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각 없음, 오직 나, 그러니 그 한계. 임길택 '똥 누고 가는 새'
우리나라의 발전상은 사실 다른 나라들을 좀 둘러보고 나면 금새 알게 된다. 일상 속의 인프라가 참으로 편리한 나라. 거미줄 같은 지하철이 그렇고 마을버스, 대중 버스가 그렇고 안내 시스템이 그렇다. 백화점이나 대형 마트의 서비스 수준은 그저 입이 떡 벌어질 정도다.
지하철 공간 안쪽으로 들어가 보면 더욱 놀란다. 그 안의 상점들, 깨끗한 공간, 객차 안의 이런저런 다양한 서비스들. 세계 어디서도 쉽게 볼 수 없는 것들이다. 한국 사람들이 외국에 가면 사회 전반의 서비스 수준의 차이를 금새 느끼고 불편함을 토로하는 이유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그것이 일상인데? 지금껏 죽 그렇게 살아왔고 앞으로도 상당 기간 그럴 것인데? 뭐가 어떻다고 불만을 얘기하나? 어디 천국에라도 살다가 왔나? 그렇다, 내가 경험한 몇몇 나라들과 비교한다면 정말 한국은 천국이다, 생활 속 편리와 고객 왕의 천국!
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최고는 후한 화장실 인심이다. 서울에서 화장실 때문에 걱정할 이유는 없다. 지하철 역사 곳곳에 깨끗한 화장실, 은행이나 웬만한 건물 내의 화장실, 호텔 화장실은 물론이고. 이렇듯 화장실에 대해 관대하다.
터키 이스탄불에는 갈 수 있는 공용 화장실이 없다. 다 유료 화장실이다. 그리 비싼 가격은 아니니 그나마 있는 것만 해도 다행이다. 조지아의 수도에서는 그런 유료 화장실도 거의 없다. 다른 나라를 오고 가는 대형 버스 터미널에도 겨우 한 곳 유료 화장실이 있었다. 지하철 역사 어디에도 화장실은 없다. 물론 구 소련 시절 건설된 것이니 이해는 된다. 그럼 무슨 대안이 있어야 하지 않겠나? 대형 호텔도 별로 없으니 그것도 큰 도움은 안 된다.
어찌 이리 대책이 없을까? 아무런 생각 자체가 없는 것이리라. 배려가 없는 것이다. 가만히 러시아 인접의 그 나라를 생각해 보면 비단 화장실만 그런 것이 아니다. 사회 시스템 거의 모든 것이 이런 식이다. 안타까운 일이다. 나야 잠시 머물다 가는 사람이지만, 평생을 거기 사는 사람들은? 서로를 위해서라도 서로 조금은 생각이라는 것을 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그런데 안 한다. 오늘만을 사는 사람들 같다. 자기 행동이 옆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까 생각하는 법이 없다. 그저 그 순간 그 자신만을 생각한다.
아직은 그 나라에 대단위 아파트 단지는 별로 없다. 1년 쯤 그런 대형 아파트 단지에 산 적이 있다. 개별 주택이나 작은 규모의 빌라 같은 곳에 살 때의 모든 불편과 위험요소가 거기 한 곳에, 대단위로 집합되어 있다고 보면 된다. 소음도, 악취도, 예의 없는 사람들을 만날 그 경우의 수도 그만큼 크다.
그 나라에는 아직 대부분의 공동주택에서 관리비라는 개념이 없다. 그런데 유독 이런 대형 단지에는 그게 있다. 결코 적은 금액이 아닌데 왜 받는지 끝까지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엘리베이터 비용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액수가 컸다. 그냥 받는다. 그러니 대부분 내지 않는다. 그래도 강제할 수단은 없다. 전기료와 연동된 것도 아니고 수도료와 연동된 것도 아니다. 다만 관리비를 내지 않으면 엘리베이터를 이용할 수 없다. 그런 경우 누구 다른 사람이 엘리베이터를 탈 때까지 그냥 기다린다. 그렇게 얻어 탄다. 그런 사람들이 꽤 있었다. 안타까운 일이었다.
다시 화장실 얘기로 돌아간다. 그러니 그런 나라에서 집을 나설 때는 나의 동선과 예상 소요 시간을 항상 계산한다. 자칫 낭패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방법이 없다. 까르프 같은 대형 마트에 가면 있다. 하지만 큰 동네에 하나 있을까 말까 한 대형 까르프.
예전에 이스탄불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 아침 산책 중에 소변이 급한 상황이 되었다. 유료 화장실을 찾는데 눈에 보이지 않는다. 어느 레스토랑에 들어가 물었다. 어디 이 근처 유료 화장실 없냐고. 대뜸 이런다. 우리 집 화장실 쓰라고. 바로 저 뒤쪽에 있다고. 터키 사람들이 가끔 이렇게 쿨하다.
영국에서는 당연 거의 모든 곳이 유료 화장실이다. 운좋게 맥도널드라도 찾으면 거기는 무료. 런던의 헤롯백화점은 28년 전에도 유료였다. 그 당시 1파운드 그러니까 1,500원이었으니 결코 싼 가격은 아니었다. 그래도 그 값은 한다는 생각을 하면서 화장실을 나오게 된다. 런던의 유스턴역 같은 초대형 기차역에서 발견하는 화장실도 유료다.
아, 관람이 무료인 내셔널 갤러리나 테이트 브리튼 같은 그 멋진 예술의 공간은 화장실 역시 무료다. 뭐 그래서 런던 갈 때 그 두 곳을 반드시 들르는 것은 아니다. 몇만 원을 받아도 돈 내고 들어갔을 세계 명화의 보고. 과거의 그 흑역사가 어떻든, 아무튼 오늘을 사는 사람들에게는 멋진 나라다.
갈 때와 올 때 걸어오는 템즈강 옆의 조용한 길은 그저 덤이다. 내가 좋아하는 가수 아델의 노래라도 들으면서 걸으면 더욱 좋다. 우리나라와 달리 개들을 데리고 산책 할 수 있는 곳이 엄격하게 제한되어 있다. 그것 또한 나는 정말 좋다. 서울에서는 사람들의 공간인지 개들의 공간인지 모를 때가 자주 있었기 때문이다. 우선은 사람들 먼저 아닌가? 인간의 세상 아닌가?
지금 있는 이곳은 소변의 욕구에 관한 한 여러 이유에서 한결 편하다. 우선 내가 가는 곳이 뻔하니 그 경로상의 지리에 익숙하다. 대형 마트에는 화장실이 있다. 제법 큰 호텔들도 몇 개 있어서 역시 그곳 화장실을 쓸 수 있다. 이도 저도 아니고 정 급할 것 같으면 염치 불고하고 대담하게 '자연 속 화장실'을 이용하면 그만이다. 이곳에서는 아직도 사람들이 자주 그렇게 한다. 물론 남자들만. 그런 모습 많이 보았다.
시를 본다.
때는 가을인가 보다. 시인은 화려하게 물들어가는 앞산을 바라본다. 그때 날아가는 새 한 마리. 유료 화장실 무료 화장실, 아니 공식적인 화장실의 존재 여부를 따질 이유가 없다. 모든 곳이 그의 화장실이니까. 시인의 집 마당을 포함해서.
시인은 그때 문득 깨닫는다, 아 내 집 마당조차 진정한 나의 것은 아니구나. 저리 하늘에 날아가는 새도 내게 말 한 마디 없이 그저 자기의 자연 욕구를 쉽게 채우고 가는 것을 보니. 그동안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었구먼. 나의 이 공간 역시 산언덕 한 모퉁이에 불과한 것을.
그 새는 자기 땅 남의 땅, 여기는 내 영역이니 넘어오지 마 하면서 금을 그을 것도 아닐 것이니. 모든 곳이 자기 구역 혹은 그 어느 곳도 자기만의 것은 없든지. 그 새는 과연 어찌 생각하고 있으려나?
직접 읽어보시라고 여기 굳이 적는다.
똥 누고 가는 새
- 임길택
물들어가는 앞산바라기 하며
마루에 앉아 있노라니
날아가던 새 한 마리
마당에 똥을 싸며 지나갔다.
무슨 그리 급한 일이 있나
처음엔 웃고 말았는데
허허 웃고만 말았는데.
여기저기 구르는 돌들 주워 쌓아
울타리 된 곳을
이제껏 당신 마당이라 여겼건만
오늘에야 다시 보니
산언덕 한 모퉁이에 지나지 않았다.
떠나가는 곳 미처 물을 틈도 없이
지나가는 자리마저 지워버리고 가버린 새
금 그을 줄 모르고 사는 그 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