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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증은 마치 보이스피싱 같다.

난 절대 안 걸릴 것 같았다.

by 오공부

어릴 적부터 밝은 아이는 아니었다. 스무 살이 되면 자살하겠노라고 진지하게 다짐하던 초딩이었으니까. 기억이 남아있는 시절부터 인생은 고달픈 것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특별히 불우한 환경은 아니었는데 기질상 그랬던 것 같다.


작년 이맘때 심적으로 큰 위기가 찾아왔다. 물론 원인은 있었다. 하지만 그 원인을 쉽게 털어놓을 수 있었다면 마음의 병이 이렇게 깊어지지는 않았을 거다. 나는 혼자 안고 가려 했고, 끙끙대다 결국 병이 났다. 다른 사람에게 말 못 할 고민이라고 해서 엄청 중차대한 고민이었다는 얘기는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깃털처럼 가벼운 것도 아니었다. 그저 남들이 들었을 때 '음, 그거 정말 고민이겠네.'라고 수긍할 만한 문제였다. 그런데 왜 털어 놓지 못했느냐고?


누구나 자신이 살아온 배경과 가치관이 다르고 어떤 부분을 숨기고 싶어 하는지 다르다. 누군가는 쉽게 털어놓을만한 고민일 수도 있는 걸 나는 그렇게 못했다. 털어놓는 게 부끄러웠다. 트리거는 말 못 할 고민이었으나, 정신을 차려보니 그 고민은 구석으로 밀려나 있고 깊고 어두운 우울이 내 마음을 뒤덮고 있었다.


잠을 잘 수도 밥을 먹을 수도 눈물을 멈출 수도 없는 날들이 이어졌다. 안면홍조가 생겼고 이명이 들렸다. 작은 아픔은 느끼지를 못해서 손에 피가 흐르는데도 알아채지 못한적도 있었다. 살도 눈에 띄게 빠졌다. 아이들에게 화도 내지 않았다. 아이들에게 집중을 해야 화도 낼 수 있는 거였더라. 나는 있지도 않은 힘을 겨우 쥐어짜 내 아이들 밥을 먹이고, 양치를 시켰다. 가끔은 상담도 받고 병원도 갔다. 회사에서는 눈물을 뚝뚝 흘리며 모니터만 바라보고 있었다.


처음 상담센터를 방문했던 때가 생각난다. 상담실로 들어가기 전, 상담사와 눈을 마주치자마자 눈물이 마구 흘렀다. 상담 내내 끅끅 울며 텅 비어있던 휴지통을 가득 채웠다. 그땐 그랬다. 그래서 아무하고도 만날 약속을 하지 못했다. 만나자마자 상대가 울면 그런 봉변이 또 어딨을까 싶어서. 정신과도 갔다. 약을 처방해준다고 해서. 약을 먹지 않아도, 가지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괜찮아지는 부분이 있다고 했다. 그런데 정말 힘들 때는 가지 못했다. 예약을 잡기가 너무 힘들었다. 세상에 마음의 병으로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구나. 놀라웠다. 나 빼고 다 행복한 줄 알았는데.


예약 날이 되었을 때는 코로나 밀접접촉자로 격리 중이어서 가지 못했다. 결국 정말 힘들었을 시기에서 한 달 반 정도 지났을 때 병원을 방문했다. 의사는 약을 먹을 정도는 아니라고 했다. 그땐 그랬다. 잠도 자고, 밥도 삼킬 수 있을 정도로 회복되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천천히 나아지고 있는 듯했다. 가만히 집에 있다가 갑자기 집안 환기를 시켜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창문을 열던 날이 생각난다. 겨울이었다. 창을 통해 들어오던 칼바람에 놀라면서도 기뻤다. 나도 드디어 일상적인 활동을 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그러다 올여름, 다시 마음이 이상해지는 걸 느꼈다. 과거의 트라우마가 다시 올라오고 또다시 그 구렁텅이에 빠진다고 생각하니 덜컥 겁이 났다. 나는 바로 병원에 갔다. 의사는 다시 한번 나를 격려했고, 좋아지고 있으니 잘 견뎌보라고 했다. 그리고 트라우마가 있은지 일 년째가 되면 다시 마음이 힘들어질 수 있으니 참고 삼아 알고 있으라고 했다. 하지만 그 시기가 지나면 정말 눈에 띄게 좋아질 거라고 했다.


나는 지금 터널을 지나고 있다. 이번 겨울을 비장한 각오로 씩씩하게 살아내야 한다. 트라우마와 멋지게 작별하기 위해서. 작년 겨울만큼은 아닐 거라고 의사도 그랬으니까 희망을 가져 본다. 늘 지금이 가장 힘든 시기인 것 같지만, 예전 일기장만 들춰봐도 나는 늘 힘들었다. 회사 때문에, 건강 때문에, 친구 또는 가족 때문에. 몇 년 전 나는 육아로 죽을 것처럼 힘들어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육아가 힐링이고 쉼이다. 세 아이가 동시에 시키는 미션을 정신없이 수행하다 보면 근심 걱정에서 잠시나마 놓여날 수 있다. 살 수 있다.


요즘 나를 힘들게 하는 건, 다른 사람들의 웃는 얼굴과 일상을 사는 모습이다. 도저히 내가 도달할 수 없는 행복의 경지에 나를 뺀 모든 사람이 가 있는 듯하다. 그래서 내가 진단하고 있는 나의 병명은 다음과 같다.


나만 빼고 행복해 보여 병.

나만 빼고 근심 걱정 없어 보여 병.


이런 터무니없는 병에 걸리기 전엔 몰랐다. 옅은 우울이 항상 깔려있었다 뿐이지 밥도 잘 먹고 잠도 잘 자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울고불고할지언정 울고 나면 다시 헤쳐나갈 용기가 솟아나곤 했었다. 그래서 내가 우울증에 걸릴 거라고는 생각을 못했다. 세상 사람 다 걸려도 난 안 걸릴 것 같았다. 나는 아닐 거라고 굳게 믿는 게 마치 보이스피싱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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