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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지낸 이야기(feat. 고마운 첫째)

아이 덕분에 길을 나서서 고요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by 오공부

금요일 퇴근 무렵, 정신적으로 진이 빠지는 일이 있었다. 퇴근 버스 안에서 다른 사람들 눈치 보느라 목소리를 낮추고 정신없이 여기저기 통화를 하고 문자를 보냈다.

집에 오니 앞집에 사는 남매가 집에 놀러 오고 싶다고 해서 그러라고 했다. 우리 삼 남매도 그 집에 종종 놀러 갔었기 때문이다. 일곱 시가 조금 넘어 놀러 온 아이들은 아홉 시가 되어 돌아갔다. 나는 혼이 나간 상태로 같이 보드게임하랴 간식을 챙겨주랴 분주히 움직였다.

그리고 토요일 아침, 평소와 다르게 아이들이 일찍 일어났고 나는 혼자만의 새벽시간을 반납해야 했다. 계속해서 몸과 정신이 긴장한 채로 외부로 향하자 아침(형 인간)인데도 몸이 쳐지고 기운이 없었다. 그래도 해야 할 일은 해야겠기에 소아과 진료도 다녀오고, 설에 먹고 남은 채소와 만두를 넣고 만두전골도 해 먹었다. 저녁이 되니 맑은 콧물이 흐르고 목이 잠겼다.

그리고 오늘 아침, 여전히 머리는 개운하지가 않고 몸은 완전히 감기에 걸려 있었다. 식빵을 구워 아무것도 바르지 않은 채로 따끈한 유자차와 먹었다. 아이들도 식빵을 한 장씩 구워주었다. 그리고 기운이 좀 생기자 아이들 가방과 겉옷을 보관할 행거 둘 자리를 정리했다. 항상 가방과 겉옷이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현관과 거실에 널브러져 있는 게 신경 쓰여서 인터넷으로 주문해 둔 참이었다. 역시 설에 사두고 먹지 못한 밤도 삶아서 열심히 아이들 입에 넣어주고 내 입에도 넣었다. 남편의 주문으로 배도 깎아서 내놓았다. 그러고 나서 한숨 돌리려는데, 첫째가 묻는다.


"도서관엔 언제 가?"


어제부터 가고 싶다고 했는데, 도저히 갈 기운이 생기지 않아서 '도서관은 내일 가고 오늘은 TV 보자'하고 협상을 했던 게 떠올랐다. 어제보다 컨디션은 나아졌지만 여전히 도서관에 갈 마음은 들지 않았다. 그래도 아이와의 약속은 지켜야겠기에 꾸역꾸역 채비를 하고 나왔다.

평소 가지 않던 새로운 도서관을 가기로 했는데 지하철로 한 정거장 거리에 있었다. 아이는 지하철 맨 앞칸에서 선로를 바꾸기도 하고 휘어져 달리기도 하는 창밖 모습을 재미나게 바라보았다. 도서관은 평소 가던 곳보다 예전에 지어져서 세련된 맛은 덜했지만 들어가자마자 어린이 자료실이 있었고 천창이 나 있는 멋진 곳이었다.

아이가 서가를 탐색하는 동안 나도 빈 책상에 주섬주섬 챙겨 온 책과 노트를 꺼냈다. 그리고 고요히 책도 읽고 이따금 생각나는 것도 적었다. 그리고 이 글도 도서관에서 쓰고 있는 중이다.

다음 주는 회사에서나 개인적으로나 부담스러운 일이 있어서 나도 모르게 긴장이 되고 벌써 힘에 부치는 느낌이다. 하지만 일요일 오후를 충전하는 시간으로 보낼 수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다. 아이 덕분에 길을 나서서 고요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아이에게 감사한 일요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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