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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 여름은 또 오니까

올여름은 아마도 내가 빨리 지나가라고 빌지 않은 첫여름일 것이다.

by 오공부

이번 여름은 있는 그대로의 계절을 느끼고 누리는 순간들이 많았다. 여름의 문턱에서 '아무튼 여름'이란 책을 읽어둔 것도 분명 도움이 되었다.

예쁜 하늘을 놓치지 않기 위해 하늘을 자주 올려다봤고, 처음으로 가지를 사서 직접 요리도 해봤다.(맛있었다!) 입하, 하지, 소서, 대서, 입추, 처서 같은 절기에도 관심을 기울였다. 여느 여름처럼 지독히 덥고 습했으며 사고도 있었다. 그래도 나는 이번 여름이 좋았다. 매일 자기 전에 가볍게 하는 물샤워, 혹서기 한정으로 좋아지는 찬물과 찬 음료, 수박과 옥수수, 매미소리 그리고 물놀이. 그런 것들에 마음을 충분히 쓰며 지냈다.

올여름은 아마도 내가 '빨리 지나가라고' 빌지 않은 첫여름일 것이다. 아침저녁으로 찬기운이 느껴질 때마다 나는 물러가는 여름이 아쉽다. 해가 눈에 띄게 짧아진 것도, 여름의 끝을 잡고 독해진 모기들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손끝에 물든 봉숭아처럼 나뭇잎이 조금씩 울긋불긋해지는 건 좋지만... 그래도 괜찮다. 다가오는 가을과 겨울도 씩씩하게 껴안고, 온전히 느끼다 보면 어느새 지나갈 것이고 그렇게 지나간 계절 역시 나는 퍽 아쉬워할 것이고, 그러다 보면 내가 새롭게 사랑하기 시작한 여름이 올 것이다.

여름은 또 온다.

여름의 해질녘 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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