 높다. 그 둘째 아들이 유독 얼굴이 두꺼워서 그런 것은 아니다 나는 그렇게 본다. 애초 유산을 미리 달라는 작은 아들의 요구를 그대로 받아준 것도 그 아버지다. 분명 생각이 있었을 것이다. 아들의 의견을 존중한 것이었든 곧 일어날 일들을 미리 내다본 것이든 아버지는 그 아들의 청을 들어주었다. 이번에 거지 중의 거지 꼴로 돌아오는 아들을 맞는 그분의 모습을 보라. 쉽지 않은 태도다. 여러분이 그 아버지의 입장이었다면 어찌 했을 것 같은가? 과연 단 한마디의 싫은 소리도 없이 그저 기쁨의 눈물 속에 그리 반길 수 있었겠나? 결코 쉽지만은 않은 일이다.


이런 아버지를 둔 것 역시 그 작은 아들의 복이다. 아마도 전생에 나라를 몇 번 구했을지도 모른다. 아버지도 그 둘째 아들도, 그리고 결국에는 큰 아들도 이렇게 셋이서 참으로 좋은 삶을 보냈을 것이라 나는 그리 생각한다. 여기 멀리 다른 나라에 앉아있는 나의 눈에도 그게 보인다. 우선 아버지가 좋은 아버지다. 작은 아들은 정말 다른 사람이 되었을 것이다. 자신도 예상하지 못한 그 놀라운 너그러움으로, 그 진실한 기쁨으로 자신을 반기는 아버지의 모습은 그를 다른 사람으로 만들기에 충분하다. 큰 형도 그 달라진, 달라지는 동생의 모습을 확인할 것이다. 그래서 마음을 풀었을 것이다. 그것이 형제다. 더 무엇이 필요하겠나 그 세 부자의 행복한 삶을 위해!


내가 성경의 그 구절을 좋아하는 이유, 내가 렘브란트의 그 그림을 좋아하는 이유, 내가 상트페테르부르크에 한 번은 꼭 가고싶어했던 이유다. 그림은 위대하다, 시는 위대하다, 음악 또한 위대하다. 어떤 경우에는 삶의 이유가 되기도 하고 종종 살아갈 힘이 된다. 위로가 되고 동무가 된다. 오늘 나는 이 세 가지를 다 보았다, 그림 시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음악 몇 곡.


기분 좋게 이제 시를 본다. 늘 땀 냄새가 났던 아버지의 등. 당신의 어머니 돌아가셨을 때도 울지 않았던 나의 아버지. 그때도 그저 땀 냄새만 났다. 그런데 이제 내가 커서 아버지가 되어보니 알겠다. 그 어떤 힘든 일, 슬픈 일이 당신에게 닥쳐도 그분은 속으로 운다는 것을. 자식들에게조차 당신의 눈물을 보이지는 않으신다는 것을. 그렇게 언제나 속으로만 우시는 분, 아버지 등의 땀이 사실은 당신의 그 눈물이었음을, 그래서 그리 땀 냄새가 났다는 것을. 아버지 눈물의 냄새! 고맙고 그리운 나의 아버지의 냄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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