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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003] 그렇게까지... 의 기준

누군가의 '그렇게까지...'를 따라갈 필요는 없어.

by 오공부

오이지에게.


안녕, 엄마야.

엄마 회사식당은 2층으로 되어있는데, 1층과 2층의 메뉴가 겹치는 것도 있고 아닌 것도 있어. 그래서 사람들은 식당 앞에서 1층에 갈지, 2층에 갈지 고민을 해. 엄마는 오늘 1층에서 밥을 먹었어. 특별히 마음에 드는 메뉴가 2층에 있지 않은 이상 대부분 1층에서 먹는단다.


그런데 며칠 전 점심시간의 일이었어. 그날 엄마가 좋아하는 열무보리비빔밥이 2층 메뉴라 계단을 오르고 있는데, 글쎄 어떤 사람이 식판을 들고 같이 계단을 오르고 있는 거야. 1층에서 배식을 받고 2층으로 가는 거였어. 아마 함께 먹는 동료들이 2층에 있었겠지. 하지만 자기는 1층에만 있는 메뉴를 꼭 먹고 싶었나 봐. 그때 엄마가 무슨 생각을 했는 줄 알아?


'와... 그렇게까지 할 거 있나?' 였어.


엄마 생각엔 그냥 2층에서 적당히 먹거나 포기할 수 없다면 1층에서 혼자 먹으면 될 텐데, 음식이 담긴 그릇이 잔뜩 올라가 있는 쟁반을 들고 굳이 계단을 오르는 게 이해가 되지 않았지.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그 사람에겐 그 행동이 '그렇게까지' 힘들거나 번거로운 일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누구나 '그렇게까지 할 필요 있나?'라는 생각을 할 때가 있어. 하지만 모두가 같은 상황에서 그런 반응을 하진 않을 거라고 생각해. 각자의 '그렇게까지'의 기준이 있으니까.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고 나니까 아까 식판을 들고 계단을 오르던 사람을 유별나다고 여겼던 내 모습이 부끄러워지더라. 그리고 엄마가 누군가에게 '그렇게까지 할 필요 있어?'라는 눈총을 받았던 일이 떠올랐어.


오를 낳고 초보 엄마였던 시절, 연고가 없는 도시로 이사를 가게 되었는데 그때 한 지인이 자신이 속해있는 뜨개 모임에 나를 초대했어. 아이랑 단둘이 있는 낮시간에 함께 뜨개질도 하고 맛있는 것도 나눠먹자는 선한 의도였지. 엄마는 뜨개질엔 소질도 관심도 없었지만 지인의 마음이 고마워서 참석하기로 했어. 그렇게 나가게 된 자리에서 뜨개질을 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데, 당시 엄마는 천 생리대를 사용하고 있었고 자연스럽게 그 이야기가 나오게 되었어. 그런데 천 생리대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이 어땠는 줄 알아?

"굳이 생리대를 빨아 써야 돼?"

"그냥 사면되지, 왜 그렇게까지..." 였단다.

엄마는 공감은커녕 별난 사람 취급을 받는 것 같아 마음이 상했지만 티를 내진 않았어. 하지만 그 순간부터 마음이 멀어졌고 결국 그 모임을 나가지 않게 되었단다. 속으로 '굳이 뜨개질을 해야 하나? 사서 쓰면 되지.'라고 구시렁대면서 말이야.ㅎㅎ


사람마다 자기만의 '그렇게까지'라는 보이지 않는 기준이 있는 듯 해. 누군가는 뜨개질하는 행위에서 기쁨을 느끼고 그 결과로 목도리나 스웨터 같은 작품이 탄생하니 보람되고 의미 있다고 여길 거야. 그렇지만 생리대를 빨아 쓰는 수고는 하고 싶지 않을 수 있어. 또 누군가는 건강과 환경을 생각해서 천 생리대를 사용하고 그에 따르는 세탁, 건조 과정을 기꺼운 마음으로 수행할 수 있지만, 뜨개질로 목도리와 스웨터를 만드는 수고를 들이느니 예쁘게 만들어진 걸 사서 쓰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단다. 이런 다른 생각들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거야.


그러니까 너희들도 누군가가 '그렇게까지...?' 하는 표정으로 너희를 보더라도 '내가 잘못되었다'라고 느끼거나 위축될 필요 없어. 그건 그 사람의 기준인 거야. 너희들의 기준에 그 사람이 이상해보일 여지도 충분히 있거든. 그때 그 눈빛을 되갚아주라는 말이 아니고, '그럴 수도 있구나'하고 그냥 넘어가면 돼. 서로에게 피해가 가는 일이 아니라면 말이야.


며칠 전 엄마가 '그렇게까지' 부지런을 떨어서 준비한 과일 ㅋㅋ 누군가에겐 엄마라면 '당연히 이정도는 해줘야지!'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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